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같은방

(우리)(같은 방), (우리 같은)(방)

by 젊은최양

출판사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여자분과 남자분이 함께 다정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책과 함께 걸려 있다. 제목을 보니 《우리 같은 방》. 심지어는 한 분이 다른 한 분의 편집자였다고 한다. So- romantic.

작정한 #아무튼웨딩

이제 눈에 보이는 건 '결혼'뿐. 당연히 (우리)(같은 방)일 거라는 생각에 얼른 안아든 책.


잘 살피지도 않고 손에 쥐었다.

(우리 같은)(방)일 줄이야!

열린책들의 둘이서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는 두 명의 작가가 동갑내기 친구로서, 글을 쓰는 동료로서, 이웃으로서 서울 하늘 아래 자신들과 닮은 각자의 방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에세이였다.


아무도 속이지 않은 상황에서 혼자서 한 착각에 피식 웃었다.

내가 지금 얼마나 #아무튼웨딩 그 자체인가!

도톰하면서도 바작바작해서 잉크펜으로 쓰면 잉크가 착 스미는 재질의 종이를 한 장씩 읽어내려갈 때마다 고등학생 때부터 출가하여 밖에서 지낸 지 올해로 16년 차,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서 살겠다고 혼자 상경한 지는 9년 차, 그런 내가 보였다.


그런 내가, 이제는 나의 작은 방을 다른 사람의 방 옆에 나란히 놓으려고 한다. 벽도 없이.

그래서 브런치북 《불혹예랑 삼땡예신의 아무튼웨딩》의 첫 화는 이 책의 서평으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최다정 작가와 서윤후 작가가 주고받는 몇 챕터를 읽고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르 클레지오의 ≪빛나: 서울 하늘 아래(2017)≫를 꺼내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모 집을 떠나기로 했다. 살로메에게 받은 돈으로 신촌 근처 언덕배기 동네에 작은 방 하나를 얻었다. 출입구가 따로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집주인을 만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지하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화장실에는 비닐 커튼이 낡은 세면대와 변기 사이에 쳐져 있었다. 약간 어둡고 습했지만, 순전히 내 집이었다. (중략) 혼자 사는 것이, 그게 누구건 아무도 만날 필요 없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투덜대는 여자아이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혼자인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 아이들은 모른다. 남자친구도 필요 없었다. 내가 만난 남자애들은 전부 바보 같은 데다가 거만하기까지 했다. 엄마, 여자친구들, 누나들, 선생님들이 애지중지 키워 버릇없는 왕자님들이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알았다.

서울셀렉션의 《빛나》 p.42




빛나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빛나의 근처에 살곤 한다.



어느 초보 살인자 이야기

2016년 8월 초


그 당시 나는 여전히 이대입구역 근처 동네에 살고 있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작은 골목에 더러운 이층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난 그 동네를 스페인 말로 더러운 것을 뜻하는 '엘 소르디도'라 불렀다. 학교 친구들이 나보고 어디 사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우리 동네 이름은 엘 소르디도야."라고 대답했다.

같은 책, p.109




신기하게도 나는 빛나와 방의 동선이 같다. 9년 전 처음으로 혼자 상경했을 때, 나도 신촌 근방에 살았다. 빛나와 빛나의 이야기 속 가상의 인물들이 누비던 이대입구, 아현, 충정로의 골목길을 나도 4년을 누렸다. 그 4년 속 마지막 1년 정도는 취함을 즐겼고, 마지막 6개월 정도는 지금의 남자친구와 함께 다녔다.

당시 연애 초였던 우리는 이틀에 한 번 꼴로 퇴근 후에 만났다. 저녁을 먹으며 아주아주 거나해져서는 매번 마지막에는 꼭 편의점에 들러서 기네스 네 캔을 샀다. 골목 계단에 나란히 앉아서 속닥속닥 작은 목소리로 수다를 떨며 새벽녘이 다가옴을 느꼈다. 어떻게 그런 컨디션으로 회사 생활을 했는지 모르겠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당시 아현동의 골목


빛나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나는 회사가 제공해주는 전셋집에 살았다. 노련한 대리님 한 분이 발품 팔아 직접 알아보고 계약한 집이어서 컨디션은 좋았지만 4명이 방 3개를 공유해야만 했다. 연차가 낮을 때는 하나의 방을 다른 분과 나누어 썼다. 한정된 공간을 둘이서 활용해야 했기에 고등학교, 대학교 내내 쓰던 2층 침대를 또 써야만 했다. 누군가가 퇴사를 하고 나서야 내 몫의 방을 할당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남자친구와 내가 마지막 한 잔을 실내가 아닌 골목길에서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당시에 나는 여럿과 공유하는 공간 속 유일하게 내 몫인 작은 방에서 일기를 썼다.



