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나영 Jan 08. 2024

상징이자 철학

단상 앞에 서서

나는 당신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고,

역시 그래야겠다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말하였다.


서슴없이 쏟아붓는,

어찌보면 전위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을 이 사랑을 이어나가는 것은

이것을 제하고서는 내가 이토록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또 당신이 내 행복한 시절의 상징이자 철학이기 때문에.

아니, 보다 정확히 하자면 당신을 떼어 놓고는

어떤 그럴듯한 원리도 나를 움직이지 않으므로,

숨 막히는 기호와 기호의 사이에서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출 것이다.


언어의 기표를 살피고

그 부드러움에 기대어

말랑한 중독과 능동적인 광기의 교집합,

사랑이라는 그 조밀해하고 매끄러운 꼭짓점에서

새삼스레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없이 침투해내리자.

그게 좋겠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사랑함에 면면이 이어지는 그 글들을

나 또한 분해하고 본질을 꿰뚫어 봄으로써

한껏 흡족해하는 생활을 누리므로.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환원되니

한 눈에 보기에도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은

멱등률이고 선행되는 뚜렷한 의식임이 분명해진다.


사랑받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을 하는 주체로서,

왜 당신이어야 하는지 집요하게 자문하던 때가 물론 있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시작되는 흔한 독백.

그러나 그조차 매번 싱겁도록 알 수 없다-는 말로 귀착되었거니와

이제는 이유에 연연할 때가 아니라고 온몸이 외치고 있으므로 그러려니 한다.


어떻게 보아도 사랑스러운 사람을 두고

왜 사랑스러운지 대답해야 하는 것처럼 난감한 일이 또 있겠나 싶어서.


당신과 서글프도록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내리는 시험, 또는 징계,

그 비슷한 것으로 느껴지는데

그에 따라 체계적으로 코드화되는,

이 구조적으로도 완벽한 사랑이 나는 좋다-라고 말한다면

사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지 않을까.


서로에게 비슷한 요구로

비슷한 응답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간결함 속에서 원초적인 복잡함을 풀어나가며

우리는 더 팽창하고 있고 골라 써도

마음보다 못한 글에 줄곧 아쉬워하며

마저 눈길을 줄 것이다.


당신 마음이 내 것보다 크다는 말을 듣는 것을 용납하는 이기적인 나를,

그런 나를 사랑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영(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