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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루 Sep 29. 2023

1) 별거 아닌 듯 보여도 별거인 하루를 보냅니다.

무화과잼

너무나도 무기력해 내 하루가 너무나도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오늘은 뭘 했지?'로 시작된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갑자기 나의 하루를, 나의 요즘을, 나의 인생을 보잘것없는, 별것도 없는 것으로 만들며 끝이 난다. 그러다 또 문득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살랑이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뭇잎에도, 떠 있는 구름 한 조각에도 행복을 느끼며 의미를 찾아내던 내가 떠올랐다.

'이럴 수는 없지.'

살아있는 시간 동안 누구에게나 별거 없는, 별것도 아닌 하루는 없으니까.


내 하루 속 별거를 찾는 여행. 매일의 일상을 여행하는 하루들. 작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사진들과 함께,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무화과잼

가끔은 지나치게 부지런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은 이럴 체력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무엇이든 해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그런 날. 요즘의 나는 대개 잠에 들기 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한 그날의 하루를 반성하다 '내일은 반드시 이걸 하고 말테야', 하다 잠이 든다. (그리고 새벽 내내 다음날 해내야 할 것을 떠올리며, 한편으로는 시달리기도 한다.) 어젯밤 나에게 부여한 과제는 무화과잼 만들기였다. 무언가 수고스러움으로, 정성으로, 다정함으로 나를 채우고 싶을 때 나는 작은 병들을 소독하곤 하는데, 오늘 그 작은 병 안에 들어갈 것은 무화과였다.


아주 곱게 갈린 시판용 무화과잼이 아닌, 알갱이가 살아있어 무화과 씨가 톡톡 씹히는 무화과잼을 처음 맛본 그 순간은, 내 잊히지 않는 음식기억들 중 하나다. 너무 물렁하고 단맛의 복불복도 심하다고 생각이 들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과일이 무화과였는데, 작은 와인바에서 여러 종류의 치즈와 함께 조금 나왔던 그 무화과잼의 맛이 어찌나 좋던지. 무화과 조각을 또 쪼개고 쪼개서 아껴 먹으며, 이건 내가 집에서 꼭 한 대접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그 순간까지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무화과잼을 만드는 방법은 요리를 사랑하는 내 기준, 생각보다 간단하다. 딱딱한 반건조무화과를 물에 헹군 뒤, 뜨거운 물을 부어 무화과가 어느 정도 이리저리 비틀릴 수 있을 정도로 불려낸다. (보통 십 분여 정도면 충분하다. ) 찬물에 무화과를 다시 한번 헹구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무화과를 하나씩 집어 들어 단단한 꼭지를 쏙 쏙 잘라낸다. 이후부터는 선택지인데, 무화과를 통으로 조려내도 되고, 무화과를 적당히 자른 뒤 믹서기에 갈아도 되고, 나처럼 적당한 식감을 원한다면 사진처럼 어느 정도 잘게 가위로 잘라내도 된다. 그 후에는 적당량의 레드와인과 설탕, 레몬즙, 물 조금을 넣고 약 20분 정도 수분을 날리며 무화과 잼이 걸쭉해질 때까지, 눌어붙지 않도록 잘 저어 완성하면 된다.


사실 나의 작은 병 시리즈들은 내가 먹겠다는 의지 30%, 마음을 선물하겠다는 의지 70%인데, 처음 무화과잼을 만들 때도 70%의 영향이 컸다. 남편의 유일한 여자 사람 친구이자, 지금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언니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물을 하자니 맛도 맛이지만 어떻게든 예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 잘게 자르지 않고 통으로 무화과의 모양을 살려 무화과잼을 만들었다. 혹여라도 무화과가 부서질까 한시도 냄비 앞에서 떨어지지 않고 아주 마음을 쓰며 그 모양을 살리려 애썼다. 내가 맛보았던 그 무화과잼을 내가 만든다는 사실과, 작은 와인바에서 먹으며 느꼈던 그 행복을 전해준다는 설렘이 더해져 무화과잼을 만드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만든 무화과잼은 생각보다도 훨씬 맛이 있었으나, 막상 통으로 조려진 반건조 무화과는 나이프가 아니고서 잘 잘리지 않았고, 통으로 먹기에는 조금 지나치게 단 감이 있었다.


하지만 언니에게 무화과잼이 든 병을 건네며 먹는 방법까지 알리는 것은 언니의 자유 영역을 침범하는 느낌이 들어 "정성껏 만들었는데, 통으로 먹기에는 조금 달 수도 있어요."라고만, 잘라서 조금씩 먹어야 한다는 건 돌려 돌려 전했다. 그런데 웬걸, 언니가 나에게 고맙다며 보내준 인증사진에는 잘 구운 식빵 위에 무화과가 덩어리째로 여러 개가 올라가 있었다. 그 사진을 보니 혹시라도 선물이라 열심히 먹긴 해야 하나, 먹으며 고생하지는 않았을까 덜컥 걱정부터 됐다. 남편과 둘이 나란히 앉아, 차마 너무 달지 않냐는 말은 하지 못 한 채 빵과 조화를 이루기에는 버거운 통무화과를 먹느라 혹여나 어색한 웃음을 짓지는 않았을까 염려되는 마음이 들어 내내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무화과를 잘게 잘라서 잼을 만들고 있다. 내가 의도한 바가 있다면, 그것을 그 모양 그대로 전하는 것이, 그러하지 못 하였다면 나의 의도를 돌리지 말고 말로라도 고이 잘 전달하는 것이 누구를 위해서라도 좋은 것이라는 걸 이 무화과잼으로 새삼스레 배웠다.


여하튼, 오늘도 나의 무화과잼은 작지만 두 병이다. 한 병은 옆집 언니를 생각하며 담아냈다. 작고 예쁜 여자아이가 두 명이나 있는 집이니, 분명 맛있게 먹을 것이라 기대하며. 네 가족이 오손 도손 앉아 잘 구운 식빵에 사랑이 담긴 무화과잼을 조금씩 얹어 가며 행복해할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마음을 정성스레 담아냈다.


이렇게 오늘도, 별 거인 정성스러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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