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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옷 만드는 여자 Aug 29. 2022

사람 찾기 포스터에 올라올 뻔한 산행

며칠 동안 별 시답잖은 일들로 기분이 상하더니 남편의 성의 없는 대답 기대에 미치지 않는 시선에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입을 열면 싸울 것이고 가만있자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나 화 많이 났다 시위하듯 우선 집부터 나섰다. 몸이라도 움직여야 소용돌이 같은 생각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아 항상 가던 산에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작은 물병 하나 챙겨 나왔다. 딱히 생각해보면 싸울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서운하고 맘이 상하는지 모를 일이다. 마음 한편으론 갱년기가 시작하나 보다 이성적으로 정리하면서도 이미 태풍처럼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 감정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집에서 오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다른 세상인 것처럼 예쁘게 관리가 잘 된 등산로가 여러 갈래 있다.

팬더믹 이전엔 친한 언니와 여러 번 오기도 했고 팬더믹 락다운 동안은 문 닫은 짐 대신 스텝핑 머신 저리 가라는 오르막 등산로를 자주 올랐다. 아침 아홉 시도 안된 시간이라 주차장엔 차가 몇 대 없었다. 이런 날은 사진 찍을 기분도 아니라 핸드폰은 차에 두고 작은 물병 하나만 달랑 든 채 항상 가던 등산로로 들어섰다. 평일 오전인 탓에 사람 한 명 없고 아직 초여름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날씨도 선선하다. 헉헉대며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올라가다 보니 원망과 화로 가득했던 생각들이 저 밑 주차장에 두고 온 듯 아득하다. 이 맛에 몸이 힘든 운동을 하고 산을 오르나 보다. 내 몸이 힘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세상만사가 단순해진다.

분노의 여파였는지 생각보다 금세 원래 오르던 코스의 끝까지 다다랐다. 벌써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직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고 오랜만에 힘들지 않게 올랐으니 조금 더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등산로의 정상엔 서너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있다. 여태까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한 코스로만 다녔는데 그날은 어디 한번 가보자 하고 마음이 용감해졌다. 항상 다니던 등산 코스는 한 번 도는데 두 시간 정도가 걸리고 지금까지 삼십 분 정도 올라왔으니 한 시간 정도는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항상 저쪽엔 뭐가 있나 궁금했던 오른쪽 등산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평일 오전인 탓에 그날은 한 번도 사람을 마주치지 않았다. 가보지 않았던 길을 혼자 가는 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미묘하게 설레고 조금은 두려운 기분도 든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이 좁고 높아지더니 미쳤다 혼잣말이 나올 만큼 탁 트인 전경이 펼쳐졌다. 한국의 높은 산과는 달리 언덕처럼 보이는 경사가 완만한 협곡들이 따뜻한 햇살 아래 구비 구비 물결쳤다. 아직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땡볕 날씨가 시작하지 않은 탓에 초록이 쨍하게 짙었다.  내가 항상 다니던 길에서 십분 조금 더 왔을 뿐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이 나 혼자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되었다. 길이 조금 험난해지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풍경에 마음이 빼앗겨 발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해가 높아지자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새 등산로를 개척할 줄 모르고 작은 물병에 한 컵 남짓한 물을 가지고 왔을 뿐인데 벌써 목이 말랐다. 여기서 돌아가기엔 아직 불편한 마음이 더 크고 또 얼마나 예쁜 풍경들이 있을지 보고 싶은 유혹이 커서 입술만 살짝 적시며 조금만 더 가보기로 했다. 이제까진 올라오는 길이었는데 어느새 길이 밑으로 급한 경사가 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여태껏 올라왔으니 돌아가는 길은 밑으로 경사가 지는 거구나. 맞게 가고 있구나 내심 안심이 되었다. 등산로를 따라 걷는 와중에 두어 번 다른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있었고 ‘바위 능선 전망’이라는 작은 푯말이 보였다. 갈랫길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처음으로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꽤 걸어온 것 같은데 눈에 익은 곳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눈에 익은 곳이 보이면 길을 잃어버리더라도 그쪽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능선을 넘어와 완전히 다른 쪽에 있는 건지 눈길 닿는 곳이 모두 낯설었다. 갈라지는 새로운 갈랫길은 끝도 없이 구비 구비 펼쳐지는데 이 길로 들어섰다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불쑥 올라왔다. 돌아가려면 내려가는 길을 따라가야 한단 생각에 다시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고르지 못한 흙바닥이 가문 날씨에 쩍쩍 갈라지고 나의 갈증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져갔다. 이제 정말 좀 많이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내려가던 길이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이 되어 나타났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아니 그러기엔 너무 많이 온 것 같은데. 갈증과 더위로 힘들어지기 시작하니 이제껏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는 게 엄청난 일인 것처럼  힘들게 다가왔다. 얼마 전부터 길에 사람의 발자국이 하나도 없던 것도 걱정이 되었다. 주위에 소들을 방목하며 키우는 목장이 있어 진흙에 말라버린 소발자국은 간혹 보이는데 사람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은지가 한참 되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 돌아서 왔던 길을 다시 갈 순 없으니 다시 앞으로 더 가본다.

