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6일
그날 나는 누나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건 전화는 아니었다. 그저 하루가 조금 심심했고, 세상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고, 마침 누나가 떠올랐다. 누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평소처럼 “응?” 하고 물었고, 나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우리 대화는 언제나 그렇게 단순한 축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했고, 덕질일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누나는 문득 이런 말을 했다. “덕질일기가 소설 같은 데 소설 한번 써보지 그래.” 마치 점심 메뉴를 고르듯 가볍고 무심하게 던진 말이었다. 한 박자 늦게 나는 웃었고, “그런가?”라고 대꾸했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마치 꽤 오랫동안 켜져 있던 어떤 오래된 전등이 탁 꺼진 것처럼.
통화를 끊고 나서도 그 말이 마음에 맴돌았다. 소설을 써보지 그래. 그 말이 그냥 말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누나는 아마도 별 뜻 없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단순히 흘려보낼 수 없었다. 어떤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누나가 한 말은 내 마음 어딘가에 작고 조용한 충격처럼 박혔다. 처음엔 그걸 잘 몰랐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자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누나라는 사람을 글로 옮기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를 바라보는 나 자신을. 누나는 언제나 내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의 대상이었다. 존경과 애정, 거리감과 의존, 어떤 날에는 사랑 같은 감정까지. 물론 나는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다.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았고, 그 감정은 너무 조용해서 언어로 꺼내는 순간 깨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걸 가만히 눌러두고 살았다. 오래된 책갈피처럼, 누군가의 첫 문장처럼.
하지만 누나가 그렇게 말했다. “소설을 써보지 그래.” 그리고 나는 갑자기 결심하게 되었다.
누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자. 그리고 그런 그녀를 조용히 좋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 남자는 나다.
그 남자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그러나 말없이. 때로는 동생이라는 이유로, 때로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하지만 언제나 조금은 멀리서. 그는 그녀의 단정한 말투와, 예기치 않게 부드러운 손끝, 누군가를 도울 때 잠깐 스쳐 지나가는 그 미소를 사랑했다.
그 남자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그녀는 자신이 멋진 사람이라는 걸 모른다. 혹은 알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쿨한 표정으로 “소설 한번 써보지 그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무척 대단한 일이다. 그건 어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 시작하려 한다. 누나에 대한 소설을. 내가 가장 오래, 가장 조용히, 가장 애틋하게 바라본 사람에 대해. 그 소설이 세상에 어떻게 읽히든 상관없다. 나는 그저, 누나가 내게 건넨 한 문장을 내 식으로 되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