스스로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깊어지고, 또 그 선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어느 정도의 경계를 두고 가까워지고 이해하는 것. 단지 그것들 때문에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도 되는 건지의 의문 그리고 감격과 카타르시스와 함께. 그것 또한 순간의 것. 내 삶을 실제적으로 영위하도록 돕지는 못하니 생각은 계속된다. 눈앞의 현실이 나를 계속 몽상하게 만들고 짧은 꿈에서 깨고의 반복. 평생이란 이런 것인가.

초등학교만 일곱 군데를 다녔다. 열여덟부터 스물아홉까지 기숙사 생활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분당, 대구, 용인, 포항을 거쳐 가족 없이 다시 서울로. 떠도는 삶. 정착을 원하다가도, 이것이 내 정체성은 아닐까 생각한다.

고요하지만 벽을 사이에 두고 누군가 있다는 안도감이 있다. 10년의 기숙사 생활. 정말이지 지겨운 기숙사 생활이 체질이 되어버렸다. 적당히 불편하지만 나를 오롯이 쓸쓸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공간에서 환멸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빛나는 자꾸만 누군가의 기척을 느낀다. 쫓기는 듯한 감각에 이사를 한다. 그리고 정겨운 새로운 동네를 참 마음에 들어 한다.



엄마 친구 소개로 도시 반대편, 완전히 남쪽에 있는 동네 셋집 하나를 얻게 되었다. 사실 그곳이 서울에 속하는지 아니면 시골인지 잘 모르겠다. 오류동역에 도착하는 데 한 시간도 넘게 걸렸다. 바퀴 달린 여행가방과 옆으로 메는 크로스백, 그리고 배낭에 모든 이삿짐을 다 넣었다.

(중략)

새로운 전철역도 마음에 들었다. 2호선 지하철은 합정역을 지나 한강을 건너 당산역에 이르고, 신도림에서 내려 1호선 지하철로 갈아타면 지상으로 나왔다. 1호선은 날림으로 지은 3층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민적인 동네들을 지나갔고, 그러다 보면 오류동에 이르렀다. 다양한 동네를 지나쳤다. 최신식 아파트들도 지났고 커다란 공원과, 시끌벅적한 길들도 지났다. 그러다가 다시 함석지붕의 작은 벽돌집들이 오류동까지 이어졌다. 오류동역에 도착해서는 계단을 내려가 철길 밑을 지나야 했다. 나는 사방의 대로가 모이는 이 넓은 교차로와 여기저기 볼트로 조인 자국이 있는 철교가 참 좋았다.

같은 책, p.142




4년의 첫 직장 생활 중 꾸역꾸역 매일을 밤마다 울며 노력해도 우울감이 해소는커녕 더더욱 극에 달아는 이유가, 진심으로 취하고만 싶었던 이유가 나의 업에도 있다는 걸 슬슬 깨닫고 있었다. 스스로를 혼내기도 하고 토닥이기도 했지만, 더이상 자신에게 가하는 압박과 최면이 먹히질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서른이 되기 전에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남자친구가 문득, 막연하게 '준비하는 방법'부터 찾기보다는 소기업에서 바로 경력을 쌓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간 쌓아놓은 허접한 서평들을 여기저기에 포트폴리오라고 우겨봤다. 나름대로 인정을 해주어서 의외로 몇 군데에 1차 서류평가 패스를 했고 5인 이하의 작은 출판사에 최종적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퇴사자가 되었다. 나의 퇴사는 누군가에게 '자신만의 방이 생기는 일'이었을 거다.


나에게도 또 다른 방이 필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돈이라고 할 만한 걸 컨트롤하고 홀로 설 방을 알아봐야만 했다.

그렇게 만난 곳이 나 또한 오류동역이었다.

당시 나는 1호선 인천방향 지하철을 타고 온수역에서 7호선 지하철로 갈아타서 부천의 신중동역으로 출근을 했다. 퇴근길은 그 반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천에서 서울 방향으로 출근을 하고 반대 방향으로 퇴근을 하기 때문에, 나의 출퇴근은 아주 편했다. 직전 중견 기업에서의 나름 갖춰 입고 다니던 습관은 금방 무너졌고 짧고 사람이 없는 출퇴근 길을 편한 복장으로 쉽게 다녔다.(회사가 쉽지는 않았지만...)

실평수 4평 남짓, 매트리스 말고는 가구가 없던 방. 나는 드디어 출가한 지 몇 년만에야 드디어 혼자 사는 방을 얻었다. 그 기쁨이 말도 안 되어서 그 좁은 공간에 친구들을 계속계속 불렀다.




≪우리 같은 방≫ 최다정 작가 또한 '내 방에 없어도 되지만 있는 것들'을 말하며 마치 빛나처럼, 마치 나처럼 혼자 사는 작은 방에 대한 소중함을 표한다.



