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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Feb 08. 2022

동아리1

서른즈음에 자살하기 전 #017


 나는 대학 합격 발표가 남들보다 빨라 남들이 바쁠 남은 수험 일정이 여유로웠다. 대학을 갈 생각을 접을 때쯤 합격했기에 딱히 더 높은 학교를 노리는 것도 아니어서 여기서 만족하고 말았다.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기 싫었고, 여기서 놓으면 안 해도 되니까 이 얼마나 편한지. 수능을 볼 필요가 없었지만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수능을 보러 갔을 정도로 갑자기 모든 것이 한가했다. 친구들 대부분은 재수를 한다며 미리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같이 즐길 사람도, 즐길거리가 없어 한없이 지루했다. 대학 가면 무언가 달라지겠지 하며 입학만을 기다렸는데, 입학 전 새로운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그때는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이 국민 메신저였다. 여기에는 클럽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네이버 카페와 비슷한 성격의 서비스였다. 그 시기에 대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을 미리 모으는 클럽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모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클럽에서는 같은 학과, 단과대 사람들끼리 미리 친해질 수 있는 장소였다. 100문 100답이 유행할 때라 새로 가입한 사람들은 이를 작성해서 올려야 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걸 보고선 미리미리 일촌 신청을 하고 있었다.


 이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오프라인 만남을 개최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었고, 술도 어떻게 마시는지 몰라 가서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제 모이는지 확인한 후 참여했다. 큰 강의실에 가 보니 몇십 명의 신입생들이 참여해 있었다. 주최 측은 그룹을 지어서 새내기와 재학생들을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넓은 강의실을 빌려 동그랗게 앉은 후 함께 과자나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것이었다. 우선 통성명을 했다. 학과가 어딘지 물어보고, 어디 사는지 물어보았다. 혹시 재수생이 있을 수 있기에 나이도 물어보았다. 마친 후에 술 게임을 하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우리 모임에서는 나보다 한 두 살 많은 선배들이 있었는데 그리 친해지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는 학교의 공식 모임이 아니었고 비공식 모임이었다. 주최 측은 몇몇 동아리가 합친 모임이었는데 새내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아마 공식인 줄 알았던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도중에 몇 번 나가지 않았다가 2번째로 모임을 갔을 때는 가게를 빌려 단체로 술을 마셨다. 그때쯤 되자 매일매일 출석했던 사람들은 이미 그 클럽에서 알만한 인기인이 되어 있었고 끼리끼리 친해져 있었다. 하지만 기존 틀은 같았다. 새내기들과 재학생들을 섞어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 이번 테이블에서는 영문학과 여자애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남고를 나온 나에게는 여자와 이야기를 하는, 이런 광경이 꽤 낯설었다. 그 영문학과 여자애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게 생긴 여자애였다. 술이 많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다 못해 터져 버릴 때 우리들은 집에 가기 위해 나왔다. 그 여자애는 너무 취해서 계속 옆에 있는 사람들을 때리기 일쑤였고 나도 몇 대 맞았다. 그리고 계속 블랙데빌을 달라고 떼를 썼는데 그게 담배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 나는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지만 입학 전 5번 이상 모임을 가졌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알게 된 1년 선배와 가끔 문자를 주고받게 되었고 사적으로도 한, 두 번 정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동아리방 구경을 시켜준다고 했고 거기서 나도 모르게 입부를 하게 되었다. 그게 풍물 동아리였다.


나는 살면서 풍물에 관심 가졌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초등학교 때 장구를 만져본 적은 있지만 그건 단지 초등학교 음악 시간이어서 그랬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동아리에 들어간 건 오로지 내게 연락을 줬던 선배와 얼떨결에 동아리방에 초대된 후 입부신청서를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받았던 다른 선배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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