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룩 한 카라반 사라이와 오브룩 담수호 Obruğu(gölü)
이제 그들의 튀르키예 여행은 어느덧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만나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친구 원철과 민수는 함께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튀르키예에로의 여정은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되었고 그렇게 다분히 충동적으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따라서 사전 계획은 따로 있을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목적지를 포함한 여행계획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하는 것,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네브셰히르를 떠나 한 시간을 넘게 달렸음에도 푸른 하늘과 끝없이 이어지는 들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이야기에서 데린쿠유 지하 동굴도시 광장에서 주스를 파는 노부부의 환한 미소가 이곳의 푸른 하늘을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 미소는 하늘이 아니라, 이곳의 끝없는 들판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정정을 해야지 싶었다. 끝없이 펼쳐지고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들판처럼, 노부부의 미소도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콘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아나톨리아 반도의 평야지대가 이어지는 지역이다. 들판이라 표현하기엔 이 풍경을 담아내기에 너무나 부족해 보였고, 더 적확하게는 들판도 평야도 아닌 ‘광야’로 표현하는 것이 맞지 싶었다. 바로 이런 들판의 풍경을 성경의 기록은 ‘광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햇살이 따듯했다. 차창을 세차게 두드리는 오후 햇살과 함께 카라쿠유 Karakuyu 평야지역을 달려 콘야로 가고 있었다. 주변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무변광야 無邊曠野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곳의 대지는 한국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넓고 평평한 지형이었다. 산악지형이 70%에 달하는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경 속에서, 그들은 튀르키예의 광활한 대지 속으로 한 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튀르키예의 땅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그들은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까?
그렇게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에슈메카야 Eşmekaya 마을 도로변의 Atorlor 휴게소였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요리 중 하나인 피데 Pide를 곁들여 점심을 먹기로 했다. 피데는 길쭉한 보트 모양의 빵 위에 다양한 토핑을 얹어 구워낸 음식으로,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는 마치 피자 같은 요리다. 갓 구워져 나오는 피데의 고소한 향이 허기진 배를 자극했고, 따뜻한 빵 속의 토핑은 그들이 쉬어 가는 짧은 시간을 더욱 즐겁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휴식은 길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면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에슈메카야에서 콘야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달린 거리만큼 더 가야,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언젠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손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나는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리가 좋아요. 맛있는 소리가 들리면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고, 그래서 더 잘 먹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손녀의 말처럼, 주위에서 사람들의 맛있게 먹는 소리가 들리니 왠지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들은 이미 여러 나라를 여행한 터라 대체로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니 평소보다 더 즐겁게, 더 맛있게 느껴지는 듯했다. 구운 닭고기와 밥, 그리고 피데까지 말끔히 다 비우고 나니, 다시 길을 떠날 시간이었다.
휴게소를 떠난 지 약 30분이 지나자, 과거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던 상인들의 숙소였던 오브룩 한 카라반 사라이 Selçuklu kervansarayıdır에 도착했다. 이곳은 셀주크 시대에 세워진 건축물로, 상인들이 긴 여정을 쉬어 가던 장소다. 또, 지진으로 인해 땅이 꺼지면서 지하수가 생겨 형성된 오브룩 담수호 Obruğu(gölü)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담수호는 한없이 고요해 보였고, 그 깊이와 신비로움은 과거 실크로드 상인들 여정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아무도 머무르지 않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박제된 공간. 고요함만이 가득한 이곳, 오브룩 한 카라반 사라이를 둘러보며 오랜 세월 동안 이 길을 지나갔던 수많은 상인과 여행자들의 발자취를 상상해 본다. 그들의 발걸음,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머물던 시간이 모두 이 벽에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한때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잠시 쉴 수 있는 안식처였던 이곳이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담지 못한 채 그저 고요한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 바람만이 지나가는 돌담의 틈 사이로, 이 공간을 채우던 생기와 활기는 마치 먼 옛날의 기억처럼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했다.
오브룩 한 Obruk Hanı 카라반 사라이 Selçuklu kervansarayıdır
튀르키예어 ‘Obruk’은 움푹 파인 오목한 요면 凹面을 뜻하는 말이다. 지진 또는 지질 변화로 땅이 꺼져서 오브룩 담수호가 생겨났으니 그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오브룩 한은 콘야 Konya에서 카파도키아 카이세리 Kayseri로 이어지는 고대 중국 장안(지금의 시안)에서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었던 마을이다.
서로를 궁금해하고 동경까지 했던 동서양은 기원전 100년까지도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고원 등에 가로막혀 전혀 교류할 수 없었다. 중국 한 무제(武帝) 때인 기원전 206년 열리기 시작한 실크로드는 중국의 독점적 상품이었던 비단과 차, 염료, 도자기, 양잠, 화약 기술, 제지 기술 등이 로마를 비롯한 유럽 대륙으로 전해지는 15세기까지,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아나톨리아 반도의 강자로 부상하기 이전까지 지구상 가장 큰 대륙인 유라시아의 무역로였던 셈이다.
