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년 전에 백령도와 대청도를 다녀왔다. 대청도 농여해변, 해안으로 뻗어 나온 산에서 떨어져 나왔을 크고 작은 바위가 흩어져 있는 이곳은, 헤아리고 짐작할 수조차 없는 10억 년 전의 지형과 지질을 간직한 해변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이 바닷가는 그저 바람만 머물다 가는 고요한 바다였다. 그러나 이 해변을 거닐다 보면, 그 고요 속에 묵직한 존재감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바위가 있다. 농여해변의 ‘고목바위’다. 흔히 자연은 예술의 모태라 불리지만, 이곳에서 만난 고목바위는 그 표현마저 초라하게 느껴지게 했다. 수십억 년 동안 바람과 파도가 깎아낸 끝에 드러난 이 바위는, 그 자체로 시간을 품은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습곡작용에 의하여 휘어진 후 풍화와 침식을 거듭하며 지층이 수직으로 서있는 층리(stratification, bedding, 層理)인 고목바위다. 마치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산다는 태백산에서 본 속살이 드러난 주목의 밑동처럼 오랜 세월 거친 해풍과 파도에 제 살을 조금씩 내어주며 서있는 고목바위(나이테바위)의 기기묘묘한 모습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고목바위의 붉은빛 표면은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깊고 복잡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겹겹이 쌓인 지층이 수직으로 선 모습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지구의 격동적인 역사를 상징한다. 그 안에 담긴 수억 년의 흔적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갈 수 있다면, 우리는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고 덧없는 존재인지 절감하게 될 것이다. 자연은 그 어느 위대한 예술가와도 비견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붉은빛을 띠는 고목바위 뒤로 흰 구름이 조금씩 걷히며 침식되어 뚫어진 틈 사이로 푸른 하늘이 설핏 드러난다.
바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 앞에 서 있는 동안, 나는 어떤 질문도 쉽게 던질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짧은 질문조차, 인간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어쩌면 오만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저 고요히 서 있는 바위는 나를 향해 말하는 듯했다. “나는 답을 줄 수 없다. 너는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 순간 나는 바위를 바라보며, 인간의 삶과 고목바위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의 일생도 고목바위처럼 쉼 없이 깎이고 다듬어지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에 닥치는 거센 풍파가 때로는 나를 무너뜨리고, 때로는 나를 새롭게 조각해 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기쁨, 슬픔, 성공, 실패 등 다양한 경험들이 모여 내 삶의 ‘층’을 쌓아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한 사람의 삶과 한 나라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깊은 성찰과 통찰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질서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사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지구와 자연, 우주를 아우르는 더 넓은 시각에서의 고찰을 요구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바위의 이야기는 단순히 지질학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변화,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고목바위의 층 하나하나에는 격렬한 폭풍이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바람이 살짝 스쳐 지나가며 남긴 섬세한 흔적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기록되고, 축적되고, 결국 지금의 모습을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도 당시 보았던, 수억 년 동안 바람과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진 바위를 떠올릴 때, 자연의 압도적인 힘과 그 속에서 쉼 없이 변화해 온 생명의 흐름을 느끼곤 한다.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움이 밀려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가? 바위 앞에서 떠올랐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일은 나 자신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반드시 평탄할 필요가 없음을 고목바위는 가르쳐 주었다.
인적 드문 바닷가로 흘러내릴 듯한 산자락이 어찌하여 저렇게 곤두섰을까? 어쩌다 이 지층은 수평에서 수직으로 솟구쳤을까? 무엇보다 수평이었던 지층이 수직으로 서기까지는 상상도 못 할 경천동지 할 만한 대재앙이 수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층이 수직으로 선 모습은 과거 지구의 격동적인 변화를 증언하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 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직감할 수 있다. 지구의 격변적인 움직임과 자연의 강력한 힘이 그 속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원인들은 단순히 자연적인 요인에 그치지 않으며, 그 순간순간마다 지구의 표면과 심층부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변화와 사건들이 얽혀 있었을 것이다.
지층이 수직으로 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농여해변 고목바위 앞에 서면 자연스레 묻게 되는 질문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자연의 흐름과 역사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은 시간과 변화,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고목바위의 층 하나하나에는 격렬한 폭풍이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바람이 살짝 스쳐 지나가며 남긴 섬세한 흔적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기록되고, 축적되고, 결국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그렇게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된 농여해변의 고목바위는 단순히 멋스러운, 그저 하나의 바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 빚은 예술 작품’이란 찬사로도 부족할 뿐 아니라, 바위가 견뎌 온 아득한 세월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언급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몇 억 년이 아니라 몇 십억 년을 견뎌온 바위라면, 그런 표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고작 백 년도 못 사는 이들의 순간적인 감상을 담아낼 뿐이다. 결국,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찰나의 감동과 경이로움을 애써 곡진하게 표현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지층이 수평에서 수직으로 변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지구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오랜 시간 속에서 일어난 거대한 사건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보통 지각 변동이나 지진, 용암 분출 같은 화산 활동 등으로 인해 발생하며, 대규모의 지구 내부 압력과 이동이 원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층리 현상은 지질학적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과거 지구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땅의 역사적인 흔적이요 기록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도 큰 변화를 겪는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변화는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동시에 우리를 성장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고목바위의 층리처럼, 우리의 일생에도 각자의 층리가 쌓여 있다. 삶의 굴곡과 상처는 때로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것들이 쌓여 현재의 나를 만들어간다. 그런 측면에서, 땅의 역사이자 기록인 층리처럼 사람의 일생에도 층리가 존재함을 깨닫는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 나아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그 사람의 층리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일이 아닐까? 우리가 지닌 층리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살아온 날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응축되어 있다. 고목바위 앞에서, 그리고 우리 앞에 선 누군가를 대할 때, 그러한 층리를 마주하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감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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