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들은 중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보게 되었다. 생애 처음 학교에서 정식으로 보는 시험이다. 주요 4과목만 시험을 보는 거라 기말고사보다 과목수도 적고 시험 범위도 짧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아들은 요란하게 공부를 했다.
집에서는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공부가 안된다며 우리가 열심히 드나들던 독서실처럼 스터디 카페를 자연스럽게 갔다. 코로나 이후에 익숙해진 zoom을 이용해 새벽까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건지 공부를 하는 건지.... 성적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아 모르는 척해주었다.
아들과 그의 친구들은 중간고사 후 바쁜 스케줄을 계획하고 있었다. 영화 보러 극장가기, 놀이동산 가서 하루 종일 놀기, 게임하기 등등 그리고 이 모든 스케줄 전에 본인은 옷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나! 이 녀석 많이 컸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2년 전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사진 촬영 당일날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학교 행사가 취소되어 온라인으로 졸업식을 했다. 남는 건 졸업앨범뿐이라 사진 촬영용으로 미리 준비해둔 옷이 있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매일 검은색, 회색만 입는 아들에겐 연두색이 들어간 티셔츠는 조금 파격적이었다. 그래서 부담이었나 보다 엄마가 출근한 후 사진 촬영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간 아들은 연두색이 아닌 평소에 입던 우울해 보이는 하지만 본인이 편한 회색 티셔츠를 그것도 운동할 때 입던 옷을 입고 졸업앨범을 찍고 왔다. 내가 옆에 있어주었어야 하는데 마음이 들어 안타까웠다. 평생남을 초등학교 졸업앨범인데 말이다.
여기서 아들의 짧은 패션 역사를 말하자면 태권도장의 하얗고 불편한(땀 흡수도 안되고 두껍고 길이가 긴 도복) 도복 대신 하복아., 동복을 시즌별로 유명 브랜드 마크를 달고 나와 적당한 가겨에 판매하는 가성비 좋은 알록달록 체육복과 엄마가 사주는 운동복과 티셔츠를 사이즈만 맞으면 만족해하며 입었다. 브랜드라는 것에 눈을 크게 뜬 중학교 입학 후에는 삼선이 옷에 혹은 신발에 딱 있어 줘야 하고 초등학생 때는 길어서 싫다던 까만 롱 패딩 타령을 해서 사주었던 다른 중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 체육복을 365일 주말만 빼고 입고 다니고 있다.
드디어 시험이 끝나 쇼핑을 약속한 날... 아들은 어김없이 학교 체육복을 입고 쇼핑몰이 있는 약속 장소에 나왔고 아들의 얼굴에서는 조금 긴장감이 엿보이기도 했다. 나도 그런 것이 아들이 나의 키를 훌쩍 넘어선 다음부터 둘이서 어디를 같이 외출할 기회가 많이 없어 살짝 기대가 되었다.
우리 아들이 어떤 옷을 살지 너무 궁금했다. 얼마 전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입고 있는 통바지가 마음에 든다며 자기도 통바지 스타일의 바지를 살 꺼라고 장난처럼 말했었다.
본인의 옷을 아마도 처음으로 선택하는 거라 많이 고민할 테다. 고민이 많이 되겠지! 난 반걸음 뒤에서 조용히 따라다니기로 스스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절대 나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기로 다짐도 했다.
아들은 티셔츠와 바지를 사고 싶다고 했다. 쇼핑 초보인 아들에게 난 천천히 둘러보라고 말해주며 최대한 긴장하지 않게 도와주었다. 아들은 옷가게 앞에서 어색함이 온몸에서 묻어났지만 나름대로 집중력을 발휘해 티셔츠를 고르고 있었다. 나도 같이 행거에 걸려있는 옷을 넘기며 추천을 해주었다. 아들은 소신껏 고른 티셔츠 한 장을 내밀어 보였다. 아들이 내밀어 보인 티셔츠는 제 어깨 선보다 여유 있고 품이 큰, 앞보다 뒷면이 더 화려한 아니 약간 유치한 귀염둥이 일러스트 프린트가 있는 것을 골랐다. 생각보다 고민하지 않고 결정이 빠른 스타일 었다. 난 엄청 고민을 하는데 말이다.
바지는 청바지도 운동복도 아닌 폴리 소재에 스판이 들어있어 편한 바지를 마음에 들어 했다. 통이 넓은 제법 스타일이 있는 옷으로 골랐다. 내 아들이 맞나? 놀라웠다. 감각이 있다. 매일 운동복만 입고 다녀서 영 보는 눈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엄마의 유전자를 받은 내 아들이었다. 그리고 뿌듯했다. 하지만 어딘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뭘까? 아들이 이렇게 많이 성장했는지 내가 미쳐 못 알아봤구나! 이아이가 조금씩 어른이 되려고 준비를 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365일 절대 운동복을 안 벗을 것 같은 아이가 처음 입어보는 스타일에 거울을 비춰보며 어색하지만 만족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탈의실에서 몇 번 옷을 입고 벗고 반복하며 긴장을 많이 했는지 아들의 얼굴에서는 땀이 흐르고 등은 축축했다. 그 순순함이 사랑스러웠다.
쇼핑을 마친 후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물었다. 혹시 여자 친구 생겼나구. 아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만일 여자 친구가 생기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래”라고 짧게 건조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아들이 청소년이 되면서부터 엄마와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진다. 아이가 성장하는 속도에 엄마는 매일매일 감탄하고 그저 놀랄 뿐이다. 그러면서 조금 가끔은 슬퍼지기도 한다.
아이의 어릴 때 사진을 본다. 어릴 때 귀여운 얼굴도 이쁘지만 일상이 추억이었다. 속상하고 기쁘고 모두가 추억이었다.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난 오늘도 멋진 추억을 하나 아이에게서 선물 받았다.
잘 보관하고 두고두고 꺼내어 생각해야겠다. 나만의 비밀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