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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옷 만드는 여자 Sep 25. 2022

그 발로 내 마루를 밟지 마오

미국에서 처음 집을 사고 한 일은 집 안의 카펫을 싹 걷어내고 마루를 까는 일이었다.

미국에서 살기 시작하며 가장 갈망한 것 중의 하나가 마루가 있는 집이었다. 한국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 대자로 뻗어 누워도 괜찮은 깨끗한 마루가 있는 집. 먼지 한 톨 없이 걸레로 싹 싹 닦은 반들한 마루가 그렇게 그리웠다.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으기 전엔 안 나오리라 각오하고 들어간 시댁에서 첫 아이를 낳고 가장 힘들었던 것이 누런 카펫 바닥이었다. 남편이 어릴 적 가장 비싼 카펫으로 깐 거라는 시어머니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수 십 년 동안 빨래 빨듯 걷어내 빨지도 못하고 청소기와 연중행사로 하는 스팀 청소라는 개념이 빨지 않은 옷을 수십 년 입은듯 찝찝했다. 카펫모 사이사이 왕국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을 진드기의 세상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듯해 웬만해선 맨발로도 밟지 않았다. 한국처럼 바닥 생활을 하지 않으니 바닥의 청결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신발을 신고 실내 생활을 하는 건 여전히 내겐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 사람에게 있어 마루란 예민한 장소이다. 마루로 올라서기 전 신발을 벗어놓고 더럽지 않은 발로 내디딜 수 있는 깨끗하고 사사로운 공간이다. 침대도 소파도 아니고 바닥에서 뒹굴고 자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나와 같은 집순이들의 최애 장소이기도 하다.  청소를 할 때도 바닥을 쓸고 닦는 것이 청소의 핵심 아닌가. 신발을 신은 채로 내 집안의 마루를 밟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을까. 벗기 힘든 신발을 신고 무언가를 두고 온 게 생각났을 때 까치발로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나온 기억은 있을지언정 한국에서 편안하게 신발을 신고 가정집으로 들어갔던 일은 내 생애 단 한 번도 없다. 까치발로 밟았던 바닥마저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어 돌아오자마자 밟았던 노선대로 야무지게 걸레질을 잊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 선택한 카펫 생활은 아기를 낳은 후 얘기가 달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드기가 내 몸을 타고 올라올 듯 간지럽고 찝찝한데  바닥과 한 몸이 된 듯 뒹굴고 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꽤나 힘든 일이다. 나름 오래된 카펫 위에 세탁할 수 있는 러그를 깔고 아이와 카펫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 노력했지만 우사인 볼트처럼 활동성이 날로 커가는 아이에겐 별로 만족스러운 방편은 아니었다. 그맘때쯤 시작된 아이의 아토피도 더러운 카펫 때문인 것만 같아 아이를 낳고 이년 만에 집을 사서 시댁의 카펫을 떠날 수 있었다.


이층 구조의 미국집들은 일층에 거실과 부엌이 있고 이층에 침실이 있는 구조가 대부분이다. 이층은 보통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서 카펫을 많이 깐다. 우리가 구입한 집 또한 일층엔 마루 이층엔 오래된 음식 흘린 자국이 빛 바래게 남아 있는 회색빛의 카펫이었다. 계획보다 이르게 집을 사느라 영혼까지 털어 넣은 통장은 인테리어를 할 수 있을 만한 돈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추어가 할 수 있을 만한 페인트는 남편과 내가 일주일이 걸려했지만 바닥을 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다행히 카펫 위에서 아이를 키울 나의 고뇌를 이해한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이층 마루 공사를 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싸게 하기 위해서 공사업자를 따로 구해 시간당 돈을 주고 마루 재료는 도매상에서 우리가 직접 구입하였다. 대나무 무늬가 들어간 쪽마루를 연상시키는 마루를 깔고 너무 좋아 한국에서 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며 걸레질을 했다.  손으로 쓸어보아도 먼지가 묻어나지 않는 반들한 바닥에서 아이와 함께 바닥에서 뒹굴면서 잠시 한국에 돌아간 듯 행복했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한동안 바닥 청소에 공을 들이며 한국식 쓸고 닦는 청소를 시전 했다. 미국에서 자라 집에서 신발을 신는다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남편을 잡도리 해가며 금방 바닥 청소했는데 고함치는 소리를 그의 뒤통수에 후려갈기기 일수였다. 미국식 집 구조는 신발을 벗어두는 현관이 따로 없으니 손님이 오면 으레 신발을 신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떨어진 음식도 주워 먹어도 될 만큼 깨끗한 나의 바닥이 더럽혀지는 건 순식간이다. 아 그 순간의 딜레마. 친한 사이라면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하지만 파티나 큰 모임이라도 하는 날은 우리 집 마루 바닥이 시장 바닥이 되는 날이구나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어쩌겠는가. 미국에서 깨끗한 마루를 사랑하는 삶이란 육식자들 사이에서 홀로 채식자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걸.

최근에 오래되어 보기 싫어진 일층 마루를 새로 깔았다. 그동안 마루를 지키는 전투력이 많이 떨어졌었는데 감성 돋는 밝은 마루를 새로이 깔고 나는 다시 걸레질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마루를 닦을 땐 왠지 예전에 교과서에서 읽은 이어령의 ‘삶의 광택’이라는 수필이 자주 생각난다. 참나무 책상을 길들이기 위해 마른 걸레질을 수천번 했다는 그 문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아이는 훌쩍 커버려 더 이상 바닥에서 뒹굴 일도 없지만 무언가를 쓸고 닦는 과정은 기도를 하듯 상념을 침잠시키고 내 안을 조용히 시키는 퀄리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바닥을 쓸고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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