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 방문하는 환자분들은 대부분 지극히 보통의 가정이다.
나도 지극히 보통의 가정이라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사는 걱정은 크게 하지 않고 공부했고, 취업을 했고, 결혼을 했다.
사치는 부리지 않지만 그래도 계절마다 옷을 바꾸고,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몇 번 고민 끝에 구입하기도 한다. 때때로 부모님들께 용돈도 선물도 드리고 기념일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하며, 가족들과 좋은 곳에 여행을 가고 쾌적한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보기도 했다.
이런 지극히 보통의 가정이지만, 항상 고민은 있었다. 아빠가 아팠고, 행복함 뒤에는 걱정과 불안이 있었고, 갑자기 큰 병원비가 들어갈 수술이 있으면 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부모님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근로수입이 중단되면 자녀들이 부양을 해야 하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늘 하고 있었다. 더 잘살고 멋지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그냥 평범한, 큰 불운이 없고 서로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가정인 것에 감사했다.
나는 병원에서 보통, 지극히 보통인 이런 가정을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사랑 상담을 한다고 하면 아주 가난하거나, 아주 열악한 상황인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만나는 가정은 지극히 나와 같은 보통의 가정이다.
열심히 살아가고, 가족들을 염려하고, 행복한 순간이 많은 그런 가정.
하지만 병원에 입원한다는 일생의 몇 번 찾아오지 않는 사건은 그 지극히 보통의 가정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된다. 의지하던 사람이 힘을 잃거나, 그 존재가 소멸되어버릴 때, 의지하던 사람에게 내가 오히려 힘을 주어야 할 때,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모은 돈이 단 며칠의 입원으로 간병비와 병원비에 모두 지출되어 버릴 때, 지극히 보통인 가정은 무너진다.
자력으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부탁하는 방법을 종종 잊고 사는 듯했다.
도움받는 것을 민폐라 생각하고, 상담받는 것에 죄책감 혹은 수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분들과 상담을 하면 내 가족, 내 친구들이 떠오른다.
누구나가 다 어려운 순간을 맞이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정계에서, 교육계에서, 사업계에서 이런 큰 물에서 큰 손으로 반평생을 보낸 분들도
삶의 굴곡진 어느 한순간 우리와 만나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구부러진 곡선처럼 이어진 삶의 어느 한 지점에 서있어, 모퉁이를 돌면 어떤 상황이 나타날지 예측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게 맞다.
얼마 전 만난 분은 기적적으로 신장이식을 받아 새 삶을 얻게 된 환자의 배우자분이셨다.
코로나로 힘든 한 해였는데도 자녀들 둘이나 결혼시키고, 혈액투석을 하는 환자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였다.
우리 가족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환자의 신장이식은 그 어느 순간보다 가족들에게 기쁜 순간이 아니셨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자분은 매우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회복지 상담을 진행하면서 배우자분은 몇 개월 전 새 가족이 된 사위에게 이 상황 자체가 부담이 될까 봐 '미안해서' 기쁜 순간을 공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7년 넘는 세월을 매일같이 투석 병원으로 환자를 실어 나르면서 고생했던 그 고된 순간들이 끝이 났다는 것에서 오는 '시원섭섭함'을 함께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환자와 함께 배우자도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근로현장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음에도 영업을 하며 열심히 생활하다 갑자기 찾아온 또 다른 삶의 변화에 '그동안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정신력이 그제야 맥없이 풀어지는 상황'이 아니었을까라고 함께 짐작해보았다.
자식에게는 부모로서, 남편에게는 배우자로서 열심히 살아왔고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우고, 자력으로 모든 걸 해내려고 버텨왔던 60여 년의 보통의 순간들이
환자가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순간 파노라마처럼 지나가셨던 게 아닐까 싶었다.
"너무 기진맥진해요.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돌아보니 나도 너무 나이 들고 지쳤어요."
"돈을 좀 모아둘걸, 삶이 생각보다 녹록지가 않네요."
나는 '이식 수술을 받았다니 너무 기뻐요.'라는 기쁨에 가득 찬 한 문장의 말을 기대해서일까
그 말에 크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놀랐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병원에서 무너지는 순간을 많이 본다.
국가와 함께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빚도 내지 않고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은 정말 어려운 순간에 도움을 받을 여지도 많지 않다는 걸 본다.
무슨 큰 일이라도 당하면 어찌할까 싶어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아껴 저축한 500여만 원의 저축금액이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자유롭게, 어떻게 보면 다소 난잡한 생활을 하거나 건강관리를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 죄를 짓고 수감된 사람들은 병원에 오면 복지사각지대였다는 명찰을 달고 다양한 숨은 복지자원을 연계받는다.
매일 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무엇이 올바르게 사는 건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다.
가장 보통의 삶을 열심히 꾸려가는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복지혜택은 뭐가 있을까.
열심히 살다 마주한 고통의 순간에 주저앉지 않고 디뎌 일어설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잠시 잊고 살다가 가끔 이런 생각이 드는 날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