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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Jun 18. 2023

Citta d'aqcua, Venezia

2023 이탈리아 여행기 7 - 03242023 

물과 배와 골목, 그리고 다리.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베네치아. 

# 물의 도시에서 물을 볼 수 없다면? 

베로나를 떠나 기차를 타고 베니스로 향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 도시이자, 누구나 한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바로 그 베니스, 베네치아. 한 때, 최고의 해상무역제국으로 그 부유함을 바탕으로 화려한 궁전과 건축물이 지어지고 문화예술이 번성했던 도시. 주요 운송수단이 선박인 수상도시의 대명사. 

그런데, 우리가 한국을 떠나오기 얼마 전 베네치아에 물이 말랐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겨울 가뭄으로 인해 운하에 물이 다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이상 기후와 장기간 썰물 작용으로 말라가는 베니스 운하 [뉴시스Pic] ::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 (newsis.com)

연합뉴스 보도 사진 2023.02.22.

물의 도시에 물이 말랐다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 앙꼬 없는 찐빵 아니겠는가. 출국 한 달 전쯤에 이런 뉴스를 보게 되니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다행히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운하에 물이 가득 차 있는 우리가 아는 그 베네치아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 오버투어리즘의 대명사

코로나 이전 베네치아의 하루 평균 관광객은 7만 명, 많을 때는 17만 명 수준까지 올랐었다고 한다. 본섬에 거주하는 인구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오게 되니 Over Tourism이라고 하는 관광으로 인한 지역 훼손 문제의 대명사격인 도시가 되었다. 관광객 숫자를 늘리는데 일조한 것이 바로 대형 크루즈 선박인데 크루즈를 타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당일치기로 섬을 휩쓸고 지나가고 나면 남는 건 지역민들의 피로감뿐이었던 것이다. 관광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주민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채소가게, 빵집, 과일가게, 세탁소는 사라지고 관광객을 위한 식당과 카페 등으로 골목이 채워진다. 이를 견디지 못한 베네치아 사람들이 2012년부터 벌인 운동이 'No Grandi Navi'였다. 바로 대형 크루즈 선박의 베네치아 정박을 반대하는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은 코로나19 유행 전까지 계속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운동단체의 홈페이지-> http://www.nograndinavi.it/)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베네치아의 관광도 모두 멈춰버렸고 약 3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지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업이 셧다운 되면서 이 도시 또한 많은 이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No Grandi Navi의 활동 모습. 사진 : AFP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많은 이들이 한 목소리로 팬데믹 기간 동안 방문하지 못했던 전 세계의 사람들이 마치 올해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 들어오는 그 첫 번째 해가 2023년이라고 했고, 그로 인해 도시와 지역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인 셈. 


사실, 코로나19 이후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우려나 반대의 목소리는 어느 정도 줄어든 것 같이 보인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감염병에 대한 염려를 갖고 있고 또한 사상 초유의 전염병을 겪게 되면서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지구 환경의 위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 관광객 숫자나 규모 등이 코로나 이전으로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다고 볼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가능하다면 전 세계의 여행객이나 관광객의 숫자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약간은 말도 안 되는 바람을 가지기도 한다. 

여행과 관광이 가진 즐거움과 영향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장거리 비행이 지구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분명히 존재하고, 여행객, 관광객으로서 느끼는 즐거움 이면에 지역민들의 어려움과 피로감이 존재한다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몇 해 전 서울의 관광 정책에 관한 의견들을 나누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참석자 중 한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여행자는 방문지와 지역민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지역을 방문해야 한다." 우리가 여행자로서, 관광객으로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건 그 지역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지역민들과 그들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리고, 여행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경험과 깨달음들을 가지고 자신이 살아가는 곳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여행 이후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 한다.(현재 베네치아에는 대형 크루즈 선박 정박이 금지되어 있고, 당일치기 방문객들에게는 일정 금액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숙박객들은 숙박료에 포함.)

산타루치아역에서 기차를 내린 후 처음으로 만난 베니스의 운하.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더욱 인상적인 풍경으로 남아있는 사진이다. 

# 리알토 다리에서 바라본 베네치아의 운하, 그리고 석양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베네치아 구도시를 돌아보러 나섰다. 곧 해가 질 시간이었기에 아름다운 석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일단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인 리알토 다리로 향했다. 이 다리는 1588~1591년 사이 건설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때 베네치아의 대운하를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하며 특유의 우아한 아치가 유명한 명소이다. 그전에 건설되었던 다리들이 수없이 무너지고 사라진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르네상스 토목건축의 위대한 유산이자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남은 이이 다리는 이제 누구나 찾아갈 수밖에 없는 곳으로 남았다.


