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 70대 후반의 K 씨가 우리 교회를 처음 오셨다. 힘겨운 항암 치료를 견디고 회복하는 중이라고 했다. 몸무게가 많이 줄어 홀쭉하고 핼쑥해 보였다. 왼쪽 가슴의 국가유공자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이신지 여쭤보았다. 내 예측이 맞았다.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 큰 형님과 동년배인 그분은 큰 형님과 같은 해 베트남에 파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큰 형님은 월남전에서 미군이 무차별 살포한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후유증 때문에 해가 갈수록 몸이 약해지고 있어 걱정이다. 어제 형님을 모시고 고향에 다녀왔는데 걸음걸이가 예전만 못해 마음이 아팠다.
두 분을 보면서 며칠 전에 읽었던 <전쟁의 슬픔>이 떠올랐다. 북베트남 하노이 출신의 소설가 바오 닌이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쓴 소설이다. 이 책은 전 세계 20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 작품이다. 저자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원 입대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북베트남 군인으로 최전선에서 싸웠다. 전쟁이 끝날 때 그는 25명의 소대원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다.
자신의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은 전쟁 영웅 스토리가 전혀 아니다. 주인공 끼엔과 그의 애인 푸엉의 풋풋하고 순수했던 사랑이 수없이 많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 스러져가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끼엔은 전투에서 만난 적군인 미국 병사를 냉혈한처럼 죽이고 살아남은 베테랑 군인이다. 그러나 끼엔은 소설 어디에서도 미군에 대한 사무치는 적개심을 표출하지 않는다. 끼엔은 오직 전쟁 중에 잃어가는 인간성을 슬퍼한다.
인간성 파괴는 끼엔만의 일이 아니었다. 푸엉 또한 군간호사로 전선을 지키다 살아남아 고향 하노이로 돌아왔지만 이미 인간성은 무너져 내린 뒤였다. 사랑의 낭만 따위는 남아 있을 수 없었다.
6년 만에 고향 집에서 끼엔을 만났지만 푸엉은 더 이상 그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끼엔이란 남자에게만 주어질 수 없었다. 많은 남자들의 몸이 그녀를 먹여 살렸다. 사선을 넘나들다 기적적으로 재회했지만 영혼을 멍들게 한 전쟁의 상흔은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쟁은 사람들의 일상을 망가뜨렸다. 작가 바오 닌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쟁은 일상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모든 아름다운 것을 더럽힌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남는 것은 죽음과 상처와 미움과 폐허뿐이다.
나는 어릴 때 큰 형님이 월남에서 휴가 나왔을 때 전쟁터에서 겪었던 무용담을 늘어놓을 때 넋을 잃고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깨에 메고 온 더블백에는 코초릿과 과자가 잔뜩 들어있었다.
어린 내가 형님과 총부리를 마주한다는 이유만으로 북베트남 군인을 베트콩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증오하고 적대시했었다. 작가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가 경험한 한국 군인은 어땠느냐는 질문에 "호전적이고 잔인했다"라고 대답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부끄러웠다.
베트남전쟁 참전 국가유공자. 그들은 목숨 건 파병으로 가난한 부모 대신 돈을 벌어다 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쟁터에서 체험한 전쟁의 슬픔은 아직까지 그들의 영혼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제 베트남은 한국인들의 유명 관광지가 되었지만 우리 큰 형님은 갈 수 없다고 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내가 어떻게 뻔뻔하게 얼굴 들고 갈 수 있겠어. 더군다나 관광을."
전쟁은 슬픔이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K 씨의 암이 혹시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