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살아가면서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때와 다르게 생활에 미디어 사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 삶 속에 녹아있다. 우리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게는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에는 잠시 쉬어가는 것이 좋다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어떤 부모도 처음 부모가 되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새롭고 배워야 한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개인 삶의 질이 중요해지면서 내가 자식을 위해 포기하는 것들이 생기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조금 더 편한 육아를 위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쥐어주고 TV를 틀어준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키기 싫어서 '엄마도 밥은 편히 먹어야지, 영어공부를 위해서는 영어 미디어를 보여주는 거야,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학습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자극해서 익히는 거야'라고 핑계를 댄다. 나 또한 일부 동의하고 일부 행하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의 인생을 바꿔준 유치원을 만났다. 바로 숲유치원이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숲에서 아이들을 놀게 해주고 싶어서 보내기 시작했던 숲유치원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바로 미디어를 쉬어가기!
미디어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감정, 운동, 지적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측두엽의 기능이 떨어지고 시각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후두엽 기능만 발달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창의력의 기초인 공상과 상상을 하지 않는 뇌가 정지된 상태가 되면서 집중력이 저하된다. 안 좋은 영향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나도 요즘 엄마와 다를 것 없는 엄마였다. 친구들과 밥 한 끼 편히 먹고 싶어서 두 돌이 막 지난 아이에게 뽀로로를 틀어주고 친구와 잠시 식사하며 수다를 떨었고, 아직 식당에서 식사가 익숙하지 않은 나의 첫째에게 얌전히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마트폰 거치대까지 사서 들고 다니며 잠시 TV를 보게 했다. 과하지는 않았지만 부끄럽게도 난 그랬다. 하지만 미디어가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을 듣고 배우고 공부해 가며 큰 결심이 필요했다. 숲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난 2018년 어느 날 5세 첫째와 3세 둘째를 앉혀두고 사과부터 시작했다.
" 애들아, 엄마가 공부해 보니 TV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더라고. 너희 머릿속에는 생각하는 뇌가 들어있어. 근데 TV를 보면 뇌가 생각을 안 하고 멈춰버린대. 멍~~한 상태가 되는 거지. 엄마도 몰랐어. 미안해. 그래서 엄마가 앞으로는 너희에게 TV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해. 나쁜 것을 사랑하는 내 아가들에게 줄 수는 없더라고. 엄마도 노력할께, 우리 같이 노력해 보자."
최대한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뇌파 사진도 보여주면서 아이들과 한참 대화를 나눴다. 5세였던 첫째는 신기하게도 단 한 번도 TV를 보여달라고 떼쓰지 않았다. 오히려 둘째는 아직 서툰 말로 TV가 보고 싶다고 3일 정도 여러 번 요구하다 그만두었다. 그러고 5년이 지난 우리 집. 우리에게는 크나큰 변화와 반짝이는 보물이 가득하게 되었다.
과연 TV를 보지 않으면 무엇을 하고 놀 수 있을까? 부모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우리가 하는 놀이들을 적어보니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우리가 하고 있는 놀이가, 그 반짝이는 보물이, 이렇게 많나? 난 다시 한번 놀랐다. 그 보물이 된 놀이들을 하나씩 살펴보려 한다.
우리 집에는 찬영 TV가 있어요!
하루는 방안에 들어간 아이들이 깔깔 대며 웃는 소리에 무엇을 하나 살짝 문을 열어 들여다보았다. 2층 침대의 1층에 둘째가 앉아서 데구루루 구르며 웃고 있었다. 첫째는 바닥에 앉아서 버섯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버섯 도감을 들고 버섯을 설명하는데 아기 방귀 버섯이 나온 모양이었다. 첫째는 방귀 버섯의 생김새와 왜 방귀 버섯인지 설명하는 장면이었는데 둘째는 그것이 너무 웃겼나 보다. 우리 집에는 채널편성표가 하나 있다. 바로 첫째의 찬영 TV! 채널에는 버섯 TV, 버섯 라디오, 종이접기 TV, 상상 속의 인물(프레거스)의 이야기, 운전 TV 등등 시시 때때 추가되고 변경되는 TV 편성표이다. 둘째는 매일 형에게 TV 방송해 달라고 조른다.
