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분하지만 오래 남는 사람들

2024년 12월 10일

by 양동생

누나는 원래 이런 기념일에 큰 의미를 두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면서도, 막상 일이 닥치게 되면 주변의 사소한 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내가 말을 건네면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며칠 후 그날을 떠올리며 혼자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아, 그랬었나."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차분하고 담백하지만, 고유의 개성을 부담스럽지 않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 세상에는 개성을 앞세워 존재를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화려한 색채로 자신을 칠하고, 큰 목소리로 자신을 알리려 한다. 하지만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식이 아니다. 조용한 목소리로도 충분히 말이 통하고, 굳이 힘주지 않아도 저마다의 고유한 색이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누나가 그런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닮은 사람을 찾는 일이 아닐까.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며, 감정의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그런 사람들은 언뜻 눈에 띄지 않지만, 한 번 각인되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누나와 똑 닮은 민준이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묵직한 존재감이 아니라, 가벼운 듯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사람이 더 오래 남는 것 같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릴 때면, 그 말이 조금은 와닿는다. 그들은 마치 겨울 하늘 같다. 선명하면서도 조용한 빛을 품고 있다. 너무 눈부시지도, 그렇다고 흐릿하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색채.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특별한 것을 내세우지 않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 존재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하게 스며드는 사람들. 나는 아직도 그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누나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keyword
이전 03화선물의 의미와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