다리의 입구 계단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수많은 인파들이 마치 이제 팬데믹은 종료되었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인파를 뚫고 다리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본 운하는 초저녁의 석양과 더불어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운하를 채우고 있는 물길, 그 물길 위를 다니는 갖가지 크고 작은 배들, 운하 주변의 건물들과 양옆으로 늘어선 식당과 카페 등의 모습이 어우러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베네치아의 상징적인 풍경을 그대로 만날 수 있었다. 

유럽에서 만나는 도시의 풍경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경관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고유한 자연환경, 제각각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높이와 규모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건물들과 건물 1층에 주로 자리 잡은 상점들의 외관까지 우리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고 전체를 편히 조망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만난 베네치아의 전경이 그러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서로를 해치지 않으며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느끼게 되는 경외감. 이것이 베네치아를 사랑하는 이유란 생각이 들었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바라본 운하의 전경. 환상적인 하늘색과 운하를 가득 채운 물결, 선착장과 주변 건물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다. 

# 빛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리알토 다리를 벗어나 또 다른 명소,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리알토 다리에서 광장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좁은 골목길과 그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작은 물길들, 그리고 작은 다리들을 만나면서 베네치아란 도시의 진수를 체감할 수 있었다. 


산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의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지이자 두칼레 궁전과 산마르코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 중 한 곳이다. 광장의 4면을 건물들이 모두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아니라 3면을 싸고 있고, 뚫려 있는 한쪽 면은 바다를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찬사 했을 정도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광장이다. 우리가 찾아갔을 땐 이미 해가 거의 진 시간이었기에 자연스레 광장의 야경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산마르코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들을 포함한 야경을 바라보면서 이곳의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가 단지 아름다운 건축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그건 바로 이들이 야간에 조명을 활용하는 방식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야간에 밝히는 조명의 조도는 그리 밝지 않다. 그리고, 색감 또한 우리가 흔히 형광등 색이라고 하는 주광색이 아니라 예전 백열등 전구의 색에 가까운 전구색 내지 주광색과 전구색이 혼합된 듯한 주백색의 조명이 많고, 가로등과 조명등 외에 다른 발광 물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직접 조명보다 간접 조명이 더 많다. 야간의 조명들은 도시 속에서 서로를 드러내기 위해 경쟁하듯 색색의 빛깔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느낌의 조명들이 마치 도시를 감싸듯이 비추면서 아름다운 야경을 완성하게 된다. 이 또한, 다른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도시의 경관을 완성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방식이다. 

산마르코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1층 회랑의 조명등들. 얼핏 보면 낡고 초라해 보이지만 고풍스러운 건물의 외관과 함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산마르코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을 밝히는 조명들. 일정하고 균일하게 조율된 조명들이 건축물의 외관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 준다.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과 거대하고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는 산마르코 대성당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산마르코 광장의 야경과 숙소로 가는 길에 찍어 본 골목의 야경들. 빛을 사용하는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해주는 사진들.

이들이 조명을 이렇게 쓰게 된 데에는 맥락과 배경이 있을 것이다. 나의 추측은 예전 고래기름을 사용하던 가로등에서 19세기 가스등을 거쳐 전구로 이어진 이들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처음부터 강력한 밝기를 가진 조명으로 거리를 비춘 것이 아니라 강도가 낮은 빛으로 시작하여 서서히 발전해 온 조명등의 역사가 지금의 조명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지금은 훨씬 더 강한 빛으로 거리와 건물들을 비출 수 있지만 지난 경험들을 통해 최적의 조도와 거리,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조명 설치법이 자리 잡은 것이다. 실제 이탈리아의 유명도시에서는 상점 간판에 네온사인을 쓰는 게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유일하게 허용되는 곳이 약국 정도.) 


관광과 여행의 명소가 되는 데 있어 첫 번째 조건은 경관성일 것이다. 그것이 빼어난 자연환경이건, 역사의 무게를 자랑하는 유물과 유적이건, 화려한 도시의 경관이건 할 것 없이 방문객의 시야에 들어오는 이미지가 최우선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낮과 밤을 돌아보며 우린 과연 얼마나 도시의 경관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지,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얼마나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물과 배와 다리와 골목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 베네치아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다리를 지나가다 핸드폰으로 찍은 운하의 야경. 마치 유명화가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하다. 도시의 경관성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면 베네치아를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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