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31
대학교 1학년을 마친 후 학과 동기와 함께 동반입대를 지원했다.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때 같이 군대 가자는 동기의 말에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생각도, 유머코드도 꽤 비슷해서 분명 서로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실수할 뻔했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동반입대 지원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입대는 3월 중순쯤이었다. 어차피 무얼 해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비슷한 시기에 입대하는 친구들끼리 함께 게임을 하고, 늦잠을 자거나 했다.
2월 즈음에는 학교 사람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첫 후배들이 입학을 확정 짓고 있었고, 학교에서는 입학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학과 내에서도 일정 준비에 한창이었다. 나는 학과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선배와의 시간을 하려고 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올 수 있냐는 물음에 알았다고 했다. 아마 남자가 많지 않았던 그때 상황상 내게 전화한 것 같았다. 그 시기가 지루한 건지 친한 사람도 없는 나는 수락했다.
입학식은 늘 그렇듯 학교에서 정해놓은 일정부터 시작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누군가가 나와서 이런저런 설명과 연설이 끝나고 난 후 사람들은 각각 학과 건물로 흩어졌다. 선배들은 신입생들을 모아놓고 조금 더 디테일한 설명을 해주고 수강신청이라던가 학교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알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의 나는 시니컬한 사람이었고, 입대가 머지않았기 때문에 친해질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한학번 밑의 사람들하고는 앞으로도 친해질 일은 없었다. 군대에 갔다 오면 여학생들은 학년이 높아져 있고, 남학생들은 군대에 있었으니까.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별 일 없이 그날이 마무리되고 나는 다시 게임에 빠져들었다. WOW를 하고 있었기에 매일 던전에 가야 했고 사람들과 만나서 게임을 해야 하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연락이 왔다. 그때 인사했던 후배 중 하나였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연락을 했다며 말을 꺼냈다. 지금 와서 그 질문이 무엇인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거기서 바로 만나 밥을 먹기로 했다.
집과 집 사이는 길어도 걸어서 15~20분쯤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밥을 먹었다. 그런 곳을 잘 안 가본 내가 뭔가 사줘야 된다는 마음으로 간 곳이라 칼을 잡는 것도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 조금 걸었던 것과 헤어질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그때까지 이성과 손을 잡는 것도 못해본 나는 조금 설렜던 것 같다. 당장 다음 달에 군대 가는 게 정말 아쉽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실 뭐 그 이후에 연락 오거나 한건 없었다. 다만 한번, 내가 입대하기 위해 머리를 밀어야 할 때가 왔었다. 머리하나 미는데 친구를 데려가는 것도 싫었다. 마침 그때쯤 다시 연락이 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미용실에 같이 가준다고 했다. 나는 다시 설렜다. 설레면서도 반삭 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마음과, 얘는 왜 내게 이러는 걸까?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대학교에서 우리 집 근처 미용실을 갔다가 다시 대학교에 돌아가야 하는 것으로 기억했는데.
나는 입대를 했다. 학과 동기랑 함께 훈련소 시기를 보냈고, 비록 다른 소대였지만 간간히 서로 눈 마주치며 응원하며 군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더 다행인 건 다른 선임들은 우리를 동반입대인걸 몰라서, 괴롭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청소를 하고 있는 나에게 동기가 와서 조심히 말했다.
"그 후배 죽어서 지금 장례식 중이래"
이등병이었고, 주변에는 선임들도 함께 청소를 하고 있어서 티를 낼 수 없었다. 나는 늘 하던 것처럼 청소를 하고 점호준비를 하고, 환복을 하고, 잘 준비를 했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자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을 때, 그제야 감정이 조금 살아났다.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친구의 표정이 진지했고, 무엇보다도 이런 걸로 장난칠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고, SNS에서도 연결되어있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후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선천적으로 몸이 좋지 않았었다고 했다. 대학 가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하다 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학과 특성상 밤을 새우거나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많은데, 동아리 생활까지 함께 하려다 보니 체력적으로 무리가 와서 결국 버티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때, 그 후배는 다른 선배와 사귀고 있는 중에 사망하였고, 그 선배는 장례식 때 즈음에는 다른 후배와 만나 장례식에 갔다고 했다. 원래 그런 선배여서 욕이 나왔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훈련이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상병말, 병장쯤 되어서 휴가를 쓰기 시작할 수 있었다. 잘 못 나가고, 남은 날이 많은 시점에야 사회가 그립고, 휴가가 달콤하지만, 곧 전역에다가 몰아서 쓰려고 하니 별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만날 사람이나 일정이 없을 때, 나는 납골당에 갔다.
바로 가는 버스나 지하철은 없어서 지하철과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본 납골당은 무척이나 컸다. 수많은 죽은 사람들이 두 뼘쯤 되는 길이의 정사각형 공간에 모여 있었다. 조금 헤매다가 그 후배의 이름이 적힌 유골함과, 사진, 그리고 부모님의 편지 같은 물건들이 들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오래 있지 않았다. 5분? 혹은 10분쯤 있다가 바로 나왔다.
때때로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생긴다. 나는 그 이후 다시 납골당에 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토록 짧은 순간 만나 강한 기억을 준 친구가 없었다. 기억이 오래가는 건 나에게 그 친구는 그때에 평생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10년이 훌쩍 넘어버렸지만 아직 가끔씩 기억이 나는 건, 아련일까? 미련일까? 혹은 현실을 잘못 살고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