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을 빌릴 사람이 없는 세상

by 이이진


상식적으로 15만 원, 30만 원 적게는 1만 원이 없어서 대부 업체를 찾아간다는 자체가 주변 인간관계가 거의 단절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네요. 아니라면 주변에 말할 수 없는 이유로 돈이 필요하다거나. 대부 업체 입장에서는 이 돈이 없어서 대출을 받으러 온 사람 금액만 봐도 <이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뭔가 숨기는 이유로 돈을 필요로 한다>는 걸 바로 알아챌 거고, 그러니 이런 업체들이 마구잡이로 돈 갚아라 압박이 들어와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15만 원, 30만 원을 못 갚아서 대부 업체에게 본인 나체 사진을 보낸다는 게 참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이 정도 금액이 급하게 필요한 사정이 생긴 자체로 이미 그 사람의 일상은 상당 부분 불안정하다 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문제는 이게 20대와 30대 전반에 걸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으로, 20대와 30대의 삶이 전반적으로 불안한 계층이 벌써 발생했다는 것이죠.


제가 대학을 들어가고 2학년쯤 됐을 때 학부제라는 것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면서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방향을 정했고, 학부제라는 게 결과적으로 대학에서 특정 과목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서, 과 중심의 선후배 관계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팽배했습니다. 워낙 학벌 중심 사회였던 터라, 이 선후배를 깬다는 게 필요하다는 사회의 암묵적 동의 또한 있었고요.


따라서 대학 입학 후 선배들이 잔소리를 하면서 (소위 말해 꼰대 짓) 밥도 사주는 문화가 저 이후는 거의 끊겨버렸고, 때문에 저 또한 후배들에게 딱히 밥을 사주거나 인연을 유지하는 경우가 별로 없게 되었죠. 물론 이 와중에도 끈끈한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는 학우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과 중심이라기보다는 특정 취미 중심으로 변화하며 유지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예전 부모 세대들 중에는 친척이나, 고향 후배나, 학교 선배, 직장 동료라는 이유로, 보험도 들어주고 돈도 빌려주고 심지어 보증까지 서다가 본인이 파산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는 인연이랄까, 어떤 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 서비스가 제공되는 구조였는데, 지금의 20대와 30대들은 이 구조가 급속도로 붕괴하면서 결과적으로 1만 원도 구하기 힘든 사람들이 발생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전 세대들 중에도 이 돈이 없는 사람들이 있기야 했겠지만, 지금처럼 국가가 어느 정도 부유한 상황이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도 다 가난했던 차이가 있죠. 특히 요즘에는 돈 빌려달라고 하면 그건 너를 진짜 존중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까지 팽배해져서. 실제로 빈번히 돈 빌리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요.


국가나 금융 시스템이 국민에게 돈을 빌려주자면 학자금이라거나 생활 자금, 병 치료 자금, 주택 구매처럼 구체적으로 <건설적인>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만약 불건전한 목적으로 돈이 필요한 경우라면 결국 이 사기(?)를 이용하지 않을까 싶고,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더군다나 형제나 친척도 거의 없이 자라기까지 하는데, 과연 이 사기가 없어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런 대부 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과연 조사에 응할까 싶지만, 피해자에 대한 조사가 있어야겠다 싶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까지 대부 업체를 이용해야 했는 지를 보고 대출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불을 해부는 시스템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고, 아마 그렇게 해도 결국 돈만 받고 일하러 안 오는 사람들이 속출하여 그 제도도 유지가 될까, 싶긴 한데, 여하튼, 그런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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