얼마 전에 잃어버린 사람 찾는 포스터가 동네에 많이 붙었다.

옆동네에 사는 남자인데 등산을 간 이후로 돌아오지 않아 한 달은 찾았던듯하다. 결국에 동네 등산로에서 사체로 발견되어서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었다. 하바드를 나와 근처 큰 전기 공사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는 그 사람은 아직 어린 딸이 하나 있고 젊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더웠던 그 주말에 나처럼 동네 숲으로 등산을 갔던 그 사람은 길을 잃어 탈수로 죽었다고 했다. 들짐승이 다니던 길을 등산로로 잘못 알고 들어서서 길을 잃었지만 죽은 남자가 발견된 장소는 원래의 등산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길을 잃고 헤맬 땐 사막에 나 혼자인 듯 막막하지만 지나고 보면 도착지 바로 옆에서 절망하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가.

사람들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고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한 이후로 그 포스터가 내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동네 등산로에서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내 좁은 생각이 후회가 된다. 이 길이라고 생각하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자 자꾸 길처럼 보이는 샛길로 들어서고 싶은 충동이 든다. 옆 동네 사람이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 듣지 못했다면 벌써 방향을 틀었을듯하다.

핸드폰이 없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 수 없고 정말 길을 잃었다 해도 구조 전화조차 걸 수 없다. 더 이상 입술을 적실 물 마저 떨어진 지 오래고 더위와 갈증을 참는 정도가 아니라 에너지가 훅훅 떨어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손절할 시점을 놓치고 폭락장에 버티고 있는 주식마냥 저기까지만 더 가보자 나를 잡아끌다가 체력적 한계점이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 급격히 들었다. 조금만 더 가서 이 길이 끝나는 지점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이제껏 걸어온 것보다 더 가야 한다면 내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현실적인 위기감이 들고서야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섰다. 적어도 이 길은 내가 알고 있는 길이니 두려움을 가지고 걸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어도 언덕을 몇 개는 넘은 것 같은데 지친 몸으로 다시 그만큼을 돌아간다는 건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걷는 일이 상념과 걱정을 떨치게 하는 건 정체해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두렵고 힘들었던 머릿속이 생존의 문제가 닥치자 오합지졸 머릿속을 일렬 정대시키듯 깔끔하고 명료해졌다. 계속 한 발씩 더 가는 것. 어떤 노력도 없이 오직 이것 하나에 온 생각이 집중되었다.

왔던 길에 오분의 일은 걸어왔을까. 마지막 언덕은 경사가 특히나 가팔라서 올라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얼마 전 처음 두려움이 들기 시작한 갈림길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턴 다시 내리막 길이다.

