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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Jul 21. 2024

맞춰는 주지만 욕망하지 않는 연인에 대한 불만족

욕구를 제한시키는 연인에게는 불만족이 생기죠

https://youtu.be/wzl6 ZctKz-M? si=E6 Qd8 lzpW3 HdE9 GR


당연히 상대방이 잘해주고 맞춰주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 <고마움>은 느낄 수가 있죠. 그런데 연인 관계에서는 <이성적인 호감>이나 <본능적인 표현>보다 자칫 이 <고마움>이 앞설 경우, 결국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야 하는 시점에서 불편해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를 약간 종교적인 관계라고 보고 있는데요. ^^ 


종교 믿으시는 분들 중에 (물론 종교가 없어도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만) 헌신적으로 어려운 데서 희생하는 분들을 보면 같은 인류 차원에서 감사함은 생길 수가 있지만, 막상 그 사람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는 껄끄러움이 생길 수가 있거든요. (물론 이런 헌신적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예를 들어 비싼 음식점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길에서 난민을 위해서 고생하는 분들을 보게 되면 느껴지는 그 어떤 불편함과도 약간 통하는 거죠. 먹고 싶은 음료 하나 먹는 것일 뿐인데, 나도 오랜만에 맛있는 것 좀 먹는 건데, 매사에 나를 위주로 돌아가는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상대방의 헌신으로 인하여 그 음료 하나, 식사 하나조차 욕구가 되는 불편함과 비슷한 겁니다. 


이런 분들은 맞춰주고 헌신은 하지만 딱히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지도 않고 때로는 세속적인 면도 별로 없다 보니까, 생각 없이 즐겁게 있고 싶은 순간조차 암묵적으로 진지해지고 따라서 다른 데 신경 쓸 필요 없는 편한 연애가 될 수는 있어도 즐겁고 유치하고 이런 순간을 기대하는 경우 답답할 수는 있습니다. 


연애라는 게 좀 바보 같기도 하고 이기적으로 자기감정을 토로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일 텐데, 어떤 면에서는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상대방이 은근히 거부하는 거라고도 보이죠. 뭐든지 다 자기에게 맞춰줬으므로, 여성 입장에서는 어떤 불만도 가질 수가 없는데, 그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암묵적인 통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영상에서도 여성이 <나 말고 다른 애들도 다 이렇게 맞춰줬지>에서 읽히는 부분이고요. 이 내용은 조금 길어서 생략합니다. 


그나마 이 영상에서의 주인공 여성은 이런 남성이 <착하다>고 인지하고 여기에 자기 취향이나 이런 걸 좀 넣어서 맞춰주는 연애가 아닌 서로 교환이 되는 연애를 하고자 하지만, 평소 주변에 자기에게 맞춰주는 어른들이나 비위 속에서 자란 이기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이런 남성이 착하다는 인지를 못 하고 당연히 이를 이용하게 되며, 이런 관계는 결국 파탄이 납니다. 암묵적인 통제가 아닌 몸에 이런 헌신이 벤 사람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착취당하는 관계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연애라는 건 서로를 욕망하는 것이고 욕망 속에서 온갖 감정의 나락을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를 신뢰하는 한 편으로 서로를 긴장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자신이 욕망하는 것에 불편함이 안 생기겠죠. 나한테 맞춰주는 건 좋지만, 나를 욕망하지 않는 건 불편해, 아마도 이런 감정일 가능성이 크고 이게 충족되지 않으면 결국 나를 욕망하는 사람을 찾아갔다가, 또 이런 맞춰주는 사람이 좋은 걸 깨달았다가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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