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는 게 숨이 찰 때

by 빛날애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간다. 뜨거운 여름이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창문 틈을 오래된 편지처럼 스르르 밀어 넣는다. 계절 한 장이 넘겨지는 소리를 듣는 사이, 나는 ‘나’라는 지도의 중심에 서서 또다시 나침반을 굴린다. 그리고 묻는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무엇이 숨을 막는지 알지 못할 때, 어느 구멍을 찾아 숨을 내보내야 할까.


계절의 경계에 서면 나는 잠시 숨을 멈춘다. 바깥 풍경은 바뀌어도 내 안의 풍경은 그대로인 줄 알았건만, 어느새 내부가 좁아져 숨이 가빠진다. 큰 지도를 펼쳐 길을 찾지 않는다. 대신 작은 활자 하나하나에 눈을 대듯 내 마음을 살핀다. 오늘 아침의 기분, 손에 쥔 일의 무게, 잦아진 깜박임이 전하는 속삭임들. ‘원하는 것을 모른다’는 감각은 여러 조각의 신호일뿐, 조용히 하나씩 이름을 불러주면 어떤 조각은 스스로 자리를 잡고, 어떤 조각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방향을 한 번에 정하는 건 오만이다. 먼저 숨을 고르고,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지금은 숨이 너무 차다. 작년 읽은 기사 속, 유빙에 갇혀 숨구멍을 더듬던 범고래의 안타까운 몸부림이 떠올랐다. 범고래가 찾던 작은 틈은, 절박한 우리 모두가 더듬는 희망의 구멍과 닮아 있었다. 나도 지금, 답답함이 파도처럼 일렁이다가 이내 ‘푹’ 가라앉는다.


어제는 이주 전 검사했던 둘째 아이의 MMPI (다면적 인성검사)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검사 결과를 듣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매일 초조하고 불안했다. 아이는 다행히 우울은 아니지만, 도덕성이 높아 예민한 만큼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불안도가 높다고 했다. 그래도 처음 공황이 왔을 때보다 많이 고요해졌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며, 수행 준비도 열심히 하면서 학교 생활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배우고 싶던 악기를 배우기로 했다. 아이의 웃음은 천천히 환해졌다. 아이의 미소에 나는 한숨을 내려놓았다.


인생은 얕게 숨 쉬며 쉬어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숨이 고르던 틈을 비집고, 예상치 못한 순간이 다시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의사의 목소리는 미세한 진동처럼 방 안에 울렸다.

“어머니는 괜찮으세요?”

그 물음은 유리창에 손을 대는 소리로 내 심장에 닿았다. 나는 멈춰 섰다. 늘 아이의 체온만 재다 보니 내 체온을 잴 틈이 없었다. “괜찮아요”라고 웃었지만, 속은 종종 숨이 막혔다. 엄마는 강해야 한다고, 엄마라면 버텨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는 깊은 것을 또 한 번 꾹 눌러 웃음으로 덮어버렸다.

“네? 전 괜찮아요.”

“수치상 어머니 우울도가 높게 나왔어요. 따로 뵙고 싶은데요. 혹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정말요? 하하 전혀요. 전 전혀 그런 마음은 없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많이 힘드셨나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육아 공부도 많이 하고,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연년생 셋을 키우며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엄마니까 버텨야지요.”

의사는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자 인내하는 아내분께 고마워하셔야 해요” 남편의 손길은 나의 무릎을 토닥이고, 진료실은 낮은 숨결의 문답으로 채워졌다. 의사는 말했다. 당신은 고통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웃음 뒤로 모든 것을 삭이며 견디는 사람이라고. 아이 셋을 돌보며 쉬지 못했을 거라 했다. 그 말은 투명한 빛처럼 섰지만, 그 빛을 내 영혼에 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무너지면 누가 아침을 열어줄까. 나는 밤새 등불을 지키는 사람처럼 씩씩한 엄마이고, 해결사인 큰딸이며, 다정한 며느리이자 현명한 아내여야 한다고 내 안의 목소리를 재촉했다.

솔직해지는 일은 내 속의 균열을 드러내는 일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괜찮아.” “더 고단한 이들이 있는데, 이 정도로 힘들다 말하기는 미안해.” 그런 위로로 하루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다만 그 눈물은 타인의 창에 얼룩질까 두려워, 엄마 앞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어릴 적 슬픔을 땅속 깊이 묻어두었고, 아버지가 떠난 뒤 어린아이처럼 무너진 엄마를 보며 나는 더 냉정해졌다. 내가 먼저 무너지면 엄마가 더 깊이 무너질 테니. 엄마는 나를 여전히 ‘똘똘한 우리 집 해결사’라 부른다. 큰딸로서 든든하다는 말은 내 어깨를 자주 눌렀다. 마음 놓을 곳 하나 없다는 감각이 찾아오면, 나는 나만의 동굴로 몸을 말아 조용히 숨을 줄인다.

한동안 글을 쓰려해도 어두움이 번져 글자마저 먹물처럼 번졌다. 침대에 누워 끄적이다가 지워버리고, 다시 덮어버렸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건네고 싶었는데, 내 안의 먹구름이 먼저 손끝을 적셨다. 그러니 글을 쓸 힘도, 말을 꺼낼 용기도 자꾸만 사라졌다. 오래전 어린아이의 억울함과 슬픔이 파도처럼 떠올랐다가 가라앉고, 나는 또다시 나를 책망한다. 또다시 새벽이 밝아오면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몸을 일으켜 씩씩한 엄마 미소로 방 문을 나선다. 내 슬픔의 이름을 부르기조차 흐릿해진 지금, 그래도 누군가에게 작은 빛을 건네고픈 그 마음이 나를 계속 괴롭힌다.

KakaoTalk_20250917_150342863.jpg
KakaoTalk_20250110_162854333.jpg
KakaoTalk_20250708_085610235_04.jpg

오랜만에 아버지를 뵈었다. 납골당 앞 작은 꽃가게들은 저마다 빛을 뽐내며 흥정 소리로 거리를 채웠다. 한때는 그 풍경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나는 어느 가게가 더 가성비 좋고 예쁜지를 살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산 사람은 다 산다’는 말이 불쑥 떠올랐다. 오천 원짜리와 팔천 원짜리 사이에서 망설이다, 가성비를 따지는 나 자신이 우스워져 결국 팔천 원짜리 꽃을 골랐다. 아빠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마음속으로 한참을 이야기했다.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던 종이책을 펼쳤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에 오랫동안 비워 둔 노트북 앞에 조용히 앉아 글을 적는다. 이 글이 잠깐의 둥지가 되어, 숨이 가쁜 마음을 내려놓는다. 사람은 죽을 것만 같다가도 저마다의 숨통을 더듬어 찾아간다. 그렇게라도 숨을 쉬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살아진다.

keyword
이전 08화숨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