현재 우리 집에서 미디어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았다. 가끔 할머니 댁에 가서 보는 경우, 친구들이 놀러 와서 함께 보는 영화 상영, 주말 게임 또는 미디어 포함해서 일주일에 1시간 정도는 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협의를 통해서 규칙을 정해두면 미디어에 대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벤트가 있지 않는 한 주중에는 거의 TV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탄생한 찬영 TV, 기발하고 창의적인 두 아들의 TV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존경하게 만든다. 나는 심심할 때 저렇게 놀 수 있을까?
나만의 공간, 집 만들기!
우리 아이들은 만들기를 좋아한다. 특히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 보통 레고 블록으로 집을 만들지만 우리 아들은 집안에 모든 재료를 사용한다. 매트, 이불, 수건, 노끈, 집게, 박스, 필요하다면 주방기구까지 사용한 집을 만든다. 지금까지 집안에 탄생한 집의 개수만 해도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이 집을 만드는 데는 수시간 걸리기도 하고 하루가 꼬박 걸리기도 한다. TV를 보여주고 내 시간을 얻을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집을 만드는 사이는 나는 내 일을 할 시간이 충분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트를 세우고 고정하고 이불로 문을 만들고 그 안에 멀티탭을 끌어다가 전등을 설치하고 작은 선풍기도 설치한다. 둘은 집을 지으며 손발이 척척 맞는다. 그리고 들어가서 그 안에서 파티를 하고 책을 읽는다. 그런 집을 수없이 짓고 다시 짓고 하기를 반복한다. 코로나가 막 시작해서 밖에 나가기 두려웠을 때 우리는 집안에서 집을 만들며 놀았다. 그래서 어느 날 큰 마음먹고 종이집을 주문했다. 아이들은 그 집을 보고 너무 행복해하며 3일 동안 집을 꾸몄다. 2층 침대 옆 좁은 공간에 정원을 만들고 종이 집 안에 카펫을 깔고 전선을 테이프로 다 붙여가며 전등과 선풍기를 설치하고 상을 펴서 식탁을 만들고, 완성되는 날 파티를 했다. 그 파티에 초대된 나는 감사인사를 하고 안에 들어가려다 문에 걸려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슈퍼 울트라 귀여운 집이었다. 아직도 둘은 종종 그 종이집에서 파티를 한다.
찬영 나라, 서우 나라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이야기인가! 마스킹 테이프 하나만 있으면 나라가 건설된다. 우연히 지나가다 도로 모양의 마스킹 테이프를 발견했다. 2000원 하는 테이프 하나로 우린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 매트 위에 국경을 설치하고 집에 있는 모든 블록과 자동차를 소집하고 과학상자까지 등장해 작은 세계를 꾸민다. 그 두 나라에는 아이의 성향과 취향이 그대로 투영된다. 동물원, 학교, 시장, 세차장, 집 등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시설이 건설되고 필요하면 국경을 넘어 서로 필요한 것을 사오고 여행하는 역할 놀이가 그 나라 건설의 하이라이트이다. 나는 소파에 앉아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참지 못하곤 한다. 때로는 너무 웃겨 나의 웃음이 새어 나오면 둘 다 민망해하며 조그마한 소리로 대화를 한다. 이럴 때는 모르는 척 다른 방으로 이동해 주는 것이 매너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둘은 또 나라 놀이에 흠뻑 취하곤 한다. 이렇게 멋지게 만든 나라는 쉽게 정리하지 않는다. 하도 많아서 우리는 3일만 유지하기 규칙을 정했을 정도이다. 아이들은 이제는 아쉬워하지 않고 다시 해체를 한다. 다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식물 사랑
나는 식물을 좋아한다.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식물이 있으면 나의 발걸음을 멈춰서 궁금해하고 알고 싶다. 아이들도 나의 영향과 숲 유치원의 영향인지 식물을 좋아한다. 산에 갔을 때 흔히 보는 나무와 풀들의 이름과 생태는 웬만한 어른들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 참나무만 보아도 상수리나무인지 굴참나무인지 구분하며 도토리의 모양에 대해 설명해 준다. 모든 씨앗은 발아시켜 보고 키우고 싶어 하며지나가다 발견한 손가락만 한 묘목은 집의 화분에 옮겨 심는다. 봄에는 돌나물을 가지고 와서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화분에 심어 키우기도 한다. 