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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Aug 04. 2022

7. 진짜 필요한 시기에 진짜 필요한 도움을

어제와 오늘 의료사회복지사로서 해야 했고, 내일 해야만 하는 일.


무엇이든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일단 사람도 많다.

그만큼 집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고 진짜 모든 게 너무 많아져버려서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겐 이 넘쳐나는 모든 것들이 손아귀에 잡히는 것들이 아니다. 세상에 흘러넘치는 수많은 것들이 자신에게는 없다. 누군가에게 라면 한 박스는 최소한의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인데 누군가에게는 종류별로 넘쳐나는 라면은 기호식품이다. 언제든지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맛을 골라먹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다가도 당연한 것들은 곧잘 잊고 산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글. 

지난 어제와 오늘 의료사회복지사로서 해야 했던 일 그리고 남은 오늘과 내일 의료사회복지사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한 내용이 오늘의 글이 되었다.





내가 누리는 것도 적다고 생각하며 불평하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내가 누리는 최소한의 것 마저 누군가에게는 부재하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런 필요한 것들이 없는 상태를 우리는 결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들이 없는 결핍된 상태일 때 질병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찾아온다.


가난은 질병을 두려워하면서도 외면하게 하고, 제 때 치료받지 못한 질병은 중증 질병으로 악화된다.

견딜 수 없어 중증 질병을 가지고 병원에 방문하여 처음 마주하는 충격적인 순간은 고액의 치료비가 찍힌 영수증이다.


치료비로의 과지출은 다시 가정 경제를 무너뜨리고, 가난은 악화된다. 이렇게 가난과 질병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를 물고 있다.


하지만 환자분들을 상담하면서 상황을 잠자코 듣고, 충분히 사정하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이분들이 역경 속에서도 딛고 일어나려고 했던 순간.

그 순간에 정말 적절한 어떤 자원을 제공할 수 있었더라면 수렁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그 순간.

그 순간에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의지는 물론이고, 그들이 누구를 만났는가 와도 큰 상관관계가 있음을 더러 확인하게 된다.


그때 누군가 그 복지사업에 신청할 수 있다고 알려줬더라면, 그때 그 의사가 검사비용이 부담되어 검사를 주저하는 순간에 사회복지실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번만 설명해줬더라면, 그때 그 주민센터 직원이 보건소에 가보라고 딱 한마디 말만 더 해줬더라면...


이러한, 정말 정말 사소한 순간들이지만 어려운 시기에 이 사소함은 그들이 앞으로의 삶을 그려내는 데 있어 결코 사소함이 아니었을 거다.


대학병원에서의 사회복지의 상담은 매우 급박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 상담실과 병실을 오가며 상담만 해도 바빠 환자의 가정에 방문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한때 사업과 관련하여 가정 방문을 많이 진행하던 때도 있었는데 대학병원에 온 뒤로 수년만에 처음으로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가정에 방문해서 실제 환자분들의 삶의 현장 자체인 곳에서 상담을 하니 상담실에 앉아 상담할 때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또 보였다. 이 분들이 수없이 일어나려고 애쓰는 순간에 만났던 어느 소중한 직원분들이 건넸던 위로와, 실질적인 도움은 위태로워 보여도 이분들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데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의료사회복지사는 당장 질병을 치료해야 하는 그 위기의 순간에 있는 환자를 보통 만난다. 그리고 환자를 건강에만 치우쳐보지도, 어떤 경제적 상황에만 치우쳐보지도 않는, 생리-심리-사회적인 모든 요건을 다 고려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전문가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위기의 순간. 절망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그 순간에 눈앞에 서있는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비로소 선명해진다.


가난으로 이어지기 직전, 조금의 도움만 있다면 쓰러지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그 순간에

우리가 발로 뛰어 찾는 자원들이 그분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정서적 지지와 위로라는 사회복지사만의 처방이 또 그분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 수 있을지.


길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간만의 가정방문은 안일하고 무심하게 하루를 보내던 내게 갑자기 또 번뜩 눈을 뜨게 한 자극제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짜 필요한 시기를 찾고, 진짜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겠지.

환자와 가족들의 가장 간절한 순간 만나게 되는 '나'라는 사회복지사가 인간 그 자체로 도구가 되어, 그들에게 힘이 되는 순간들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겠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오늘 하루를 또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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