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서,
“엄마, 엄마, 엄마아아”
“으앗~얘들아~~엄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아 몰라~엄마가 좋아요~”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있으면 어김없이 내 옆으로 하나둘 안기는 우리 사춘기 삼 남매. 입으로는 “제발 엄마 혼자 시간 좀 보내자~”라고 말하면서도, 그 말 끝에는 언제나 미소가 따라온다. 그리고 아이들을 꼭 끌어안는다. 엄마를 찾는 기분 좋은 귀찮음, 그마저도 감사한 일이다. 아이들은 나의 '동력'이고, 나의 '의지'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러다 영영 절필할 것만 같아 두려움이 나를 불러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불안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집중한다는 것도 어쩌면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무기력한 나를 그럴듯한 이름으로 덮어두고 싶었던 걸까. 아침이면 아이들을 깨우고, 낮에는 일도 하고, 저녁엔 다시 아이들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사춘기 아이들과의 관계는 언제나 줄타기 같다. 너무 다가가지 않되, 멀어지지도 않게. 그들의 마음을 살피며 믿어주고, 안아주며, 자존감을 길러주는 것. 툭툭 내뱉는 말에 의미를 두지 않고, 유머와 웃음으로 흘려보낸다. 아이들에게 우리 집은 언제나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안식처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행복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아이들 앞에서 미소를 지어도, 마음속 회색 구름이 새어 나올까 두려웠다. 행복한 엄마가 곧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면,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웅크린 내 마음이 조용히 식어가곤 했다. 그럴수록 나는 나를 자책하며 더 깊이 웅크려 들었다.
오늘 늦은 오후, 친정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 추석에 나의 글이 실린 <좋은 생각 9월호> 책자를 드렸는데, 읽어보시곤 마음이 아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속 한 번 안 썩이고 참 착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호랑이처럼 단단하고 무섭던 엄마는 이제 눈물이 많은 여린 소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문득, 우리 둘째의 따뜻한 손을 잡으며 다짐했다. 괜찮다. 나는 충분히 좋은 엄마이고, 좋은 딸이며,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한동안 동굴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갔다. 아무 소리도 닿지 않는 곳, 시간조차 잠드는 그곳에서 참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는 내 어깨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고 빛 쪽으로 걸어 나올 차례다. 그곳은 아무리 포근해도 동굴은 결국 차디찬 곳. 너무 오래 있으면 마음은 굳어, 돌멩이가 되어버린다. 돌멩이가 되긴 싫었다. 여전히 따뜻한 숨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 있고 싶었다.
오늘은 대충, 그러나 열심히 살았다. 우물 안 개구리면 또 어떠랴.
괜스레 옷 정리가 하고 싶어 옷장을 뒤집어엎고는 아이들에게 작아진 깨끗한 옷들을 당근마켓에 드림으로 올렸다. 나머지는 100리터 봉투에 꽉꽉 눌러 담아 한쪽 구석에 밀어두었다. 건조기 속 빨래는 내일모레 꺼내도 괜찮고, 설거지는 조금 늦게 해도 된다. 글도 각 잡아 쓰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게 써본다. 대충이야말로, 삶이 잠시 우리에게 허락한 정직한 속도인지도 모른다. 꾸미지 않아도 좋은 날이 있고, 그냥 흘러가도 괜찮은 날이 있다.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그 보폭이, 바로 나의 리듬이다. 운동도 그렇다. 각 잡고 훈련하는 건 나에게는 버겁다. 나에게 맞는 건 혼자 사부작사부작 이어가는 리듬이다. 가끔은 사람들 틈에 함께 달리고, 어떤 날은 혼자 천천히 걷고, 또 어떤 날은 바람을 가르며 앞질러 나간다. 그게 바로 나였다. 혼자 사부작사부작, 그 모습으로도 충분히 괜찮다.
이제 다음은 무엇일까. 한 살 더 먹는 일도 세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다만, 성숙해지는 일이 두려울 뿐. 나는 아직 덜 자란 어른이니까. 단단해지고 싶다.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으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다음으로 건너가는 일은, 요란하지 않게 다가오는 계절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일.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말랑하던 스펀지 같은 마음이 조금씩 탄력 있는 스프링이 되어간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봄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건너가고 있다.
내 마음은 벌써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간다.
이번 챕터를 끝으로 『괜찮지 않아도 되는 마음』브런치 북의 여정을 잠시 마무리하려 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이 많아 마음 한편이 늘 죄송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조용히 안아주신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루하루가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매일의 덤덤한 날들로 온기 가득 채워지길 바랍니다.
저도,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도 진심으로 괜찮지 않아도 괜찮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한분 한분 진심으로 정말, 감사합니다 :)
빛날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