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부처님 제발 우리 아이는 외롭지 않게 해 주세요.
큰아이가 5학년이었던 어느 9월, 동네에서 아는 설희 엄마를 우연히 마주쳤다.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 정민이 엄마, 잘 지냈어?”
“안녕하세요 언니, 잘 지내셨어요?”
“아니, 정민이는 어쩜 그렇게 책만 보며 걸어? 저번에 하교 시간에 혼자서 책 들고 직진하면서 집에 가던데?”
“부럽다, 정민 엄마. 우리 애도 학교 끝나고 그렇게 직진해서 왔으면 좋겠어”
그때부터 큰아이의 별명은 '직진녀'가 되었다. 친구들과 놀기보다 책에 빠져 있는 아이. “땡!” 하면 집으로 직진해 직진녀가 된 우리 아이.
모르는 사람들은 부러워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큰아이는 조용하고 소심하다. 모범생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사실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고 불편한 극내성적인 아이. 마음 맞는 친구가 없으면 차라리 혼자 책 보는 게 낫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외롭지는 않을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혼자 노는 걸 편하게 느끼면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로서 친구 하나 없이 책만 들고 다니는 아이를 보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큰아이는 어릴 적부터 순둥 했지만, 유치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대장 노릇하는 아이의 시중을 들며 끌려다니고 불이익을 당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해 결국 엄마인 내가 나서서 그 관계를 끊어주기도 했다.
사실, 나도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 역시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일곱 살 때까지 장난감을 들고 나가면 항상 누군가에게 뺏기고 울면서 돌아왔다. 친구는 몇 명 없었고, 발표할 일이 생기면 내 번호가 안 불리길 기도하곤 했다. 그래서 조용히 공부만 열심히 했다. 그런 내가 제발 내 아이는 나와는 다르게 아빠를 닮아 활발하고 자신감 넘치길 바랐는데 결국 날 닮았다.
담임 선생님과의 2학기 정기 상담에서 아이가 쉬는 시간에 책만 본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아이 앞에서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모습만 보여준 걸까?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사람들 앞에서 소심한 모습을 보였던 건 아닐까? 자책도 하고 육아책을 읽어보지만, 결국 변하는 것은 없고 불안만 커져갔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벌써 세 번째 완독 중인 해리포터 책을 보는 아이에게 물었다.
“정민아, 너는 친구가 없어도 괜찮아?”
“아니요, 괜찮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친구를 사귀고 싶지도 않아요.”
이게 무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이야? 괜찮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면 될 텐데, 왜 마음을 열지 않아?”
“그냥 그게 편해요. 그런데 왜 내 마음에 맞는 친구가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혹시 우리 아이가 왕따일까, 이제는 친구들과 놀고 싶지만 껴주지 않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을 꾹 눌러 담고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정민아, 네가 아직 마음에 꼭 맞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해서 책이 더 좋아서 보는 건 괜찮아. 하지만 외롭다고 느낀다면, 친구와 함께 놀고 싶다면 그때는 용기가 필요해. 엄마는 너의 선택을 믿어.”
“저는 아직 책 보는 게 더 좋아요. 마음 맞는 친구는 아직 없어서 혼자가 편해요.”
아이는 이내 평온한 얼굴로 다시 해리포터 책에 빠졌다.
‘그래, 너의 마음이 편안하면 됐지.’
큰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사춘기는 없을 거라고 자신했던 나의 기대는 무색하게도 순둥 했던 우리 집 아이도 사자(사춘기 자녀)로 변했고, 이제는 책과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다고 외친다. 내가 바라던 모습이지만, 그 과정을 겪으니 예전이 그리워지는 모순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아이는 자기 속도에 맞게 자란다.
엄마는 항상 불안하다. 어린이집부터 시작된 불안의 연속. 혹여 아이가 외롭진 않을까, 다치진 않을까, 상처받지 않을까. 늘 초조한 마음이 든다. 나도 어릴 적 받은 상처들이 떠오르며, 우리 아이가 나보다는 조금 덜 상처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상처받고, 다치고, 부딪히며 성장해 왔다. 우리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아는 만큼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다른 집 아이가 영어 학원을 두 개 다닌다는 소식에 불안해지고, 아이가 친구를 너무 좋아해도 불안하고, 친구를 너무 안 만나고 집에서 책만 봐도 불안하다. 유튜브의 전문가들을 보고, 잘 키운 엄마들을 보며,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불안해진다. 걱정과 불안 속에서 아닌 척 연기하며 하루하루를 감추며 감정을 다스리는 게 엄마의 일상이다.
아이는 엄마가 믿어주는 만큼 성장한다.
엄마의 불안을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학교 다녀온 아이의 표정 하나에 가슴이 덜컥 거린다. 하지만 내가 지킨 것은 아이에게 내 불안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불안해하고 혼자서 책과 교육 유튜브를 보며 마음을 다스리며, 아이 앞에서는 언제나 너의 편인 든든한 엄마로 존재한다.
“제발 우리 아이에게 착하고 마음에 꼭 맞는 친구가 나타나게 해 주세요.”
간절한 나의 기도를 들으셨는지, 중학생이 된 이후 아이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치열한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속상해하며, 엄마에게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롤러코스터처럼 출렁거리지만, 예전만큼 아이의 기분이 내 기분이 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감정들이 모여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자는 엄마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희귀한 일인데, 우리 집 사자는 동굴로 들어가지 않고, 정글에서 여러 방법을 배우며 잘 성장하고 있다.
"하느님 부처님 우리 집 사자가 동굴로 들어가지 않게 해 주세요."
우리 집 예쁜 사자야. 엄마는 널 믿는다.
그리고 엄마는 너의 감정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
부디 이 글을 읽고 있는 엄마들은 나처럼 불안해하지 않길 바란다. 아이의 불안이 엄마의 불안이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