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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Jun 06. 2022

평범한 하루 일상

서른즈음에 자살하기 전 #024


 알람은 7시 조금 넘어서부터 울리지만 나는 항상 바로 꺼버린다. 아이폰 최신 기종으로 폰을 바꿨는데 버튼 위치상 매일 알람을 끄다가 캡처가 된다. 그래서 폰 사진에는 알람을 끄려다 실패한 자국들이 많이 보인다. 결국 나는 8시 조금 넘어서 일어난다. 아버지 출근시간과 겹쳐서 조금 더 일찍 준비해야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씻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고르는 건 가장 편하고 후줄근한 옷이다. 나름 장발이 되어버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만져준 후 집을 나선다. 9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다.


 회사까지는 걸어서 20분 혹은 25분 정도 걸린다. 느긋하게 걸으면 25분 그렇지 않다면 20분이다. 초여름이지만 땀이 많은 나는 조금 더 가볍게 입는다. 단 사무실 안은 추워서 걸쳐 입을 옷이 필요하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간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들은 대부분 우울한 노래뿐이라 신나는 노래는 직접 찾지 않는 이상 듣기 힘들다. 대여섯 곡을 들으면 회사 근처다. 9시 반까지 출근이니 늦진 않는다.


 회사에 와서 이미 와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방을 내려놓고 커피를 한 잔 탄다. 내 자리가 있는 층의 정수기에는 이미 얼음이 없어 한층 아랫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사무실의 정수기에서 커피를 탄다. 올해 생일에 선물 받은 콜드부르세트. 마시려고 집에 놓았지만 마시지 않아 사무실에 가져다 놓고 아침마다 마신다. 종류마다 맛이 달라 새로운 맛을 느끼는 재미로 마셨지만 이것도 이제 일주일 정도면 다 마실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진지하게 고민한다. 하나 더 살까?


 오전에는 정해진 업무가 있다. 다른 급한 업무가 있다면 그걸 먼저 처리하지만 보통은 하는 일 똑같이 진행한다. 하루 루틴을 끝내면 점심시간이 오기 때문에 멍 때리면서 일하기 좋은 시간이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무언가 막힐 때마다 커피 한 모금씩 홀짝거리며 일을 하면 금방이다. 그러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온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점심시간이 1시간 반이다. 나는 이 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카페로 간다. 물론 팀 점심이 있거나 누군가 같이 밥을 먹지 않겠냐고 물어본다면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무조건 팀 전원 다 같이 밥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도 나를 찾지 않을 때 카페에 간다. 다만 그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카페에 가는 건 요즘 살이 많이 올라서 음식을 덜 먹을 수 있고, 점심시간에 조금 더 맘 편히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예를 들면 유튜브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하는 것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만 때때로 출출할 때 샌드위치나 파니니 같은 것들을 함께 주문한다. 가끔씩 회사 동료도 내가 있는 자리에 와서 함께 책을 본다. 회사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이직 준비하냐고 물어보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퇴사를 하려면 했지. 그냥 웃으면서 농담처럼 넘긴다.


 루틴적인 업무가 있던 오전이 끝나고 오후에는 계획에 있어나 요청하는 업무가 주가 된다. 업무 계획표를 보고 아 이번엔 이걸 해야하지 라고 하는 업무들을 주로 끝낸다. 최근 신입들이 입사했기에 때때로 알려주거나 질문에 대답해주면서 일을 한다. 가장 좋은 건 실무를 하면서 일을 배우는 거지만 아직 그럴 여유가 없기에 기본적인 것들만 탄탄하게 알 수 있도록 알려주고만 있다. “혹시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지만 어떤 업무를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업무들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업무를 하기 위한 정보들을 알려주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급한 업무들은 줄 수가 없다.


 바쁜 시간 중에도 바람 쐬기 위해 가끔씩 밖으로 나간다. 같이 나가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고 나는 그냥 옆에서 이야기만 한다. 그게 회사 사람들과 친해지는 몇 없는 시간이다. 일과 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나눈 후 다시 올라와서 일을 한다.


 퇴근시간이 6:30이 되면 신입들은 퇴근한다. 아니 먼저 퇴근시킨다. 수고했다고 내일 보자고 말하며 보낸다. 남아있어 봤자 할 일이 딱히 없고, 나중 되면 야근을 많이 할 거니까 초반에는 빨리 보내는 게 좋았다. 사실 나도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아직 신입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업무시간에는 그날그날 요청한 사항들을 끝낸다면 업무시간 이외에는 미리 준비해야 할 업무를 한다. 다음 주까지 해야 할 것이라던가, 미리 알아두면 좋을 사항들을 체크한다거나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최근, 아니 올해 들어 야근하는 경우가 많아 칼퇴근은 손에 꼽는다. 때때로 11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런 미리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이면, 혹은 그날 처리했어야 하지만 못 끝낸 경우 남아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야근수당은 없지만 저녁 식대는 회사에서 책임져준다. 그래서 먹고 싶은 걸 주로 먹는다. 다만 가능하다면 내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음식을 선택한다. 햄버거나 볶음밥같이 국물 없고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걸로 고르지만 때때로 삼겹살 같은 걸 고르기도 한다. 다만 이건 같이 야근하는 사람이 좀 더 있을 때, 회의실에서 먹는다.


 보통 10시가 넘으면 택시비도 회사에서 대주지만 저녁 택시는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때때로 30분 1시간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빈차라고 되어있는 택시들도 선을 들면 그제야 예약으로 바꾸는데 그러면 욕을 뱉는다. 어플이 생긴 후로 밤에는 택시 잡는 게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나는 걸어가도 괜찮지만 같이 남아 일했던 사람들을 보내야 마음이 편해서 가능하면 집에 가는 교통편이 마련될 때까지 있다가 헤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택시를 잘 안타는 나도 덩달아 택시를 욕하게 된다.


 집으로 갈 때는 역시 걸어간다. 낮과는 달리 시원해서 오르막길을 오를 때 땀이 나지 않아서 좋다. 이때는 이어폰을 꽂고 원하는 노래를 들어도 분위기가 어울린다. 역시나 우울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집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 계획을 세워놓는다. 하지만 대체로 이뤄지지 않는다. 마음먹었던 것들은 집 와서 옷을 갈아입으면 피곤함밖에 남지 않는다. 중력보다 더 강한 힘으로 나를 의자에 앉히고 일어날 수 없게 한다. 그럼 나는 앉아서 특별히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나 유튜브 같은 것들을 틀어 놓을 수밖에 없다. 계획은 이미 머릿속에 없다.


 유튜브를 보면서도 졸 수 있다니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럴 때 좀만 눕자 하며 눕다간 잠이 들어버린다. 그렇게 잠들어 버리면 금방 깨게 되고 그날 나는 새벽에서야 잠들어버린다. 최대한 잠은 늦게 자야 한다. 그래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으니. 하려던 계획은 내팽개치고 다시 멍하니 멍 때린 채 나는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만 던진 채 등으로 의자에 앉아 시간을 버리고 있다.


 간신히, 정말 간신히 팔 굽혀 펴기와 턱걸이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하고 나서 나온 배를 어루만져준다. 내가 계획한 일은 많은데 회사 때문에, 야근 때문에 못했어라는 핑계를 댄다. 야근을 하지 않았어도 안 했을 텐데 말이다.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싶다고 이야기만 한 채  이루지는 못한다. 구석에 있는 영양제를 바라본 후 먹고 뒤척이다가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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