싱글 침대조차 들어가지 못해 이불을 펴고 간신히 누웠던 방이다. 그러나 공부와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혼자의 공간이 간절했던 때였기에 그 방에서 지내는 시간 내내 몹시 감사했다.

열린책들의 《우리 같은 방》 p.42





나의 서울에서의 첫 번째 방은 첫 직장에서 얻어준 기숙사였고, 두 번째 방은 오류동역 오피스텔 원룸이었다.

세 번째 방이 지금의 이 방이다. 그러니까 남자친구는 나의 짧지 않은 서울 생활 환경 전부를 본 셈이다.

나와 만나는 동안 남자친구도 방의 이동이 있었다. 처음 만나던 당시 살고 있던 불광동의 그 방을 나는 여전히 정말 사랑한다. 남자친구가 없을 때에도 그곳에 가서 쉬었다. 왜인지 무언가 쉼이 되는 공간이었다.

그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엄청나게 마셨고, 취한 김에 떠오르는 사유를 공유했고, 얽히는 공감에 진심을 다해 감사를 표했다.


거기 돼지곱창집 양이 정말 많고 맛있었는데. 당신의 퇴근과 당신과 함께할 주말을 기다리며 금요일마다 책을 읽던 카페가 있었는데.

뒤늦게 알게 된, 밤에는 알코올도 파는 동네 작고 예쁜 카페가 정말 취향이었는데.


서로를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고 많아졌다. 남자친구는 고양시에 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강남 근방에서 일하게 되어 그쪽으로 방을 옮겼다. 지금 나는 서울 한복판 가장 번화가에 있는 직장에 다닌다. 나의 조부께서, 외조부께서 젊은 날을 열기를 뿜으며 보냈던 곳, 종로.



그리고 얼마 전부터 내 삶에 변화가 생겼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던 중, 종로에 있는 서점에서 본 적 있는 박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몇 번 데이트했다. 그의 성을 알게 되었는데 박이 아니라 고였고, 제주도 출신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기억 속의 이름을 바꾸고 싶지 않아 계속 박이라고 불렀다. 그는 프레데릭이라고도 불리었다. 피아노곡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프레데릭 쇼팽을 기억하며 붙였던 이름이라고 한다.

서울셀렉션의 《빛나》 p.73




그리고 이제는 나의 작은 방을 다른 사람의 방 옆에 나란히 놓으려고 한다. 벽도 없이.

9월, 동대입구역에 있는 기도가 쌓인 방에서 식을 올린다.

학창 시절부터 거기에서 식을 올리고 싶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했는데 그게 실현이 되다니 신비롭다.



그들이 사는 집은 동대입구역 근처에 있었다. 잠시 후 한나는 물었다. "절에서 뭘 보았니?" 한나는 나오미가 신의 은총을 받았을 거라고, 그래서 기쁨이 충만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같은 책, p.194




벽이 없다는 건 어떤 감각일까. 사실은 아직 두렵기도 하다.

나도 모르던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있을까 봐. 혹시나 상대가 감추고 싶어 하던 걸 내가 마음대로 만질까 봐. 하나의 방을 공유하지 않아도 그런 경우들이 있을 텐데 미성숙한 내가 최선의 예를 갖출 수 있을지.

그리고 그의 전통과 나의 고집이 잘 섞여 새롭지만 같은 색을 낼 수 있을지, 혁신을 즐길 수 있을지, 새로운 풍경을 함께 아주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



나 역시 은연중에 사람들의 장롱 문을 벌컥 열어젖혀 그들을 곤란하게 만든 적이 있을 것이다.

열린책들의 《우리 같은 방》 p.103


방에는 그곳에 머무는 한 사람의 전통과 혁신이 교묘히 대치하고 있다. 방의 규격에 철저히 복무하며 수행하는 온갖 것의 배치와 그것을 채우고 비우는 동안 반영되는 한 사람의 생각과 취향.

같은 책, p.115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좋아하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세공하여 더 많은 풍경을 간직하는 일이다.

같은 책, p.115




그럼에도 둘이 한데 모여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신선한 열매들, 새로운 색과 맛과 향. 그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더 크다.(?)(뭔가 수줍음에 물음표를 붙여본다.)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면 이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견디고 즐겨야만 하는 일일 거다.

이제 처음 보는 방의 문을 열 때!



그 미련을 져버리고 나아간 자리에는 내가 길들여야 할 들판이 드넓게 보였다.

같은 책, p.138


이름의 무게가 쌓이던 시절의 기분이 한순간에 하나의 방에 가지런히 들어앉았고, 그러면 비로소 방의 문을 닫고 나와 다음 방을 찾아 떠날 수 있었다.

같은 책,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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