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함과 차별 너머, 나만의 자리

2025년 3월 13일

by 양동생

나는 내 동기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또 하나의 후배'로 남고 싶지 않았다. 누나에게 나는 나름 특별한 동생이고 싶었다. 누나가 나에게 특별하니까, 나는 그 마음의 대칭을 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꿈에 가까운 일이었고, 누나의 세계에선 그저 가볍게 스쳐 지나갈지도 모를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걸 한 번쯤 고려해 줘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말을 했지만 답장은 없었다.


오늘은 그런 마음을 털어놓은 날이다. 누나는 내가 화이트데이를 위해 준비해 온 쿠키도 모른 채, 인사도 없이 그냥 퇴근해 버렸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솔직했다. 평소라면 말하지 않았을 작은 서운함을 꺼냈고, 그 작은 불만은 술자리로 이어졌다. 누나는 밥을 사주겠다고 했고, 나는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날 나는 많은 말을 했다. 나름 진심을 꺼냈다. 처음에는 조금씩, 그러다 곧 전부. 누나가 다른 후배들과는 다르게 나를 어려워했고, 싫어한 것처럼 느껴졌던 순간들. 내 이름만 부르지 않았던 날들. 누나가 다른 남자 동기만 예뻐했던 것 같았던 장면들. 나에게만 차갑고 단정했던 말투들. 나는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고, 그 모든 것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누나는 말했다. 자신이 처음 설정해 놓은 ‘선’을 넘으려 해서 당황했고, 짜증도 났고, 신기하기도 했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기묘하게 안도했다. 무관심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적어도 불편하게 만든 존재라는 건, 그 마음의 어딘가에 내가 있었다는 증거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꺼냈고, 그건 좋은 시간이었다. 말로 해소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움직였다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누나는 내일 여주로 취재를 간다고 했다. 나는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누나를 지켜주고 싶으니까. 누나는 허락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밤은 조금 특별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술에 취한 누나가 내 자동차 키와 가방을 잘못 들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상하리만치 기뻤다. 내일 다시 만날 수 있는 명분이 하나 더 생겼으니까. 그건 아주 작은 행운처럼 느껴졌다. 누나가 나의 불평을 들어줬다는 건, 누나가 원래 착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나에게 ‘정도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마음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른다. 나는 여전히 누나의 평등함 앞에서 상처를 입는다. 누나는 모든 후배가 똑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누나에게 그들처럼 굴지 않았다. 나는 노력했고, 시간을 들였고, 다르게 행동했다. 그런데도 누나는 나를 그들과 똑같이 대하려 한다. 그 사실은 많이 아프다.


나는 이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누나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아니었나 보다. 누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그래도 오늘, 그걸 다 말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내겐 의미가 있다. 말해도 변하지 않을 거라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 중요하다. 그것이 비록 일방적인 고백이라 해도, 감정은 말로 내보낼 때 비로소 정리가 되니까.


나는 오늘 누나에게 바라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아마 평생 바랄 것이다. 누나의 평등함 너머, 그 바깥 어딘가에서 나만의 자리를 가지길. 그게 가능하든 아니든,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을 것 같다. 어쩌면 계속 아프고 계속 유치해지면서도, 나는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바뀌지 않는 마음 앞에서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누나가 아닌 나 자신이라고. 나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선택할 수 있다.


서운함에 갇히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게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면, 내일도 나는 그 길을 걷는다. 누나의 가방을 돌려줄 명분 하나를 들고, 마치 별일 아닌 척하면서.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특별하고 싶다는 꿈을 놓지 않으면서. 아주 조용히, 그러나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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