식물 사랑은 나보다 더 대단하다. 학교 다녀오면 "다녀왔습니다." 인사하고 물조리개에 물을 채워 식물들에게 달려간다. 그러니 우리는 매년 집 주변 텃밭을 신청해서 작물들을 키운다. 집에서 키울 수 없는 식물들은 텃밭에서 모두 시도해 본다. 호박, 수박, 바질, 깻잎, 오이, 옥수수, 고수, 땅콩, 고추, 가지, 양배추, 부추, 파 등등 수많은 작물에 도전한다. 하물며 옥수수는 씨를 직접 발아해서 심기도 한다. 함께 밭을 갈 때는 냄새나는 퇴비를 섞어가며 돌도 골라내고 흙을 뒤집는다. 흙을 손으로 만지고 호미로 밭을 갈며 발견하는 곤충들을 관찰하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값진 경험이 된다. 또 시간을 내서 물을 주러 가고 그렇게 수확한 수확물을 가지고 직접 요리도 만들어보고, 친구들을 나눠주기도 한다. 그 과정은 아이들에게 노동의 의미와 식량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양한 모양의 열매들은 아이들에게 멋진 놀이가 된다. 원하는 표정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꽃을 만들기도 한다.아이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요리 놀이
아이들과 요리를 하는 것은 아주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혼자 하기도 힘든 요리를 서툴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리를 하다 보면 좋은 취지와 상관없이 엄마의 마음에 파도를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파도만 잘 이겨내면 아이들은 또 다른 분야를 경험하고 탐험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 유아기 때 우리는 모래놀이를 자주 했다. 부드러운 모래를 만지는 활동은 아이들에게 재미뿐만 아니라 안정감, 촉감 발달 등에 도움이 된다. 집에 파랗고 큰 천막을 거실에 깔고 마음껏 모래놀이를 한다. 하지만 요리는 모래 놀이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우선 음식의 종류를 정하고 함께 레시피를 찾아본다. 그러면 자연스레 순서에 대하여 함께 익히고 준비한다. 이런 시퀀스를 기억하고 상상하는 것은 그 어떤 코딩의 알고리즘을 짜는 것보다 어린 나이에게 도움이 된다. 치아바타와 피자 등 반죽이 필요한 음식은 모래놀이를 뛰어넘는다. 반죽은 원하는 만큼 한다. 깨끗하게 씻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다 만들어본다. 과연 빵이 나올까 할 정도로 사람도 자동차도 만들어본다. 그리고 보일러를 올리고 방을 따뜻하게 하고 반죽을 이불속에 넣고 타이머를 맞추고 부풀어 오르는 것을 관찰한다. 가끔 함께 발효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불속에서 킥킥되며 함께 그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반죽을 폴딩 작업을 한 후 다시 발효한다. 이렇게 반나절을 기다린 다음 빵을 구워내면 내가 만든 빵이 탄생되니 아이들은 신기할 따름이다. 피자는 여기에 자기가 원하는 토핑을 넣고 구우니 먹지 않았던 재료도 먹게 되는 큰 효과와 결과까지 더해진다. 또 아이와 함께 하기 좋은 요리 중 하나는 동그랑땡이다. 함께 재료를 다져서 섞어 소를 만들고 분업으로 함께 동그랗게 성형을 한 후 한 명은 밀가루에 퐁당, 다른 한 명은 계란에 퐁당 그리고 엄마는 동그랑땡을 맛있게 부친다. 가끔 가족의 주문을 받아 모둠 전을 부쳐서 할머니 댁에 배달을 갈 때면 아이들의 어깨에는 매우 큰 뽕이 들어가 있다. 그 발걸음은 너무 자랑스럽고 귀엽다. 어떠한 요리도 함께 하는 것은 좋은 공부이자 놀이이자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든 우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위와 같은 놀이 말고도 우리 아이들이 하고 있는 놀이는 더 많다. 그리고 아이들은 놀이를 만들어내는 데는 척척박사다. 미디어는 이 박사과정을 멈추게 만들고, 생각을 마르게 만든다. 어디를 가도 미디어가 필요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 주변을 관찰하고 탐색하면 놀이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멈추는 것이 아이에 따라 부모에 따라 어렵게 느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하나의 변화가 아이에게 평생 중 가장 소중한 선물이자 기회가 될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기회를 준 우리 최고의 선물, 일자산 숲 탐험대(숲유치원)에게 항상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