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태 Feb 22. 2023

미대생보다 감각적으로 색 이름 말하는 방법

간단하다!


너무 쉽다!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갈색 대신 이렇게 말해봐라.


“된장색”


 어? 이런 색이 있나?

녹색 대신 오이색, 황토색 대신 두더지 색, 주황색 대신 귤색, 어떤가? 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나? 어쩌면 기괴하고 억지스럽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디자인과 학생보다 감각적으로 말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색 목록을 적고 그 색들을 말하지 마라.” 그럼 일단 일반인의 범주는 벗어난다.


그럼 어떤 단어를 활용해야 하나? 외래어 사용을 지양하고 한자어나 우리말의 단어를 사용한다. 나아가 고유어, 친근한 사물 이름을 사용할수록 풍부한 시각적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말 색이름에서는 되도록 친근한 사물의 이름을 활용하면서 고유어나 한자어 위주의 우리말로 색이름을 정의하고, 그에 대응되는 문화적 공감대를 지닌 단색 그림을 수록하여 색과 함께 풍성한 시각적 이미지를 부여한다.
_<<색이름>> Pg. 11


“가을 하늘 색”

가을 하늘의 색은 어떤 색인가? 파란색 계열의 색들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흰색, 진한 남색, 보랏빛, 밤하늘, 일출과 일몰의 붉은색도 떠오른다. 무엇보다 어느날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느꼈던 그 순간의 분위기, 냄새, 색이 떠오른다. 퇴근할 때 바라봤던 일몰 지는 하늘의 불그스름한 구름색, 홀가분한 마음, 상쾌한 바람과 냄새...


벚꽃색은? 분홍색이 먼저 떠오르지만, 다채로운 흰색, 분홍색, 붉은색 등등 특정 명칭으로 부르기 힘든 색감이 느껴진다. 잘은 몰라도 벚꽃길을 걷던 그날의 분위기와 그 색감이 느껴진다.


분홍색 대신 벚꽃색, 복승아색, 홍학색이라 말하면 어떨까? 하늘색도 너무 익숙하다. 노을색, 밤하늘색, 구름낀 하늘색 어떤가? 억지로 이름을 붙였나? 그래도 막상 이런 명칭들로 색을 말하면 더 다양하고 그 특유의 색감을 느낄 수 있다.


고유어에는 감각적인 명칭들이 많다. 붉으스름한, 누리끼리한, 푸르른 도 위와 같은 예시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각각 빨강, 노랑, 초록 계열이지만, 특정 색보다는 어렴풋한 감각으로 느껴진다. 한가지 색을 자세히 보자면, 푸른색의 사전적 정의는 맑은 가을 하늘 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맑고 설명한 색이다. “가을 하늘”, “깊은 바다”, “풀의 빛깔”. 색 그 자체보다 색의 느낌을 상상하게 만든다. 푸른색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래 글에 담아놓았다.


https://brunch.co.kr/@art9bjs/12


미안하지만, 감각적으로 색 이름 말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지, 색 사용하는 법을 알려준다고는 안 했다.


디자인과 학생들을 기만한 건 아니다. 그들이 색을 사용하는 감각은 경이롭다. 간단하게 색 이름을 우리말로 표현함으로서 색에 대한 풍부한 감정과 감각을 즐길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평범하고 하찮을 지라도 이름을 어떻게 붙이냐에 따라 그 본질을 얻게 되니 말이다.




2 완벽하지 않은 색이름 명명법.


<<정리하는 뇌>> 범주화의 설명 중, 색 용어의 언어 발전 과정이 등장한다.


[흰색&검은색]->[빨간색]->[노란색->초록색 or 초록색->노란색]-> 파란색-> 갈색 -> [분홍,보라,주황,회색]

색상 어휘의 발전 과정에 있어 모든 언어가 공통적인 발전 과정을 보인다는 점은, 인류의 본질적인 공통점을 찾는 실마리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색체 어휘 표기에 있어 표기 자체로 혼동을 겪는 경우가 언어마다 동일하게 등장한다. 두가지 색상의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는 색 용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초록색과 파란색을 동시에 담고 있는 푸른색이다. 한글 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권에서 초록색과 파란색의 구분과 푸른색의 명칭에 있어 혼동이 존재한다. 푸른색은 언어학자들이 영어 grue(green+blue)로 부르는 단어를 사용할정도로 아직 완벽히 정의되지 않은 모호한 언어다.

