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환 Dec 26. 2024

올해 연말은 유난히도 심란하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은 연말이다. 이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바람이라도 쐬면 나아질까 싶어 차를 몰고 나갔다. 동생네 집에 들러 잠시 대화를 나누고,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혼자 먹는 점심이지만, 고등어구이와 솥밥으로 점심식사도 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의 고요한 시간, 나는 수건을 하나하나 접어 수건장에 넣고, 빨래를 걷어 옷장에 정리했다. 익숙한 손길로 이어진 이 일련의 행동이 어쩌면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려는 작은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집안일을 마친 후, 커피를 한 잔 내렸다. 따뜻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책상에 앉았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볼 생각이었다. 특별한 사건도,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는 여느 해와 다르지 않은 한 해였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한 곳에 머물지 못했다. 생각은 이리저리 산만하게 흩어졌다. 이런 내 상태가 혹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과정의 일부일까?


그렇다고 치면, 이런 감정은 매년 같았을 텐데. 그런데도 이번 연말은 유난히 더 마음이 산란하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다시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 서랍에 넣듯 정리하려 애써 본다. 그 과정에서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작은 깨달음을 떠올리려 한다. 분명히 소중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내 마음이 닿는 그곳이 작더라도 의미 있는 발견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렇게 혼란스러운 감정의 흐름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삶은 늘 크고 작은 파도 속에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마음이 산란한 이유를 하나하나 따지기보다는, 그 감정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소중한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차분히 떠올려 보면, 이 한 해에도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 느리지만 분명히 변해가는 내 모습, 그리고 어제와 다르게 오늘을 살아낸 나 자신. 하루하루 쌓여왔던 지난날의 그 모든 것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 현실이다.


익숙했던 집안일, 정리된 수건과 빨래, 따뜻한 커피 한 잔.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결국 나를 다시 중심으로 이끌어준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복잡한 감정은 여전하지만, 어쩌면 이 순간도 지나갈 것이다. 서랍 속에 접어 넣은 내 마음들이 언젠가 다시 펼쳐질 때, 나는 이 시간을 담담히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연말의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한 해를 돌아보고, 대단한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닌 새해지만 마음의 준비라도 하며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혼란과 복잡함을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다시 걸어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길은 멀고 가야 할 길은 좁다.” 

책상 앞 액자에 걸려 있는 아내가 남긴 시 구절을 마음속으로 읽어 본다. 

길은 늘 멀고 가야 할 길은 언제나 좁아 보이는 것이 인생이다. 새해에 걸아가야 할 길도 소용돌이 속에 떠 있는 지푸라기 마냥 좁고 멀겠지만, 그 속에서도 소중한 순간들을 발견하며 천천히 걸어가야 함을 잊지 않고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하여 보기로 한다.

@thebcstory 

#길 #새해 #인생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