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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Apr 18. 2022

열등감

 자살이 허기진 밤 #021


 도무지 애정을 가질 만한 부분이 없었다. 남들보다 크지 않은 키, 이리저리 뜯어봐도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얼굴, 성격은 남에게 관심이 없는 무심함과, 하루 종일 누워있는 게으름, 선천적인 우울함. 그러면서도 이런 내가 싫어 자기 혐오감에 넘쳐 있었다. 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고 밤마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몸부림치는 나였다.


 초등학생부터였나,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재밌게 놀고, 반찬 편식을 하면서 투정 부리던 철없는 그때에도 누군가를 부러워했다. 2:8 가르마를 단정히 하고 다니며 착실했던 반장과, 늘 반에서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들과, 보이스카우트나 아람단 같은 활동을 하며 늘 옆에 친구들이 넘쳐다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성인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니 남을 부러워하고 나를 싫어하는 성격이 더 커졌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비슷한 애들끼리 모여 노니 열등감을 크게 가지지 않았지만 대학교부터는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은 내세울 만한 장점이 있었지만 내겐 없었다. 나와 같은 말, '나는 장점이 없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확실한 장점이 내겐 보였다. 그래서 더 큰 열등감을 느꼈다.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마음뿐 친해지기는 힘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큰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의 선천적인 열등감과 우울함 때문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싫어하는 사람이 내게도 있었다. 내게는 크게 두 가지 분류였다.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고, 부러워할 점과 싫어할 점이 공존하는 사람들이었다. 전자는 혐오였고 후자는 질투였다. 나는 둘 다 멀리했다. 가까이하면 스트레스였고 멀리하면 조금 더 어색한 대학생활이었다. 스트레스받을 바엔 친해지지 않는 게 더 좋았다.


 특히 여자들은 더 큰 존재였다. 나는 여자가 무서웠다. 남자가 많았던 중학교, 남자밖에 없었던 고등학교를 나오며 여자는 더욱 멀고 익숙해지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말버릇이 생겼다.

 "아 자살하고 싶다."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군생활이 힘들어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주변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말하고 다니니까, 자유를 뺏긴 21개월이 너무 아까웠으니까. 전역하고 남은 건 예비군 훈련과 까까머리, 지병의 악화 그리고 잃어버린 2년이었다.


 둘러보니 그때의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젊음뿐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믿었던 건강도 안 좋아지고 있었다. 가진 게 없으니 점점 시니컬해져 갔다. 그러면서도 그런 태도가 꽤 멋지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남들과 척지면서 혼자 사는 것. 그게 멋이라고 생각했다. 모순적이었다. 내가 젊음을 원하는 건 활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서였는데 말이야.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가진 건 젊음과 건강뿐이었는데, 2년을 낭비해버렸다고, 이것마저 잃으면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30이 되기 전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밌게도 나의 전역 후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날려먹었던 학점을 복구하는 것과 연애였다. 한동안 소개팅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받으며 주말마다 나가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나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이성과 대화를 이어나가기란 무척 힘들었다. 서로 나눌 말이 없었다. 내가 연애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리 도움되지는 않았다. 연애를 하고 싶으면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했고, 자존감을 높이려면 여자 친구를 만들라고 했다.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모순적인 대답에 진이 빠졌다. 그래서 나는 자존감도 선천적인 거라는 말을 더 믿었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존감을 키울 수는 없다. 다만 이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더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찌들어 있을 때였다. 익숙해지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도 연애는 할 수 없었다. 나의 시도는 모두 트라우마를 남긴 채 사라졌다. 열등감이라는 게 내게 가져다준 건 있었다. 무언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것,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 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남에게 매력을 끌 수 있는 요소가 없었기에 이런 식으로 어필을 해야겠다는 생각. 무언가 내세울 만한, 이야기할만한 것들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이성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허탈했지만 익숙했다. 한편으로는 익숙함이 경고처럼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기회보다는 꺾인 마음이 문제였다. 


 나는 내세울만한 것들을 찾았다. 공모전과 대외활동, 남들이 못해볼 경험들을 찾았다. 인터뷰어로서, 콘텐츠 제작자로서, 그리고 여행으로서, 대외활동도 찾아가며. 그래서 지금은? 나의 삶은 나아졌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나의 열등감을 한 귀퉁이 가려주었지만 전체 커리어는 난잡해졌다. 꾸준히 하는 사람을, 젊을 때 평생의 길을 찾은 사람은 앞날이 밝아 보였다. 아직도 나는 열등감 덩어리였다. 내게 남긴 트라우마로 가져다 준건 있었겠지만 평생 남을 흉터는 지워주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 노력이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나는 남을 의식하지 않을 자신이 없는 사람이었다. 휘둘리다 보니 나의 길도 꼬여버렸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연애가 힘들었다. 대학생들은 찬란하게 보이는 미래와 젊음이 부러웠고, 취준생들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이 멋있어 보였고, 이미 취업이 된 사람들은 우직히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해나가는 게 멋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20대 초반의 내가 생각했던 30대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안정적이고 다른 고민 없이 나의 길을 잘 갈 줄 알았는데 갈림길과 열등감에 찌들어 점차 하강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도 아직도 이 길이 내 길일까? 고민하고, 수많은 갈림길에서 어느 길이 조금 더 평탄한 지 찾아보고 있다. 이미 걷고 있어야 했는데. 커리어를 쌓고 있으면서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열등감을 지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당당할 수 있고, 내가 먹은 마음의 근거가 나 자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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