 


3 이름을 붙인다는 건 정의를 안다는 것

색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한 가지만 확실히 기억하자. 색은 빛이다. 우리 눈으로 들어온 빛이 눈에 있는 신경을 자극한다. 신경은 빛을 전기적인 신호로 바꿔 뇌로 전달한다. 뇌는 각각의 전기신호 신호 마다 대응되는 색을 부여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도록 만든다.



빛을 조금만 더 알아보자. 빛은 파장의 길이 따라 영역이 나뉜다. 빛은 마치 뱀처럼 물결 모양을 만들며 움직이는데, 이때 물결의 정상과 정상 사이의 간격을 파장이라 한다. 좌측 그림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갈수록 빛의 파장이 길어진다.


그리고 위 그림과 같이 빛은 연속적인 다양한 파장을 갖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일부이다. 이 영역을 우리는 색으로 인식한다. 빨간색 빛보다 파장이 긴 빛을 빨간색 영역 밖에 있는 빛이라 해서 적외선이라 명명한다. 마찬가지로 보라색 빛보다 파장이 짧은 빛을 보라색 영역 밖에 있는 빛이라 해서 자외선이라 부른다.


결과적으로 색이란 파장 형태의 빛에 일정 영역이란 걸 알게 되었다.때문에, 위에선 언급한 초록색과 파란색의 구분이 모호한 이유가 두 색의 인접한 파장을 갖고 있어서라는 의견도 있다.


잠깐!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색에 이름을 붙인다는 건 곧 빛의 특정 파장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다.


그럼 색의 이름은 무한대인가?


<과학 덕후들을 위한 이야기- 넘겨도 됩니다.>
 엄밀히 빛의 파장이 무한대의 스팩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말하지 못한다. 에너지의 형태 중 하나인 빛은 부한대가 아닌 ‘아주 많이’존재하며, 그로인해 빛의 파장에 따른 ‘색의 종류’도 아주 많이 존재한다. 그래도 상상이상으로 많다.
-물리학과 친구의 첨언

 



4 색 이름은 무한대로 지을 수 있을까?

시간을 예시로 접근해보자. 시간을 나눌 수 있나? 시, 분, 초는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이 특정 구간을 표시한 것뿐이다. 짧지만, 1초와 2초 사이에도 무한대로 특정 구간을 나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숫자 1과 2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수의 단위가 존재한다. 우리는 규칙에 따라 연속적으로 이어져있는 것들의 특정 지점을 골라 사용하고 있다. 자연의 아날로그를 사회의 디지털로 인식하고 있다.


다시 색 이름을 붙이는 의문으로 돌아와보자. 인간은 언어에 상관없이 소통하기 위해 일종의 약속을 한다. 색에서도 많은 약속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RGB 표기가 있다. RGB란 빛의 삼원색으로 RED(빨강), 녹색(GREEN) 파란(BLUE)의 앞 글자를 딴 명칭이다. 이 세가지 색을 섞어 영상이나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남색은 RGB 46/49/88의 값을 가지며 보라는 RGB 103/52/122의 값을 가진다. 그럼 RGB 46/49/88.5는 남색과 다른 색인가? RGB 103.587/52/122 는 보라와 다른색인가? RGB값이 아닌 파장을 살펴봐도(위 그림 참고)600nm의 파장과 600.71nm의 파장은 다른 색이지 않나?

 



5 모든 파장에 색 이름을 붙이려는 건 미련한 짓.

이름을 붙이려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색에 이름을 붙이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든 파장에 이름을 붙이려는 노력은 길가의 잡초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려는 것과 같다. 즉, 쓸모 없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려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생존을 위해선 아는 것이 많을수록 도움이 된다. 먹을 수 있는 버섯의 종류를 많이 알수록 생존에 유리했다. 이러한 본능은 지구상의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려는 인류의 의지에서 들어난다.


우리가 식물계에 붙여놓은 이름들이 엄밀하게 보면 대부분 불필요한 것이라는 사실만 봐도 이름을 붙이고 범주화하려는 인간의 선천적 열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_<<정리하는 뇌>> pg. 69


그렇다면 모든 파장에 색 이름을 부여하려는 건 옳은 행동이다! 당장 열정에 충실해져 보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파장에 이름을 붙이려는 건 우리 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모든 파장, 심지어 소수점까지 고려해 색을 붙이는 건 길가에 모든 잡초 하나하나가 모양이 다르다고 이름 붙이는 것과 같다.


