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칼레이치(Kaleiçi) 마을 밤거리 여행

옛 성곽으로 둘러싸인 지중해변 마을 칼레이치(Kaleiçi)

by 조영환

튀르키예 여행기 - 옛 성곽으로 둘러싸인 지중해변 마을 칼레이치(Kaleiçi) 밤거리 여행


너무나 환상적인 파노라마 속에 푹 빠져 있다 올림포스 산을 내려왔다. 며칠 더 튀르키예 여행이 이어질 터인데 오늘 오후 안탈리아에 도착하여 올림포스산에서 본 풍경은 그야말로 숨 막히는 파노라마였고 아름다운 지구의 산과 바다 그리고 태양과 하늘을 제대로 본 느낌이다.


그들은 올림포스 산의 여운을 마음에 담고 지중해변을 따라 D400번 도로를 타고 다시 안탈리아로 향한다. 케메르 Kemer를 떠난 지 30분이 넘었지 싶다. 지금 그들이 지나는 곳은 사리수 Sarısu 해변이다. 조금 더 길을 따라가면 Sarısu Kadınlar Plajı에 이른다. 튀르키예어 Kadin은 여성을, Plaji는 해수욕장(모래사장)을 의미한다. 안탈리아 도심의 경계로 볼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한 해수욕장으로 ‘안탈리아의 숨은 진주’로 불리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평소에도 동해안 해변을 따라 차로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그에겐 수평선이 붉게 물드는 이 시간, 해 질 무렵 노을이 지는,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는 예쁜 하늘과 더없이 아름다운 지중해변을 따라 달리는 이 시간이야말로 튀르키예 여행 중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말해 뭣하랴.



거리의 걷고 있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 지중해가 붉어지면서 도시도 함께 붉게 물든다. 콘얄티 해변 Konyaaltı Plaj으로 나온 사람들은 붉게 물드는 공원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공원을 가득 메운다. 더러는 난간에 기대어 더러는 벤치에 앉아 노을이 지는 해변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이 주인공인 콘얄티 해변을 지나는 낯선 여행자의 눈에 들어온 오후 5시, 안탈리아 도심 Konyaalti Matruskali Parki 공원의 모습이다.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눈으로 많은 것을 보고 마음에 지닌다. 그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마음에 담긴 것을 가까운 미래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꺼내 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강렬한 노을은 아니지만 그저 은은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붉게 물드는, 보는 사람들에게 여유라는 선물을 안겨주는 안탈리아 해안가에서 본 노을과 사람들의 모습 또한 꺼내 볼 것이다. 그리고 추억하게 될 것이다. 너무나도 예쁜 붉게 물드는 지중해변과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마을을…


이제 그들의 일행을 태운 버스는 공원을 벗어나 도심으로 접어든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공원과 광장, 거리엔 간간이 사람들이 오가고 도로를 따라 늘어선 상점들은 조명을 하나 둘 밝히기 시작한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부부,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광장을 내달리는 소년을 따라 그렇게 안탈리아 해변을 따라 이동하여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하루인 오후 5시 40분,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을, 하드리아누스의 문 (Hadrian Kapısı) 근처 구시가지에 위치한 광장 Cumhuriyet Meydanı(Republic Square)이 있는 칼레이치(Kaleiçi) 마을이다.


Cumhuriyet Meydanı는 건축가 Hussein Gezer (Hüseyin Gezer)의 설계로 1964년 오늘날 튀르키예 공화국의 토대를 마련한 독립전쟁 영웅 기념비가 세워진 공화국 광장이다. 이블리 미나렛(Yivli Minaret Mosque)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나렛 주변은 구시가지가 늘 그러하듯이 지형 그대로 집을 지어 골목을 따라 오밀조밀 집들이 이어진다. 차츰 어둠이 내리면서 도시는 다시 깨어난다. 눈에 크게 거슬리는 고층 빌딩은 없다. 편안하다. 사방 어느 곳에서나 미나렛이 보인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마을, 미나렛 주변 빼곡히 들어선 집들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이다. 수평선이 붉게 물들며 거리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이 시간부터 안탈리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어디서 왔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들어 붉은 미나렛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으며 여행 추억을 담아내고, 미나렛 주변의 마을과 은은한 붉은 빛깔로 물든 지중해를 바라보느라 광장은 금세 북새통이 된다. 천년고도와 옅은 하늘 사이에 붉은빛이 감도는 오후 5시 45분, 지금 이 시간, 붉은 지붕과 하얀색 벽으로 지어진 동화처럼 아름다운 마을은 또 한 번의 마술을 보여준다. 바닷가 언덕에 자리 잡은 마을에 아직 수평선 위에 머물고 있는 붉은 햇무리가 더해지니 그야말로 그대로 황홀하고 고혹적인 풍경이 되는 순간이다.



