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반드시 올바르게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여기서 올바르다의 기준은 도덕적인 것을 말한다. 절대선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렇지 않은 세계는 상상할 수 없었다. 유년시절 그러한 신념은 매사에 수동적인 태도를 만들었다. 피해의식에도 불을 지폈다. 예를들면, 나에게는 불우한 사정이 있으니 타인이 누가 됐든 나를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아픈 가정사를 일부러 발설한다거나 그랬다. 그렇게 하면 존중받을 수 있을거라고 순진하게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영악하다. 이해받고자 발버둥쳤던 행동들이 도리어 상처의 화살로 날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무시했고 비난했으며 온갖 이유로 괴롭혔다.
방어기제의 한 종류인 '분리(Splitting)'라는 개념이 있다. 사전에는 이 분리에 대하여 " 자기와 남들의 이미지, 자기와 남들에 대한 태도를 '전적으로 좋은 것'과 '전적으로 나쁜 것' 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것으로 분리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흑백논리 혹은 이분법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방어기제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은 유아시절에 엄마에대한 이미지를 통합시키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엄마가 나를 아끼고 보살펴줄 때도 있고 때로는 혼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반된 이미지를 합쳐버리면 나쁜엄마가 착한엄마를 정복해버릴 것 같았나보다. 마치 사과의 일부분이 썩어있는 데 그 부분만 도려내더라도 이미 사과에 썩은 부분이 퍼져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라고 해야하나. 그 결과 방어기제로 숱하게 많은 분리를 사용했고 선과 악의 경계는 더욱 뚜렷해졌던 것이다.
제일 두드러진 분야는 역시 인간관계였다. 친구를 한 없이 좋아하다가도 조금만 안좋은 모습이 보이면 얼른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방은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자기를 막 칭찬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비난하는게. 그러한 이유 때문에 유년시절을 통틀어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형성한 적이 별로 없다. 지금이야 사회적인 페르소나를 잘 사용하니까 문제가 없지만, 그때는 내면에 분리라는 큰 개념 때문인지 도무지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을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나도 답답했겠지만 주변 사람들도 많이 힘겨워했다. 물론 그만큼 큰 관심을 받았나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선과 악이 분명한 세상에서는 누구든 선이될수도 악이될수도 있었다. 카테고리가 단순하니까 감정의 기복도 심했다.
내적 성장을 조금이나마 하고난 뒤 바라본 세상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히어로영화속의 세계관처럼 선과 악이 분명했다면 오히려 살아가기 좀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이든 간에 선과악이 혼재되어있는 형태가 더 많았다. 그런 현상을 이해하기에는 마음이 따라주지를 않아서 꽤나 고생을 했다. 어떠한 계기로 처음 흑백논리나 이분법적 사고가 중화됐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적합한 사고방식을 가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이 되더라. 단단한 바위를 떨어지는 물방울으로 구멍을 내는 정도의 노력이라면 표현이 될까.
지금까지 성장한 만큼 미래에도 삶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한 가득일 것이다. 하지만, 선과 악을 넘어섰던 순간만큼 인생에서 큰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지는 확신 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과거의 나의 삶에서 영향력이 컸던 개념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올바른 기준을 위해 싸우더라도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올바르지 않은 형태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선악을 넘어서,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