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다섯!! 독수리 오 형제도 아니고 지구를 구할 의무도 없이 우리 집 딸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나는 42년생 엄마의 오래전부터 품어온 염원이자 소망인 아들 낳기가 실패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할까! 한때는 엄마도 남아선호 사상의 희생물이라고 생각이 되어 안쓰럽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남들 낳는 아들을 거뜬히 낳을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엄마 당신의 욕심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 욕심에도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으리라 생각이 되어 딸로서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나도 엄마 피를 물려받았으니 테니 말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아들을 낳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엄마는 얼마나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던지 뒤에서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딸! 장하다
내가 고2 때 일이다. 큰언니에게는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신상 정장 재킷이 있었다. 그 재킷은 블루칼라로 엉덩이까지 오는 기장의 옷인데 허리 아래부터는 약간 플래어 스커트처럼 자연스럽게 주름이 잡히는 여성스러운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고등학생이 입기에는 조금은 성숙한 재킷이었다. 12월의 어느 날 주말에 친구와 약속이 있는 나는 언니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언니의 블루칼라 정장 재킷을 몰래 입고 '나 너무 멋지다'라고 자아도취에 빠져 외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갔다 와서 조용히 옷장에 걸어두면 아무도 모를 그것으로 생각했다. 감촉같이 아무도 말이다.
12월의 그날은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졌고 우산을 챙겨가지 못한 덕분에 내 옷은 아니 언니의 신상 정장 재킷은 펑펑 내리는 눈에 촉촉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오후가 되어 집에 들어가니 언니는 조용히 들어오는 나를 향해 눈을 흘기며 기다렸다는 듯이 몹시 화를 냈고 나도 내 옷 중에는 이쁜 옷이 없는 게 그리고 눈이 와서 옷이 엉망이 돼버린 게 속상해서 엉엉 울며 기어이 큰소리로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아빠가 뛰쳐나와 당장 그만두라는 말에 싸움은 일달락 되어 끝났지만 그 후로도 며칠은 언니와 냉전을 유지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해는 간다. 아마 내 옷을 그렇게 입었다면 으~~ 상상도 하기 싫어진다. 그리고 언니의 옷을 세탁해놓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딸은 많고 넉넉지 못한 살림에 엄마는 내 옷이라고 따로 사 와서 입혀주셨던 적이 손에 꼽힌다. 엄마가 옷을 사준 날이 얼마나 설레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다시 설렌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에서 돌아온 내 손을 잡고 동네 시장 아동복 파는 옷가게에 들어갔다. 엄마가 골라준 옷인지 내가 고른 건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노란 반바지에 깜찍한 프릴이 달린 소매에 허리에 고무줄이 있는 알록달록 스트라이프 티셔츠였던 걸로 기억이 난다. 아마도 새로 산 노란 반바지가 거뭇거뭇 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입고 뛰어놀았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고만고만한 키에 언니들과 옷을 같이 입기 시작했고 가끔 용돈을 모아 동대문 시장을 누비며 제법 흥정동 해가며 옷을 사고 같이 공유했다. 어려서부터 채워지지 않았던 옷에 대한 욕심은 관심으로 발전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의류 디자이너로 근무할 수 있게 하였다. 월급은 스쳐 지나갈 뿐이었던 날도 많았지만, 나의 리즈시절을 후회 없이 보냈다. 아직도 맛있는 건 안 먹어도 예쁜 옷은 꼭 사고 싶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혼자 나가서 친구를 만나고 집에 들어오는 아들을 보며 어린이집 교사 자격증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다음 해부터 시간제로 일을 천천히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아들을 제외하고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지금도 아들의 일기장에 써 내려간 한 줄이 생각난다. “엄마가 왜 갑자기 일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아쉬움 가득한 마음이 적혀있었다. 아들은 일기장에 한 줄만 섰을 뿐 나에게는 물어보지는 않았다. 경력 단절은 이미 시작되었고 스스로 집안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구나 살림살이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우울한 마음에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이 또 한 번의 욕심을 내 볼 만한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다니며 집안일 하기, 글쓰기 수업을 듣고 매주 1회 글쓰기, 인형 디자인과 만들어 인스타 올리기 그리고 판매 예정까지 하루하루가 바쁘고 정신없이 지나간다.….
남편은 내게 가끔 자기와 같이 시간을 안 보내고 혼자 바쁘다고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아이의 성적이 안 좋을 때는 여느 엄마들처럼 학원을 바쁘게 실어 나르지 않아서 그런가 자책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조용히 생각에 잠겨본다. 그리고 나를 응원해본다. 아이를 닦달해가며 내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고 남편의 성공이 내 성공 인양 기대하지 않는 나는 조금 멋진 사람이라고 말이다.
매일 욕심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꾸준히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행복이 충만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착한 욕심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욕심은 마음껏 부려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