이블리 미나렛 Yivli Minaret Mosque



이블리 미나렛 모스크는 1230년 셀주크 술탄 케이 쿠 바디 1세(Ala ad-Din Kay Qubadh I.)에 의하여 지어졌으나 14세기에 원형이 파괴되었고 럼 술탄국(Rum Sultanlığı)의 쇠퇴로 등장하는 하미드 왕조(Hamididler, Hamed Hanedanlığı )에 의하여 1373년 성모 마리아를 위하여 사용되었던 비잔틴 교회의 기초 위에 세워진 모스크이다. 안탈리아 칼레이치(Kaleiçi) 구시가지 골목길에 지어진 이 모스크는 홈이 있는 붉은 첨탑(미나렛)이 특징적이다.


칼레이치 대부분은 지금도 옛 성벽 안에 있는 전형적인 성곽도시이다. 차량 진입을 위하여 일부 최소한의 구간만 성벽을 허물고 도로를 개설한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아직도 대부분 남아있는 성곽 주변은 성벽과 민가를 이어 붙여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로마,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 건축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인 구시가지이다. 안탈리아 칼레이치 구시가지를 오가다 보면 로마시대의 수로가 도로를 횡단하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수로 밑으로 자동차 도로를 개설하여 차량들이 오가는, 더 이상 과거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곽과 수많은 유적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시가지가 형성되는 것은 필경 불편할 법한 일임에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신속함 보다 다소 불편하고 느리지만 과거의 유적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느림을 택하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의 짧은 소견으로, 이러한 도시는 그러하기 때문에 미래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과거의 흔적을 말끔히 정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안탈리아 아닐까? 100년도 안된, 아니 6.25 전쟁 이후 짧은 세월 동안 너무나도 급격하게 발전(?)한 우리나라와는 분명 대조적이고 다소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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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고 차츰 어둠이 내리자 도시는 다시 깨어난다. 그들은 천천히 구시가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칼레이치 밤거리 여행을 시작한다. 해가 떨어졌음에도 완전히 어둠이 내리지 않는 지중해변이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고색창연한 골목길을 걷는다.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유적지가 있는 거리, 하나 둘 조명이 들어오고 본격적으로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는 상가, 성벽에 뿌리를 내린 이름 모를 풀,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 회벽에 기댄 호텔과 레스토랑의 조그맣고 동그란 간판, 곳곳에 남아있는 성벽에 덧대어 지어진 집을 따라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길이 구불구불 사방으로 이어지는, 낯선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정겨운 골목길, 그리고 그 성벽에 진열된 양탄자와 가판대의 수공예품, 반짝거리는 상가의 네온 불빛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골목을 메우며 순식간에 번화가처럼 변하는, 금세라도 ‘찌루찌루의 파랑새’가 날아들 것 같은 동화 같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며 공존하는 마을이다.


기원전 2세기경에 형성된 아탈레이아(Attalleia)가 오늘날 안탈리아의 기원이니 칼레이치 구시가지는 사실상 안탈리아 원조마을이라 할 수 있겠다. 올망졸망 자리를 잡고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과거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 성벽, 파괴된 채 남아있는 모스크, 유적이 아닌 것이 없는 마을이다. 과거의 마을에 단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만 바뀐 마을이다.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시선을 잡아당기는 한 건물, 출입구 기둥에 걸려있는 ‘쇤데 로시테르Chaîne des Rôtisseurs 1248-1950’ 엠블렘, 더 정확하게 말하면 1248년이란 숫자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Chaîne은 옛 프랑스 왕립 구스 로스터 길드(Royal Guild of Goose Roasters)의 전통과 관행을 기반으로 요리 예술에 전념하여 미식 가치를 홍보하고 개발하고자 1950년 파리에서 설립된 국제 미식 협회인데, Goose Roasters 길드의 역사는 1248년 프랑스 루이 9세에 의하여 조직된 100개 이상의 길드 중 하나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해체되었던 협회가 1950년 프랑스에서 다시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는 세계 미식가 협회(Confrérie de la Chaîne des Rôtisseurs)의 상징적인 엠블렘이 안탈리아 구시가지 골목길 레스토랑에 붙어있는 셈이니 꽤나 유명한 레스토랑이지 싶다. 거리를 걸으며 골목골목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들여다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한 마을이다. 그들은 이 골목길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카페(Famous Steak House & Gastro Bar)에서 맥주 한 잔을 나눠 마시며 수천 년의 역사가 숨 쉬는 마을의 정취에 한껏 젖어 보기로 한다.