이십 분은 걸었을까 왠지 주변 환경이 눈에 익지가 않다. 금방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만큼 내가 온 길은 알아볼 수 있을 텐데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조차 아까 봤던 그 길이 아니다. 갈랫길까진 분명 내가 왔던 길이었고 거기서부터 잘못 들어섰나 보다 갑자기 핸들 잃은 차를 운전하는 마냥 훅 들어오는 공포감을 애써 이성으로 다잡아 본다. 다시 갈랫길까지 돌아가자.

어이없게도 네 갈래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다다르니 내가 어디서부터 올라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귀신에 홀린 듯 그 길이 그 길처럼 보여 금방 왔던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쪽저쪽으로 가보기엔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절망스러운 마음이 찰나 들며 나 정말 사람 찾는 포스터에 오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진지하게 들기 시작했다. 두려운 상황보다 두려운 마음을 인지하는 자체가 훨씬 공포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나가려면 길을 찾아야 한다. 다시 눈에 익은 길이 보이나 찬찬히 둘러보자. 애써 공포스러운 마음을 누르며 다시 길들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마른 흙바닥에 난 발자국은 내 운동화 발자국밖에 없다. 그럼 저쪽에서 올라오던 발자국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최대한 작은 동선으로 움직이며 반대 방향의 발자국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다행히 좀 전의 헤매고 있던 길이 아닌 다른 길에서 반대 방향의 발자국을 찾았다. 이것도 잘못된 길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업고 천천히 그쪽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드디어 눈에 익은 주위가 보인다. 아 살았구나. 이 길이 맞다. 공포가 지나간 마음과 몸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불쑥 눈물이 났다. 이제 걷기만 하면 돼. 다리는 걷고 있지만 쌓인 피로함과 갈증이  겨우 잡고 있는 무언가가 끊어질 듯 힘들어졌다. 이젠 얼마 가지 못해 자꾸 주저앉게 된다. 여기서 더 쉬면 정말 못 일어날 것 같아 억지로 몸을 일으키면 신기하게도 다시 다리는 움직인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원래 내가 다니던 등산로의 꼭대기 지점까지 다다랐다. 여기서 주차장까진 이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여기서부턴 굴러서라도 갈 수 있어. 이젠 한 번에 열 발자국 걷기도 힘들다. 얼마 전부터 눈에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심장은 왜 이렇게 빨리 뛰는지 호흡조차 힘들어졌다. 아직도 등산로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데 나 스스로 여기서 걸어 나가지 못하면 머지않아 정신을 잃어 릴 것만 같았다. 처음엔 열 발자국이던 게 다섯 발자국 두세 발자국 앉아 쉬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몇 발자국 더 걷고 또 걸었다. 조금이라도 더 산소를 들이쉬도록 천천히 호흡에 집중하며 한 발씩 내디뎠다.

주차장에 있는 차로 돌아왔을 땐 온통 신경이 트렁크에 있을지 모를 비상용 물병이었다. 그 생명수 한 모금을 마시면 순식간에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아 내려오는 내내 물병이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아 오늘은 나를 살려주는 날이 아니구나. 물병이 없었다. 이젠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주차장에선 전화연결도 되지 않아 남편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을 할 수도 없다. 별수 있나. 의식이 있고 손발이 움직이면 운전도 할 수 있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집 까진 직진으로 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천천히 차를 몰고 신호도 차분히 지켜가며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현관에서부터 부엌까지 겨우 기어가 음료수 한 병을 숨도 쉬지 않고 마셨다. 마른 화분에 물을 주면 이렇게 물이 스며들까. 수분이 내 몸에 스며듬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바닥에 한 참을 누워 있었다.

나중에 정신이 들어 시간을 봤을 땐 오후 세시가 한 참 넘어 있었다. 아침 여덟 시부터 물 한 컵 들고 여덟 시간이나 등산을 한 것이다.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바닥에 널브러진 아내를 보고 남편은 무심했던 자신을 반성해주었고 요단강을 건널뻔했던 나는 살아 돌아온 감격과 지나고 보니 한바탕 모험을 한듯한 흥분에 갈라 설까 말까 혼자 드라마 쓰던 마음이 한순간 유치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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