오브룩 한 카라반 사라이 Selçuklu kervansarayıdır는 천정과 대부분 건물이 지진으로 심하게 훼손된 채 셀주크 대학의 발굴조사단에 의하여 2007년에 발견되는데, 이후 대대적인 복원작업이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아쉽지만 내부는 들어갈 수 없는데, 이미 예술품 도둑들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어 철문을 굳게 걸어 잠금 상태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철문 망 사이에 넣어 거꾸로 하여 내부를 촬영해 봤지만 유난히도 푸른 하늘에 아치형 구조의 건물 모습만이 담긴다. 당시 카라반 Kervan은 말, 노새, 당나귀와 낙타를 이용하여 무역 운송을 맡았던 상단의 무리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방식이 달랐다.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낮에 이동을 하였고 여름엔 뜨거운 한낮을 피하여 밤에 이동하였다. 이때 이들이 묵고 쉬던 숙소가 무역로 주요 거점 마을에 세워지게 되는데, 그게 바로 카라반 사라이 Selçuklu kervansarayıdır이다.
오브룩 담수호 Obruğu(gölü)
카라반 사라이를 잠시 둘러본 후, 바로 뒤편에 위치한 오브룩 담수호 Obruğu(gölü)로 향했다. '오브룩 Obruğu'이라는 단어는 토양이 붕괴되어 생긴 '깊은 구덩이'를 의미하며, 이 담수호는 그러한 자연 현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곳의 오브룩은 지진으로 인해 땅이 꺼져 생긴 경우이지만, 카르스트 지형에서는 석회암 지반 속으로 물이 스며들며 석회암이 서서히 녹아내리면서도 이러한 구덩이가 형성되기도 한다.
물속으로 잠식된 석회암은 오랜 세월을 거쳐 자신만의 공간을 완성해 나갔고, 그 결과로 탄생한 오브룩 담수호는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호수는 마치 숨겨진 비밀처럼 깊은 푸른빛을 띠며, 주위를 둘러싼 적막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 있는 이곳에서, 이 작은 호수는 대지의 숨겨진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대지의 속마음이 깊고 푸르게 드러난 이 호수는, 마치 그 자체로 이야기하듯 고요히 빛을 발하며 다가오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호수의 끝없는 푸른빛은 여행자에게 대지의 고요한 속삭임처럼 느껴졌고, 이 풍경 속에서 그들은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지구는 단 한순간도 활동을 멈춘 적이 없다. 지하수와 이산화탄소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탄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석회암 토양을 녹이고 지하 동굴을 형성한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위의 표토가 붕괴되어 생긴 깊은 구덩이가 obruk이다.
"Obruk"은 주로 터키의 카르스트 지형에서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으로, 지반이 붕괴되어 형성된 깊은 구덩이를 의미한다. 이 구덩이는 지진으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석회암 지대에서 물이 지하로 스며들면서 석회암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며, 결과적으로 깊고 맑은 담수호가 형성된다.
터키의 여러 지역에서 오브룩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아나톨리아 지방은 이러한 자연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곳 중 하나다. 오브룩 담수호는 그 크기와 신비로움으로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며, 고요하면서도 깊은 푸른빛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지질 형태를 지질학에선 세노테 Cenotes라고도 한다. 요즘 흔히 땅이 꺼지는 현상을 이를 때 많이 쓰는 말로 싱크홀인 셈이다.
일설에 따르면 별똥별이 떨어져 파인 호수라고도 하는데, 튀르키예 지하수의 약 1/3 가량을 담고 있는 땅, 콘야에는 이곳의 오브룩 담수호 Obruk Hanı Obruğu(gölü) 외에도 지근거리에 직경이 228m, 깊이가 171m에 이르는 깊고 넓은 호수 같은 오브룩 Obruğu(gölü), 키쇠렌 호수 Kızören Obruğu를 비롯한 대략 20개 이상의 오브룩이 있다.
사람들은 이 땅의 지질활동의 결과물인 둥근 원형으로 땅이 꺼져 만들어진 호수, 오브룩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을까?
지진이든 지질 변화로 인한 것이든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생각과 이 땅이 단 한순간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또 어떠한 활동과 변화가 있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과거 역사를 되돌아봐도 이러한 지질 변화와 활동엔 항상 크고 작은 재난이 뒤따랐기에, 모쪼록 어떤 활동과 변화가 있더라도 그저 유순하게, 큰 재난이 없기를 바라며 그들은 오브룩한을 떠나 다시 콘야로 향하는 여정을 이어갔다.
오브룩한을 뒤로하고 콘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낮은 구릉지와 평야가 이어졌다. 그들이 탑승한 버스는 셀주크시 근교 마을인 Büyükkayacık 도로에서 잠시 멈춰, 경찰의 컨트롤 점검을 받았다. 속도 규정인 90km를 준수했는지, 휴게시간을 잘 지켰는지 등, 안전 관련 사항을 점검받는 절차였다. 버스는 잠시 후 점검을 마치고 다시 출발해, 그들의 다음 여정인 메블라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메블라나는 페르시아 문학의 신비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이슬람 수피즘(Sufism)의 창시자였다. 수피즘은 이슬람교도 중 소수가 신봉하는 신비주의적 사상으로, 내면의 깨달음과 신과의 일체를 추구하는 영적 여정이다. 메블라나, 본명은 잘랄루딘 루미(Jalal al-Din Rumi),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이후 콘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슬람 신비주의 문학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와 철학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콘야에 위치한 메블라나 박물관은 그의 삶과 사상을 기리는 중요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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