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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태 Oct 10. 2022

의지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단걸 알았을 때

[9m] 0 : 나를 알아가기로 마음먹은 이유 

Q: “과거로 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A: “19살에서 20살 되는 겨울방학이요.”   


Q: “성인이 된다는 설렘 때문에요?”      


A: “아뇨, 고3을 다시는 하기 싫어요”

   

고등학교, 그립고 즐거웠고 아쉬운 점이 남아도 절대 가고 싶지 않다. 고3을 한 번 더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건 아직까지 단연코 고3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부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꺼지지 않는 의지를 불태웠다. 졸리면 일어서서 공부하고 그래도 졸리면 겨울에 밖에 나가서 공부했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잠이 오기에 항상 몸을 혹사시키며 공부해야 했다. 앉아서 글을 읽은 기억은 시험 풀 때 빼고는 거의 없다. 이렇게 잠이 엄청 많은데도 자기소개서 때문에 너무 불안해 인생 처음으로 밤을 꼴딱 새웠다. 그 당시에는 이 모든 게 의지로 전부 해결했고 의지로 안 되는 건 없는 줄 알았다.     



허나, 대학을 가니 의지만으로 해결 못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원인 중 하나는 [9m]의 주된 주제 중 하나인 잠이었다. 아니 도대체 여기 학교 얘들은 잠을 안 자나? 시험기간 새벽 2시에 진짜 이건 미친 짓이야 하면서 기숙사로 도망치기 위해 투명한 학교 도서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을 누른다. 층마다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자괴감에 빠졌던 첫 중간고사 시험 기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친구들 가르치고 다 알려줬는데 여기서는 최하위권이다. 시골 평범한 인문계 수시의 한계인가?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뭐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속 잡초였다.      

그렇게 1년 뒤 함께 찾아온 코로나와 2학년. 전공 공부와 처음 도전한 대외활동에 치여 이도 저도 제대로 중심을 못 잡았다. 아무리 오늘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해도 온라인 수업 녹화를 틀어놓고 졸기 일 수였다. 아니, 솔직히 푹 잤으면 후회도 없는데 매번 책상에서 꾸벅꾸벅 졸아서 피로만 더 쌓였다. 그 와중에 카투사도 떨어지고 기술행정병 지원(입대 전 원하는 군사특기를 지원하는 제도)도 떨어져서 군대도 맘대로 못 간다니 참 아이러니였다.) 아, 물론 대학생활은 정말 재밌었다. 즐거움과 힘듦이 동반된(즐거움이 더 크다) 대학생활 중 힘들었던 부분들을 부각해 말해서 그렇지 즐거운 기억들이 많다.




어찌저찌 다시 시도한 기술행정병에 합격해 사회로부터의 도피 느낌으로 군에 입대했다. 정말 아이러니지만 훈련소는 나에게 천국이었다. 정해진 일과와 지시받는 대로 하면 된다. 다음날 뭐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머리 쥐어 싸매며 과제를 할 필요도 없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고 군대에서 학과 공부는 절대 안 하기로 진짜 책 읽는 습관 기르고 맨날 하던 운동이나 더 자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군대에서 조차 책을 펼쳤을 때 잠을 이기지 못하고 조는 내 모습을 보고 한숨 쉬며 깨달았다. ‘의지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구나.’ 돌이켜 보면 그동안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왔는데 무시하고 의지력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 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의지력의 한계를 알았음에도 바로 실천한 건 없다. 운동은 원래 하던 거니까 계속 할 수 있었고 독서는 횟수와 양으로 때려 박으면서 몸에 체화시키고 있었다. 그냥 졸고 읽고 졸고 읽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부대에 코로나가 퍼지며 격리 되고 읽은 책 ‘지루함의 심리학“에서 스스로에 대해 조금 인지했다. (안타깝게도 지루한 주제일 수 있는 책이 등장했다.)   


사람들이 지루할 때 이를 달래기 위해 자꾸 무언가를 먹거나 마신다는 내용이었는데 지루한 격리 중이었던 난 동기에게 부탁해서 평소보다 과자나 음료수를 엄청 많이 사놓은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격리 중에 유독 얘들이 px에서 간식거리를 많이 부탁했었다. 오~~ 그럼 내가 평소보다 무언가를 많이 먹거나 마실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보니 공부나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유독 음료를 많이 마셨다.(대학교 시험기간 항상 음료나 물을 엄청 마셨다.) 그러다 집중이 잘되면 음료를 거의 입에 대지도 않았다. 무언가 찌리릿했다. 나의 행동에 대해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때가 시발점이다. 그 이후로 조금씩 나의 행동이나 습관을 의식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를 알 수 있는 여러 분야에 관심 갖게 되고 책을 읽을 때 지식 습득 만이 아니라 나에 좀더 빗대어서 읽게 되고 예전에 봤던 영상을 볼 때 그때는 그냥 끄덕이고 넘어간 내용들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와 과정들을 기록한 [9m]을 여기에 쏟아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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