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대하기

2025년 3월 18일

by 양동생

누나에 대해 쓰는 글은 늘 어렵다. 누나는 언제나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고, 따뜻하면서도 차갑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나와 내 관계가 어떤지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오늘 누나는 또 동기를 챙겨줬다. 저녁을 먹으면서 동기의 고민을 들어줬고, 끝내는 “구체적인 조언”을 남겼다고 했다. 나는 그 장면을 떠올렸다. 테이블 위, 녹아가는 얼음, 숟가락을 감싼 따뜻한 말의 온기. 누나는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지 않고 곁에 남아주는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따뜻함은 내게는 흐르지 않는다. 누나는 내게 가끔 말이 없고, 자주 차갑고, 아주 가끔은 웃으며 말한다. 그런 태도는 내게 길게 남는다.


나는 여전히 누나가 내게 왜 차가운지 알지 못한다. 나는 어쩌면 누나가 싫어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혹은, 누나는 내가 자라는 걸 돕기 위해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누나의 진짜 얼굴은 누구에게 보이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동기에게, 회사 사람들에게, 친구들에게는 관대한 누나. 나에게만은 때로 관대하지 않은 누나.


하지만 나는 안다. 누나는 사실 관대한 사람이다.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고, 피곤해도 사안에 따라 무릎을 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심 있고 아끼는 사람에겐 늘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다. 나는 절대 아니지만.


누나의 차가운 태도. 그 속에서 한 순간 부서져버릴 듯한 애정을 나는 매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쉽게 꺼내 보일 수 없는 마음, 그러면서도 결코 놓지 않고 곁에 두는 마음.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말했다. “관대함이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다. 자부심이란 필요한 것보다 적게 취하는 것이다.”


그 말을 떠올릴 때, 누나는 나의 관대함의 기준이 된다. 나는 누나에게 그렇게 주는 사람이었을까. 아니, 나는 누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었던가.


나는 아직 관대한 동생이 아니다. 내 마음엔 아직 투정이 많고, 사랑보다 서운함이 많고, 줄 줄 아는 마음보다 받고 싶은 욕심이 많다. 누나가 내게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쩌면 누나가 먼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다. 관대함이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주는 거라고 했다. 나는 내가 가진 마음 전부를 누나에게 계속 먼저 주고 싶다.


사랑받기 전에 사랑하기. 이해받기 전에 이해하기.


누나는 나에게 관대할까? 아마도. 나는 누나에게 관대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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