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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20. 2023

후회

1.

  중학교 학생회의 요청으로 아이들에게 왜 학교를 그만두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교육적이고 인간적인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따뜻하고 다정하며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갖기 위해 애썼다. 이야기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결정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떤 아이가 물었다. 나는 후회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너희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지나가다 눈인사를 나누고 비 오는 날 우산을 빌려주고 함께 밥을 먹고 그런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같이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나는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말했다.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마음이 먹먹했는지 아이들은 한참 말이 없었다. 마음을 힘껏 쏟은 것은 언제나 몸과 영혼에 무수히 많은 자국을 남긴다. 나는 오랫동안 이 학교가 내게 남긴 어떤 흔적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 같다.


2.

  중1 아이는 앳된 얼굴로 울먹이면서 교장 선생님이 가고 나서도 학교가 이야기하는 철학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지 물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아이가 우는 것을 처음 보았는지 신기해하면서 자신에게서도 동시에 일어나는 어떤 마음들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는 좋은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부모님들과 마을의 청년과 어른들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작은 아이의 머리를 따뜻하게 쓰다듬듯이 말해주었다.

   

  중2 때 전학 온 아이는 그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그리고 여기에 와서 어떻게 그 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는지 울면서 말했고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우리 모두 상처의 아이들이지만 동시에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우리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언제나 관계 속에서 세상을 살아갈 주체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


  어떤 아이는 자신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했고,  어떤 아이는 고등학교에 있는 언니가 내 수업을 듣고 많이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울기도 했다. 그 아이의 언니는 많이 아팠다. 언니가 수업을 통해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 아이에게는 어떤 안도와 희망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의 눈물을 그렇게 이해했다.  


  아이들은 '내적 친밀감'이라는 말로 나와 아이들의 관계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등학교 선배들처럼 같이 하는 수업이 없었고,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어떤 행사에서 보거나 특강 같은 것으로 만났기 때문에 일상적인 친밀감은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뜻이리라. 마음의 친구들, 나는 우리 사이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어쩌면 그 '내적 친밀감' 때문이었을까? 그날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운 것은?    

 

  어떤 아이는 자기는 말이 거친데 교장선생님은 자신들에게 어떻게 말을 그렇게 예쁘게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잘 보이고 싶으니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지니까. 지난 20년 동안 나는 아이들 앞에서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그나마 나쁜 사람이 되지 않았던 것은 모두 내가 만난 아이들 덕분이다. 나의 선생님들.

  

3.

  이 작은 아이들이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많은 것들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울고 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내가 이해받고 있다는 것을. 내 슬픔과 기쁨, 허무와 희망, 좌절과 도전, 실패와 사랑까지 모두 이해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아이들과 나는 오래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연락을 하며 지내기로, 기회가 된다면 시창작 수업을 열기로 그런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교장실로 돌아가는 길에 중2 아이가 울면서 팔을 벌리며 내게 달려왔다. 한번 안아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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