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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Aug 31. 2022

12. 늘 있었는데, 늘 없었던 그분들께.

수원 세 모녀 사건


복지사각지대의 문제는 늘 있었지만 보건의료복지 현장의 전문가들에게는 아무래도 8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가장 큰 이슈가 되었었다.


보건의료복지와 관련된 서비스와 체계들이 조금 더 촘촘하게 구성되고 모든 기관의 전문가들이 조금만 더 협력하고 관심을 가졌더라면 사회적 타살로 이어지지 않았을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현장에서 근무하면 수없이 많은 숨겨진 복지사각지대의 환자분들을 만나 뵙는데 그분들은 늘 어느 곳에서나 있었지만 제대로 된 복지시스템에 확인되거나 등록되지 못하여 없는 사람인 듯 지내오고 있었다.

그런 분들의 상황을 직접 보면서 현장의 어느 한 개인의 노력으로 시원하게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계속 체감해오고 있었다.


그 사이 분명 긴급지원이라든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라든지 다양한 복지사각지대의 어려움을 찾고 해결하려는 시스템 정비를 위한 노력이 있어왔다. 하지만 너무 허망하게도 다시,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했다.



중증, 희귀 질환을 앓고 있고 주소지를 이전한 뒤 새로운 주소지로는 제대로 전입조차 되지 않았으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경제적 몰락이 옭아매는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세 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딱딱한 기사로 마주하며 아침을 보냈는데, 마음속 무엇인가가 울컥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현장에서는 오랫동안 큰 목소리로 보건, 의료, 복지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자 소리쳐왔었다.

현장의 각 전문가들이 서로의 자원과 역량을 인정하고 협력적으로 소통하며 제대로 된 서비스의 통합 연계를 위해 노력하자 해왔지만 각 분야들 각각의 노력은 진정 통합으로 나아가기에 적절한 노력들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그리고 오늘 정말 진정으로 현장의 변화가 있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이런 사건들이 매일 반복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아무런 대답도 섣불리 내뱉기 어려워졌다.


보건의료복지통합연계 지원사업(301 지원사업)으로 상당히 많은 복지사각지대가 발견되었고 의료적 문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을 때 한 가구는 정말 빠른 속도로 사회경제적으로 몰락할 수 있음을 깨달았었다. 반대로 말하면 의료적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많은 사회경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연쇄적 문제들을 차례로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하여 환자가 정상적으로 사회로 복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분명 의료기관에서부터 환자를 통합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퇴원 후 일상생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보건, 의료, 복지 자원들을 발굴하고 연계하고자 노력해왔던 의료사회복지사들의 노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현장에서는 어려운 분들을 발굴하고 도움을 제공하고자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하지만 반면 어려움을 보고도 나의 일이 아니야, 옆 부서가 할 일 아닌가? 이건 보건소의 일이지, 이건 병원의 일이야 라고 하며 보건, 의료, 복지 각 기관들 뿐만 아니라, 한 기관 내에서도 상이한 특성을 가진 이 분야들의 협력적 소통이 단절되어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현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실적에 대한 평가는 아이러니하게도 평가서류의 기준에만 맞추어 일하도록 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적극적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만들기도 한다.


의료사회복지사의 노력은 현장에서의 협력 실패 경험과 소통 단절의 벽, 그리고 딱딱한 행정과 법 앞에 자주 무너지려 한다.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에서 100 병상 당 1명의 의료사회복지사가 배치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어왔지만

여전히, 현재 병원 의료사회복지사의 수는 병상 수 대비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


환자는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늘 살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관심과 노력으로 그곳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혹은 버거운 삶을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이 발굴되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은 안타까운 죽음은 또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역의 전문가들과 병원의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질병으로 인해 무너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회적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소통, 소통, 소통 그리고 협력.


정말 꼭 필요한 것인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늘 있어온 그분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분들이 집 현관문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일.


그 일을, 우리 제발 같이 했으면 좋겠다.


멀리서나마 허망하고 안타까운 그분들의 마지막을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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