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애 Nov 17. 2024

결혼을 하면 좋은 이유

결혼을 장려합니다.

결혼, 함께 걸어가는 길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 카톡 좀 봐바. 급해."

"응? 이게 뭐야?"

"일단 그중에 하나 골라봐. 어떤 게 예뻐?"

"다짜고짜 뭐야? 타깃이 누군데?"

"아니, 일단 뭐가 예뻐? 그것만 말해."

"동창회 갈 때 돌리려고? 음, 나는 빨강."

"빨강? 알겠어."



연말, 남편은 오랜만에 대학교 동기들과의 동창회가 있을 예정이다. 남편은 무슨 수건에 현수막까지 준비했다고 했는데, 갑자기 비싼 볼펜까지 산다고 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베푸는 걸 즐기는 그는 늘 주변을 밝히는 햇살 같다. 그러나 그 햇살을 부인인 내가 온몸으로 맞을 때, 가끔은 그 따스함이 과해 짜증을 부른다.


"여보 짜잔"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내 와이프 글 쓰는데 내가 외조도 해야지. 빛날애 작가님! 축하해!"


'작가 빛날애' 이 세상에 하나뿐인 볼펜


남편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내 작은 성과에 대해 기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직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얹기엔 부족하지만, 내가 쓴 글들이 운이 좋아 브런치 메인 화면에 보이고, 조회수가 9천을 넘겼을 때, 내 작은 성공에 기뻐해 주어서 더 힘이 났다. 칭찬을 넘어, 기쁨을 두 배로 만들어 주었다.

그의 생각지 못한 응원 덕분에 지친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녹아내린다. 마치 따뜻한 햇살이 내 마음을 감싸는 것처럼,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우리 남편은 인간 '해피바이러스' 다. 그가 웃을 때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없는 사람.

그는 언제나 햇살처럼 밝고 따뜻하다. 햇살이 때론 너무 강해 눈이 부시기도 하지만, 결국 그 빛 덕분에 내 삶은 밝아지고 따뜻해진다.

그에 반면에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어쭙잖은 이타주의자'이자, 늘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나를 그의 밝은 에너지가 끌어당기고, 위로하며 함께 살아간다. "반대가 잘 산다"며 나를 격려하는 사람. 그와 함께라서 나는 내가 아닌,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첫사랑


남편과의 만남은 내가 15살 때, 동네 보습학원에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그의 모습은 마르고 작은 키에 다부져 보였고, 개구쟁이처럼 보였지만, 약한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공부도 항상 1등이었는데,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더 컸던 그 아이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대학 가서 꼭 만나자

16살 부모님 사업 때문에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 가던 날.

학교 근처 공원에서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서로를 좋아했지만, 우리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게 눈물의 작별 인사와 마지막 악수를 하며 돌아섰다. 한 번이라도 돌아볼 줄 알았지만, 독한 그 아이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선명하다.


몇 년 후, 대학교 중간고사 준비로 바쁜 어느 새벽, 갑자기 핸드폰 메시지가 울렸다.

그 메시지를 보고 심장이 쿵, 떨리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그 아이 같았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1학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입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에게 연락조차 없는 그에게 실망과 함께 무언가 오기가 생겼다. 그동안 그 아이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만 들락날락거렸다. 혹시 '여자친구가 생긴 건 아니겠지?' 마음속으로는 연락을 기다렸던 같다. 전역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 1시. 띵동. 문자가 울렸다.


"빛날아, 자니?"


직감적으로 그 아이라고 느꼈다.

너무 오랜만에 그와 연락이 닿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자냐'라고 묻는 말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6월 15일, 중간고사가 끝난 날, 손을 맞잡고 우리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 후, 남편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그가 먼저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나의 슬픔을 나누며 함께 아파했다. 그는 나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겼고,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위한 힘이 되어주었다.

"여보는 잘할 거야." "여보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잖아."

그의 믿음과 응원은 내 마음을 덮는 푸른 하늘 같았다. 아무리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하늘 아래에서 나는 언제나 안정감을 느꼈다.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투는 날도, 의견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는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견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도 남편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편이자, 나의 가장 든든한 친구였다. 그는 나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었고, 함께하는 삶 속에서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나는 남편의 인성과 가치관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지금, 그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결혼은 두 개의 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여행과 같다


그 길에서 우리는 서로의 빛이 되어주며, 때로는 그 빛이 눈부시게 강하게 비추기도 하고, 때로는 그 빛을 함께 나누며 걷는다. 결혼은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저 볼펜으로 내 책에 사인하는 날이 오기를. (사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날까지 나는 꾸준히,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갈게 여보. 고맙고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90년대 크리스마스 씰과 20억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