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5일
어제 누나가 글쓰기를 가르치는 봉사를 시작한다고 들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말투에는 과장도 없었고, 기대를 숨기려는 기색도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던 사람처럼, 누나는 자신의 다음 일정을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오래도록 귀에 남았다. 누나가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게 봉사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게 이상하리만큼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머물렀다. 나는 당시 여주의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가만히, 그 말을 곱씹었다.
누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매일 이걸 생각한다. 어릴 땐 그냥 뭐든 잘하는 누나였을 것이다. 학교 성적도 좋고, 친구들도 많았고, 부모님한테도 혼나는 일이 드물었겠지. 하지만 요즘 회사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보고 나니 생각을 조금 달리하게 됐다. 누나는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또 ‘잘 견디는 사람’ 일 수 있다는 걸.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말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도 애써 웃는 사람. 누나는 불필요한 말은 입에 담지 않았고, 누군가를 위로할 때조차 말보다 그저 시간을 내주는 쪽을 택한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뭔가를 설명하려 들지 않고도,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누나는 내게 그런 쪽에 가까웠다.
그런 누나가 글쓰기를 가르친다. 그것도 봉사의 형태로. 나는 그 사실이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누나답다고 느꼈다. 누나는 글을 굉장히 잘 쓴다. 책장 앞에 조용히 앉아 밑줄을 긋던 손길, 좋아하는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던 정성, 의미를 오래 붙들기 위해 몇 번이고 천천히 읽던 태도. 누나와 글을 떠올리면 이런 것들이 마구 떠오른다. 누나는 내게 말하진 않았지만, 글이라는 작은 세계를 마음속에 조용히 품고 있었던 사람일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이제 그 조각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려 한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나누는 일. 그것은 무척 아름답고, 숭고하며, 어쩌면 누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예전에 중국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말도 통하지 않는 나에게 글을 보여주며 웃을 때,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훨씬 많다는 걸 실감했다. 봉사라는 건 그런 것이다. 손을 내미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일. 그래서 봉사는 종종, 조용히 사람을 바꾼다. 세계를 향한 시선을 바꾸고, 나 자신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그건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종류의 변화다. 누구보다 누나도 잘 알 것이다. 누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말하지 않고 지켜보는 쪽을 택하니까.
나는 누나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 아무 보상도 없이 누군가에게 시간을 쓰기로 한다는 것,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상은 점점 더 각자의 이익과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모든 관계는 계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나는 여전히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다. 느리고 단정한 걸음을 유지하며, 무언가를 꾸준히 해낸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아무 말 없이 지켜낸다. 그런 사람을 나는 존경한다. 어쩌면 나는 이런 누나를 줄곧 흠모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을 말로 꺼낸 적은 없지만, 누나가 일하는 얼굴을 바라보다가 괜히 눈을 돌리던 날들이 내겐 있다.
누나의 봉사가 아이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란다. 동시에, 누나에게도 무언가 남기를 바란다. 아주 작은 미소 한 조각, 잊히지 않는 문장 하나, 혹은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 같은 것. 그런 시간이 쌓이면,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나는 누나가 그런 시간을 살게 될 거라 믿는다. 누나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시작했으니까. 이 세상에 믿을 만한 게 많진 않지만, 그것만은 왠지 확신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내 누나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진심으로,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