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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달 Jul 18. 2022

[영화 리뷰] 파란만장

미장센의 대가 박찬욱 감독 시리즈 2

영화: 파란만장

감독: 박찬욱, 박찬경

개봉: 2011.01.27



파란만장은 아이폰4로 촬영한 단편영화이다.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다 보니 처음에는 화면이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낮은 화질이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준 것 같았다.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과 동생 박찬경 감독이 합작한 영화라서 더욱 기대됐다. 파란만장은 사전적 의미로 '사람의 생활이나 일의 진행이 여러 가지 곡절과 시련이 많고 변화가 심함.'을 뜻하는데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에서 주인공인 낚시꾼(오광록)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영화는 저승사자들이 밴드를 이루어 노래하며 시작한다. 그들의 노래는 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 같았는데 한 저승사자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부르는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낚시꾼 저승사자들이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낚시를 가는 모습이 나온다. 낚시를 하는 남자의 모습과 그 남자를 물 위에서 누군가 지켜보는듯한 구도로 화면이 진행되다가 이윽고 밤이 된다.

  여러 개의 낚싯대를 설치해놓고 기다리던 낚시꾼은 한 낚싯대에 입질이 오기 시작하자 재빨리 낚싯대를 당기는데 걸려 나온 건 물고기가 아닌 소복을 입은 여자(무당)였다. 죽은 줄 알았던 여자는 낚시꾼에게 물을 뿜으며 일어났고, 낚시꾼은 그런 여자를 보고 기절해버린다. 시간이 흐른 후 일어난 낚시꾼의 옷은 소복으로 변해있었고, 여자의 옷은 낚시꾼이 기절하기 전까지 입고 있던 옷으로 변해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낚시꾼에게 음식을 권하며 말을 걸던 여자는 갑자기 낚시꾼 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공간은 낚시터에서 굿판으로 바뀐다. 굿판에는 낚시꾼의 딸과 어머니가 있었고 무당은 자신의 입을 빌려 낚시꾼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이야기는 낚시터에 간 남자가 갑자기 내린 비로 인해 강이 범람하여 죽게 됨으로써 시작된다. 남자는 강에 빠져 시신조차 발견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편히 보내주기 위해 굿판을 벌인 것이다. 무당은 빙의되어 (사후세계를 의미하는 장소이자, 남자가 죽은 곳인) 낚시터에서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굿판에서는 남자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남자는 처음에는 사랑하는 딸과 함께 가고 싶어 하지만, 나중에는 어머니께 고부 갈등으로 인해 집을 나간 자기 아내를 데려와 딸과 함께 살게 할 것을 요구하며 떠난다.




  이 영화는 단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게 짜인 스토리에 경탄했고, 관람 내내 서늘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볼 때면 항상 긴장하고 본다. 어디에 어떤 의미가 담길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긴 몇 가지 질문이 있다.



1. 낚시터 장면이 뒤집혀 나올 때가 있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낚시꾼이 있는 곳이 현실 세계가 아니라 과거에 낚시꾼이 죽은 장소이자, 지금은 사후세계가 되어버린 것을 의미하기 위함인 것 같다. 현실과 대비되는 세계이기 때문에 뒤집어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2. 화면 중간중간 위쪽에 오류난 것같이 검은색 선이 나오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컴퓨터에 이상이 있나 싶었는데 꽤 자주 통신 오류가 나는 듯한 선이 나왔는데 이것은 현실과 사후세계를 연결하는 통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인 것 같다. ZOOM과 같이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연결 오류가 나기도 하고, 인터넷 상태가 안 좋으면 끊기기도 하듯이 굿판과 낚시터를 연결해주는 통신망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3. 낚싯대에 달린 방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입질이 왔다는 것을 알려면 당연히 방울이 필요하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방울을 사용하진 않았을 것 같다. 방울은 낚싯대에 달기도 하지만, 굿을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도 방울이다. 그 방울이 울림으로써 무당이 사후세계인 낚시터로 들어왔고, 현실세계와의 연결이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방울은 연결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매개체인 것 같다.


4. 여자의 옷과 낚시꾼의 옷은 왜 바뀌었을까?

  여자(무당)가 사후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은 낚시꾼은 물에 빠져 죽은 상태였 것이다. 무당이 낚시꾼의 얼굴에 물을 뿜은 것은 낚시꾼이 물에 잠겨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고(같이 본 지인은 무당이 낚시꾼 얼굴에 물을 뿜는 것이 빙의되는 과정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상황을 고려해볼 때 죽은 낚시꾼에게는 수의(여자의 소복이 남자에게는 수의가 된 것 같다.)를 입혀야 한다. 여자는 굿판의 무당으로서 어머니와 딸에게 낚시꾼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남자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 같다.




  홍수로 강이 범람하기 시작하면 손쓸 새도 없이 물에 잠겨버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낚시꾼은 밤낚시에서 입질을 기다리다가 잠깐 졸아버린 사이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낚시꾼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죽은 자기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런 낚시꾼의 한을 굿으로 풀어주기 위해 어머니께서 굿판을 벌인 것 같다.


  굿이나 무당 같은 무속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안 좋아할뿐더러 오히려 피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박찬욱 감독 영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화를 봤다. 역시나 시작부터 이건 뭘 의미하는 건지, 구도는 왜 이렇게 찍은 건지 궁금한 게 넘쳐났다. 러닝타임은 33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긴 여운과 질문을 남기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짧지만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가 서늘하기도 하고 굿을 하는 장면도 꽤 길게 나오기 때문에 이런 장면을 싫어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은 카페나 밖으로 나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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