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애 Nov 07. 2024

새댁은 왜 배가 맨날 불러 있는겨?

어쩌다 보니 삼 남매 엄마가 되었다.

"여보 느낌이 이상해. 설마 아니겠지만, 이따 퇴근길에 테스트기 사 와봐."

느낌이 싸하다. 몸살 난 것처럼 으슬으슬 떨리고 피곤한 느낌. 설마. 아닐 거야. 설마.


설마 설마 했는데,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선명하게 보이는 두줄.

남편 잘 못도 아니지만, 남편이 원망스러워 가자미 눈으로 남편을 째려보면서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흐른다.

"나 어떡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흐르고, 콧물과 뒤범벅되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편은 그런 날 달래느라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며 동동 거렸다.


"미안해 여보.. 근데 그래도 축하해"

"축하? 지금 장난해?"

"그래도 우리한테 온 축복이잖아. 좋게 생각하자. 응?"

"알겠어, 근데 또 딸이면 어떡해."


연년생 딸 둘을 키우다 보니, 시댁에서는 자연스럽게 셋째는 아들을 바라고 계셨다. "셋째가 딸이어도 상관없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마음 한구석엔 아들이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던 것 같다. 셋째도 또 딸이라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스쳐 가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려지기도 했다. 결국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그 작은 불안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는 걸 보면, 나도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런 감정들이 딸들과 뱃속에 있는 아가한테까지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성별이 나올 때까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으아아 앙" "으앙"

큰아이가 울기 시작하니 둘째까지 덩달아 울기 시작한다.

임신 6개월, 이미 내 배는 만삭. 볼록한 배를 힙시트 삼아 작은애를 걸터앉히고 자지러지게 우는 큰아이를 오른팔로 들쳐 안아 "응 그래 그래 알겠어 알겠어 가자, 가자, 가자" 하며, 무언가에 쫓기듯이 나간다. 그리고 빨간 쌍둥이 유모차에 앉기 싫다며, 바둥거리며 버티는 큰아이를 서둘러 앉히고, 벨트를 겨우 채운다. 반대편에는 둘째를 앉힌 후 드디어 출발. 이미 나는 땀이 한 바가지다. 아이들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뛰다시피 걷다가, 느리게 걷다가, 그렇게 반복하며 동네를 뒤뚱뒤뚱 활보한다.

"와 고기네 물고기! 저기 봐 바 와 진짜 크네 꼬기!"

"꼬기!" 언제 울었냐는 듯 울음이 뚝 그친다.

옆 동네 해양수산횟집은 우리 아기들의 아쿠아리움. 언제나 내게 고마운 곳이다.

인기 만점 우리 삼 남매 유모차





빨간 쌍둥이 유모차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이들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기 만점.

한참을 돌면, 어르신들께서 나에게 물어보신다.


"아니, 근데 새댁. 배가 왜 이렇게 맨날 불러있는겨?"
"하하, 뱃속에 또 애기 있어요."
"뭣이여, 아기 낳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가진겨? 셋째는 아들이여, 딸이여?"
"아들이요. 하하."
"아이고, 잘했네! 백점 만점에 백점이네! 딸 딸 아들! 애국자여, 애국자!"

그래, 내가 애국자였다. 어르신들의 박수갈채에 어깨가 으쓱. 그때는 조금 민망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애국자’라는 말이 참 기분 좋았다.


"오늘도 고생했어, 여보."
아이들을 남편에게 넘긴 후, 드디어 두 다리 뻗고 누워본다. "아이고, 허리야."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피곤이 몰려오지만, 그런 피곤함마저 행복하게 느껴졌다.

좀 전에 개켜놓은 빨래들이 아이들 손에 의해 팝콘처럼 날아가고, 난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냥 웃음이 나올 뿐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큰아이 20개월, 둘째는 7개월. 그리고 뱃속에 6개월 된 막내까지. 아, 우리는 행복한 예비 다둥이 가정이구나.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막내는 아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12월을 끝자락을 겨우 넘겨, 1월에 태어나 둘째와 두 살 터울이 되었고,

이제 아이들은 14살, 13살, 11살. 그때, 눈물 콧물 흘리며 “나 어떡해?” 하던 마음은 지금, 정말 눈물이 날 만큼 미안할 정도로 고마운 마음으로 변했다.

막둥이는 우리 집에 웃음꽃을 피우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주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지쳐 보이면 달려와 "엄마 표정이 왜 그래요? 힘든 일 있어요?" 작고 귀여운 손과 볼로 내 볼을 비벼댄다.


사춘기가 와서 사자가 되었지만, 동굴이 아닌 정글에 있어 주어 고마운, 존재만으로 든든한 큰 딸.

언니와 막내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까칠하지만 속이 깊고 마음씨 고운, 미안하고 고마운 둘째 딸.

MBTI (T형) 딸들 사이에서 가장 나랑 닮은 다정한 (F형) 귀염둥이 막내아들.


이제는 내 앞에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뒷모습과 마주하고 있다.

“언제쯤 아이들이 혼자 책을 읽을까?” “언제쯤 스스로 씻을까?” “엄마 좀 안 찾을 때가 언제쯤 올까?” 하면서 기다리던 시간이, 지금은 그리운 시간으로 변했다. 그렇게 빨리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시곗바늘이 빠르게 돌아가기만을 바랐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걸까.

지금은 시곗바늘을 붙잡고 싶은 마음인걸.


식탁 앞에서 예쁜 입으로 오물조물 먹으며, 재잘거리는 싱그럽고 어여쁜 너희를 바라본다.

그리 거울 속에 마주하는 주름 자글한  얼굴 보이고,

고개를 숙이면 3년 내내 불러있던  삼 남매 엄마의 훈장처럼 흉터가 여전히 깊게 남아있다.

임신할수록 생물학적 노화의 가속도가 붙는다더니, 세 번 임신한 나의 노화는 어쩌 할 도리가 없다.


나의 젊음과 청춘이 우리 예쁜 아이들에게 흘러갔다.


앞으로 더욱 싱그러워질 너희가 기대가 돼, 엄마는 정말 기뻐, 근데 눈가 주름은 조금 슬프지만 말이야.



꽃 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차장 바람 서늘해 가을 인가 했더니 그리움이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열다섯 스물다섯 서른아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