우리 뇌의 범주화 기능은 뇌의 과부화를 방지하기 위해 특정 공통점을 같은 것으로 분류한다. 잡초는 길이, 색, 모양이 다 조금씩은 다를텐데 이를 전부 이름 붙인다? 쓸데 없는 짓이다. 색도 마찬가지다. 세세하게 구분해 이름 붙일 필요가 없다.


정리하는 뇌 55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검정 콩들이 담긴 접시를 봐도 각각의 콩이 다른 콩들과는 전혀 상관없고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같은 종류라는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
 



6 한해 가장 유명한 색 이름, 팬톤 올해의 컬러

색 이름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은 단연 팬톤이다. 매년 12월에 이들이 발표하는 다음해의 올해의 컬러는 전세계 기업과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색은 기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애초에 우리 눈을 봐도 그렇다. 같은 물체에 같은 가시광선을 반사하더라도 색맹인사람과 정상인은 세상을 다른 구성으로 바라본다.


기계도 마찬가지다. 같은 색의 값이어도 모니터, 휴대폰, 태블릿에서 보이는 색은 다르다. 여기에 인쇄할 때 조차 프린터 종류와 설정값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색을 다루는 디자이너, 출판업자, 인쇄업계는 디지털에서 구현한 색을 인쇄물에서 원하는대로 얻을 수 없어 많은 불편을 겪었다.


이를 해결한 회사가 미국의 인쇄 광고 회사로 시작한 팬톤이다. 팬톤은 수천가지 이상의 색상을 시스템화하고 번호와 이름을 부여해 현대사회 색의 질서를 확립했다. 그렇기에 색에 있어서 가장 권위있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팬톤 올해의 컬러는 비바 마젠타이다. 레드 계열이지만,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한다.

2023 팬톤 올해의 컬러, 비바 마젠타(좌) / 역대 팬톤 올해의 컬러(우)

역대 팬톤 올해의 컬러를 보니 다 외래어다. 당연하게 느끼면서도 이 당연함이 싫다. 과연 순 우리말 이름이 붙은 색이 올해의 컬러가 될 날이 올까? 우리나라에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문화 차이라고 하기엔, 옆 나라 일본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3명이나 배출했다. k-pop 뿐만이 아니라 문학에 있어서도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인정 받는 날이 올까?




7. 실은 레몬색은 이미 국가가 지정한 표준 색이름이다.


2019년 3월 레몬색, 청포도 색, 바나나색은 표준 색이름으로 지정되었다. 없던 색이 새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기존 색 명칭을 바꾼 것이다. 기존 색 명칭이 처음듣는 사람이 유추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크롬노랑색->바나나색, 카나리아색->레몬색, 대자색->구리색
연주황->살구색, 밝고 여린 풀색-> 청포도색, 녹색->초록,흰색-> 하양

https://www.kats.go.kr/content.do?cmsid=240&mode=view&cid=20620

카나리아 새의 깃털색은 어떤색인가? 카나리아 깃털의 색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카나리아색을 유추할 수 없다. 국가의 표준을 제정하고관리하는 국가표준기술원이 설명하길, 일상생활 속 애매모한 색이름을 보다 쉽고 명확하게 만들기 위함이라 한다.바나나, 레몬, 구리, 청포도 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이나 개념이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더 쉽게 색을 떠올릴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시는 색 이름에 대한 국가의 지속적 관심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나나,레몬 역시 외래어다. 구리색, 햐양도 영어로 표현되면 한글 그대로가 아닌 영어로 해석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거뭇거뭇, 시퍼런 같은 우리 고유어 색 표현이 더 널리 쓰였으면 한다. 구체성을 떨어질지라도 그들의 주는 풍부한 감각은 온몸으로 그 색을 체감할 수 있게 해준다.
 



시 한편 소개하며 마친다.

 

시 <<파랑을 떠나며>> 작가: 태제


더 이상 파도 치는 곳에서 거세지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물결이 이는 곳으로 가고자 한다.
그러니까 강이나 바다 말고 이름 모를 호수에서 만나자.
그러니까 이미 이름난 곳 말고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있는 곳에서 만나자.
물 색깔이 파랗다고만 하는 사람들과는 멀어지자.




매거진의 이전글 여러 분야에서 3~5등 VS 한 분야에서 계속 1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