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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Jun 21. 2024

새벽 의식의 흐름

 자살이 허기진 밤 #029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씩 결혼을 하기 시작하네. 이번 달에 한 커플이, 다담달엔 두 커플이 결혼을 하지. 몇몇 친구들은 벌써 애엄마가 되거나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 20살 때부터 술 마시고 함께 놀던 애들이 결혼이야기를 하고 애 낳으면 받는 혜택 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네.


 하루 일이 끝나고 집에 혼자 있을 때, 노래를 틀면 속이 울렁거렸고, 끄면 답답해 미칠 것 같을 때가 있어. 내가 참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냐. 노래를 틀었다 껐다를 반복하던 나는 결국 토를 하고 말았어. 재수 없게도 맑더라. 내 몸에서 뺏어갈 수 있는 건 오직 수분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괘씸해.


 세상이 저출산, 비혼주의로 가고 있는 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리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좋지 않은 일이지.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질의 위기를 맞고 있으니 누구도 알고 있을 거야. 연신 떠들어대는 것처럼 위기라고 하지만 어쩌면, 나 개인적으로는 좋지 않을까? 결혼을 하지 않는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세상이 말해주는 것 같아. 그래 힘을 내자.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니까. 한국적 흐름과 나의 길이 일치할 뿐!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춤을 추는 건 정말로 아름다운 일이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같이 추자. 왼쪽으로 두 스텝, 오른쪽으로 두 스텝. 그리고 마주 보고. 휘청이다가 머리에 피가 날 수도 있지만 괜찮아.


 다시 한번 마주 보며 이야기해야 해. 두 눈을 똑바로 마주쳐.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 어떤 행동을 하면 싫어하는지. 그리고 결혼을 하고 싶은지. 사실 들어도 잘 몰라. 점차 익숙해져 가는 거지.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에 익숙해져 가는 거야. 너는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시간의 의인화일수도 있어. 때때로 그런 기억들은 과거와 섞여 현재 존재하고 있는 좌표를 잊게 하지만, 어쩌겠어. 그리고 이 나이쯤 되면 선택이 필요해. 같이 갈 건지, 아니면 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말을 할지. 아니라면 빨리 말할수록 좋고, 맞다면 어떻게든 밀고 나가야 해. 역시 애매한 건 좋지 않아.


 나는 생각해. 고등학교 때 아예 미친 듯이 놀았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정말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공부를 하던가. 아니면 덕질을 하던가 했었어야 했어. 애매한 건 좋지 않아. 왜 그러냐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거든. 이도저도 아닌 건 좋지 않아.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다는 뜻이야. 결국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회피형 인간. 그래서 애매한 건 결국 죄가 되는 거지.


 선택할 수 없는 회피형 인간은 결국 어른이 되는 것도 선택할 수 없는 건가. 그러면 나는 결국 어른이 될 수 없겠구나. 눈물은 나는데 입은 웃는 것 같네. 왠지 내가 이러고 궁상떠는 걸 너는 좋아할 것 같아 그렇지? 너의 선택은 항상 틀리지 않았으니까. 너에 기대에 맞춰준 것 같아서 내가 기분이 좋지 않네.


 너가 나의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되어줘, 디스토피아가 되어줘. 너는 그냥 나의 모든 원망을 받아주는 존재가 되어줘. 아니 그러면 오히려 더 친해지는 건가? 그런 게 어머니 같은 대지? 뭐 그런 느낌이긴 한데 그 정도 까진 아니야. 한걸음 떨어진 욕받이 재앙 정도가 어떨까?


 어차피 나를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물론 나조차도. 나를 혐오하는 나이기에 무조건 외로워질 수밖에 없지. 호감이 조금 가다가도 이런 사람을 보면 질리거든. 사람을 만나서도 외롭고 혼자서도 외롭다면 차라리 혼자인 채로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사람은 외롭게 태어난 존재라면서. 그건… 결혼으로도 해결해 줄 수 없지 않을까? 결혼생활은 크게 둘 중 하나로 굳혀지는 거 같아. 좋거나 나쁘거나. 하지만 그 가운데 선택도 있지. 결혼하지 않는 것. 결혼생활이 모 아니면 도라면, 혼자 사는 건 개-걸쯤 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나는 도박을 싫어하니까. 차라리 이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실이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게 진짜일 줄이야. 그게 나일 줄이야! 나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 사람들에게 이제 나는 한물 간 사람일 뿐. 단 하나의 매력도 느낄 수 없는 그저 흔한 사람. 예전에는 나이라도 어린 게 장점. 이제는 다 단점. 이런 태도가 좋지는 않지. 무조건 들이대는 것은 남에 대한 민폐라면, 이런 태도는 나에 다한 실례니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입힌 상처는 대부분이 치유 불가능한 상처니까.


 “사람에게는 본인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어둠이 있어요.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저어버리고 마는 깊이의 어둠이라 차마 남에게 말하지 못하죠. 우리는 그걸 평생 숨겨야 해요. 사람에 따라서는 얕은 웅덩이일 수도 있지만 마리아나 해구일 수도 있는 거죠."

 그 어둠은 사람을 점차 좀먹게 만든다. 큰 강가에 뱉은 침 정도는 정화가 가능하지만 조그마한 저수지에 폐기물 몇 톤을 쏟아붓는다면 그건 그냥 맑은 물이 폐기물로 정화가 되는 거지. 근데 음… 어둠이 깊으면 스스로가 잡아먹혀. 그럼 나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걸까? 사람이 세월을 살기 위해서는 그 뭐냐 세포 끝 텔로미어였나 그게 다 닳면 죽는다는데 그럼 나는 자살하고 있는 걸까? 세포가 죽음으로 향해 가는 건 나의 의지일까?


 나는 이미 글렀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 나보다 더. 이미 나의 뇌는 녹았어. 다시 주름지지 않아. 나는 녹은 뇌를 바다 삼아 항해하는 거지. 섬은 없어. 항해한다라는 거 자체가 중요한 거야. 움직이고는 있잖아? 여기서 익사해도 그것도 나름 유쾌하겠다. 세상에 한두 명은 깔깔대고 웃어주지 않을까?


 세상은 발전하고 있지만 행복의 측면으로만 본다면 제로섬이 아닐까? 어떤 건 +고 어떤 건 -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를 떠안고 있는 거다. 누군가는 나로 인해서 행복해지길 바라야지. 여러분 행복하세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아무나 만나지 않을 거야. 보기 아름다운 커플이 되고 싶지, 동정받는 커플이 되고 싶지 않아. 선남선녀라는 말을 듣고 싶지 끼리끼리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건 이제 불가능하니까 혼자인거지 누가 봐도 선남선녀 > 혼자 > 끼리끼리잖아. 끼리끼리가 될 바에는 그냥 죽어버리겠어.


 이래서 새벽이 싫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런 의식의 흐름이 되어버리잖아. 잠은 안 오지만 잠을 청해야지. 모두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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