하드리아누스 문 Hadrian Kapısı, Üçkapılar, "Üç Kapı(세 개의 문)" anlamına gelir



카페에서 맥주도 한잔하고 우리 식으로 건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거리를 걷는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푸른 하늘이 보였던 하늘과 바다는 이제 어둠이 내리고 광장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거리 음악가들의 시간이 되었다. 일행들이 거리의 음악가 주변으로 모여들어 춤을 추고 잠시 버스킹을 즐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광장에서 버스킹을 즐길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 한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버스킹은 주로 음악가들이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러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버스커(busker)라고 한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 '음유시인'을 뜻하는 프랑스어 Troubadour, 북 프랑스에서는 Jongleurs, 고대 독일에서는 Minnesigner, 이탈리아에서는 Buscarsi라 하는 거리음악가들의 길거리 공연 모두 같은 의미이다. Busk의 어원은 '찾다, 구하다'라는 뜻의 스페인어 '부스카르(buscar)'인데, '길거리에서 공연하며’ 고용인이나 스폰서 등을 찾는 행위가 거리 공연의 의미로 확장된 용어이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버스킹을 즐기고 다시 거리를 걷는다.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지나가는 행인들, 전화기를 귀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걷는 사람들,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피부색도 다르고 쓰는 말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타튀르크 거리(Atatürk Cd.)를 걷는다. 수목으로 가득한 야외 카페 ‘LUNA Garden’를 지나고 하두리아누스 문을 향하여 걷는다. 그리고 7시 15분, 붉은 조명과 함께 드러난 하두리아누스 문에 다다른다.



2000년 전 로마의 개선문이었던 하드리아누스 문은 여전히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안탈리아 도심에서 과거 로마인들의 독창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117년부터 138년까지의 로마 제국의 제14대 황제 하두리아누스(Publius Aelius Trajanus Hadrianus, 76년 1월 24일~138년 7월 10일)의 안탈리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서기 130년에 세워진 세 개의 아치로 건축된 개선문이다. 어느 쪽인지 모르지만 탑 하나는 로마제국 시대에 지어졌고, 다른 하나는 13세기 셀주크 술탄 알라딘 케이 쿠 바드 1세 때 건축되었다고 한다.



붉은 조명 아래 드러난 개선문과 양쪽의 웅장한 탑을 바라보며 2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로마 황제가, 그리고 로마인들이 저 문을 통과하며 위풍을 과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해 왔다는, 에티오피아와 예멘 지역을 다스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성경에 나오는 시바의 여왕도 이 문을 지났다는 전설인지 실화인지 모를 이야기가 전해지는 역사적인 문 앞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저 문을 지났을 것이고 또한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그들처럼 이 자리에 서서 저 문을 바라볼 것이다. 그렇게 지난 2천 년과 앞으로 있을 수천 년의 세월 속에 하두리아누스 문 아래 서있었거나 서있을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된 지금 이 순간이 그저 경이로울 지경이다.


하두리아누스 문을 구경하고 다시 아타튀르크 도로를 따라 무라트파샤의 Muratpasa Kaymakamligi의 주차장(Cumhuriyet Meydani Kapali Otaparki)으로 돌아온다. 이곳에서 시작하여 공화국 광장을 거쳐 미나렛 모스크와 붉게 물든 지중해를 보고 아타튀르크 도로를 따라 길게 한 바퀴를 걸으며 구시가지 골목길과 거리를 걸은 셈이다. 무라트파샤는 기원전 150년경 페르가몬의 Attalus II 세가 세운 역사적인 도시 칼레이치의 중심지로 이후 리디아, 로마, 페르시아, 비잔틴, 셀주크, 키프로스, 테케, 오스만 제국 그리고 오늘날의 튀르키예까지 수많은 제국과 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역사적인 도시이다.


이제 밤은 깊어 가고, 오늘도 또 하루의 역사를 기록한 고대도시 칼레이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오늘 묵을 숙소인 Adonis 호텔로 돌아와 호텔에서 준비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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