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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현 Sep 15. 2022

단순함이란 무엇인가

미친 듯이 심플 (insanely simple) - Ken Segall

 무채색 계통의 옷을 즐겨 입으며 동시에 많은 일을 못하던 내게, 화려하거나 다양한 선택지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덕분에(감사하게도) 한 가지에 집중하는 법과 탁월한 재능 없이도 성과를 내도록 하는 집념을 배울 수 있었지만, 항상 의문이었다. 이런 나의 취향은 어디서 온 걸까? 그저 단순하게 단순함을 선호했던 것일까, 아니면 복잡함을 초월하여 단순함을 추구하게 된 것일까?


 아무래도 전자였던 것 같다. 그저 다양한 선택지가 두려웠을 수도 있으며, 자신감의 결여였을런지도 모르겠다. 뭐, 이유야 어찌 됐건, 단순함을 추구하기에 ‘현명한 방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깊이 없는 단순함은 그저 공허함일 심산이 클 테니.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단순함이란 무엇인가? 비단 디자인적 요소만을 일컫는 개념이 아니다. 그저 0이나 1 같은 숫자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복잡함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가능한 ‘총체적 관념’이다. 그저 하나뿐이라고, 분량이 짧다고, 여백이 많다고 단순함을 이뤘다고 여기긴 힘들다. 평범한 대화 속 한 문장이나 독립선언문의 첫 구절이나 짧긴 매한가지겠지만, 방대한 시간과 생각을 함축해 낸 쪽이 더욱 심오하고 견고하기 마련이지 않겠나.*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단순함은, 헤밍웨이의 아기 신발 이야기 같은, 바로 그런 것이리라(정말로 헤밍웨이가 작성했는지 말았는지는 차치하고).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가 훌륭할 수도 있지 않냐는 반문이 있을 것 같다.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이야기지만, 아주 설득력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명한 과학저술 작가 스티븐 존슨은 그의 저서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 ‘유레카!’의 비밀을 파헤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당사자가 인지하고 있든 아니든, 아이디어는 ‘섬광처럼 떠오르거나’, ‘불꽃이 튀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 토론과 장기간의 학습을 통해 발현된다.


 단순함은 왜 중요한가? 책에서는 단순함의 결과로써 스티브 잡스의 남다른 통찰과 위대한 업적을 내세우지만, 그보다는 철학적이며 본질적인 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과도한 배금주의나 종교적 추앙은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 수 있으니).


단순함이란 집중이다. 지속적 열정이며, 마음을 움직이는 도구다.


1. 단순함은 집중이다.


 단순한 마음가짐은 진정 스스로에게 집중하도록 한다. 복잡하고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내면을 견고히 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복잡하다. 생각이 많아진다. 여기서 단순함은 다시 한번 중요한 질문을 던져준다. ‘진정 스스로에게 집중하였는가’, ‘좇고 있는 것이 타인의 시선인가, 내 삶의 목적인가’, ‘과연 스스로에게 진솔한가’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한 가지 주장하자면, 인생의 목표로써 자주 언급되는 돈과 명예는 외적인 문제며 집중을 흩트리는 복잡함이다. 나의 존재 이유가 외부에 있다면, 얼마나 복잡하고 허무한 정체성인가*). 단순함은 나를 온전히 바라보도록 한다.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하고, 한층 깊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삶의 목표는 나의 문제다.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할 때, 존재의 이유를 당차게 찾아갈 수 있을 테다.


예일대 철학 교수, 셸리 케이건은 그의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DEATH)’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정체성의 본질은 나와 관련된 특정한 사실 또는 나라고 하는 인간의 다양한 단계들 사이의 관계에만 의존한다.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외적 상황과는 무관하다.”


2. 단순함은 지속적 열정이다.


‘ 삶을 관통하는 목표를 찾았다면 정말로 꾸준해야 한다.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가 그의 저서 ‘GRIT'에서 천명했듯, 열정은 생각보다 흔하며 진짜 드문 건 인내심이다. 하지만 지속적 열정이란 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 저 멀리 조망하고 있다가도 눈앞에서 계속 고꾸라진다면 인내는 바닥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해야 할 일도 많고 책임질 것도 많은 우리에겐 고집을 버려야 할 때가 찾아온다. 하지만 단순함은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밀어낸다. 단순함은 우리가 정한 길을, 정확히는 ‘정해놓은 길만’을 비춰 줄 것이다.


 NBA 슈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단순함의 좋은 사례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농구선수라는 목표를 세웠으며, 그 외 다른 것들은 모두 포기했다. 그가 읽었던 책들과 만났던 사람들, 보았던 TV 프로그램들, 그 모두가 하나의 목표로 관통되었다. 재능론, 워라벨과 같은 복잡함은 시야를 흩트리지만, 단순함을 믿는 사람들의 시선엔 흔들림이 없다.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삶의 여정에서 단순함은 최고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며, 고장 나지 않은 나침반은 한 곳만을 가리킨다.


3. 단순함은 마음을 움직이는 도구다.


 행동경제학과 여러 인지 편향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우리 인간은 그리 논리적이거나 경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보단 대체로 직관적이고 간단한 쪽을 선호하며 너무 명확한 사실은 싫어하기도 한다(과도한 경우라면 말이다. 당신이라면 연보라색을 [6667AB]라고 표현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다).


 심지어 이젠 컴퓨터조차 복잡하지 않다. 당신은 코드를 작성하는 대신(개발자가 아니라면) 몇 번의 클릭과 타이핑만으로 손쉽게 구글링 할 것이다. 뿐 만인가. 스마트폰의 플라스틱 버튼은 모두 사라졌으며,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결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슈퍼컴퓨터와 맞먹는 성능의 아이패드는 어린아이들의 필수 아이템이 돼버렸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듯, 많은 발전과 진보가 단순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진보가 단순함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꽤나 계산적으로 보인다. 아마도(거의 확신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선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시스템 1’*을 이용하는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리라. 좋든 싫든 휴리스틱은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여기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이콘)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시스템 1 : 자동 시스템이라고도 하며, 저절로 빠르게 작동하는 직관적 판단을 일컫는다.


 진보의 공식에 따라 선택 설계자들과 그들이 만들어  ‘복잡함을 넘어선 단순함 영향력은 점점  지대해질 테다. 그들의 가지치기를 거친 단순함은 갈수록 견고해져, 거대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화장실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남자가 흘려야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표어보다 소변기에 붙어있는 파리 그림 하나의 효과 훨씬 강력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


 결국 단순함 뒤에는 거대한 복잡함이 숨어있는 셈이다. 단순한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다시 견고한 단순함으로.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서서히 움직인다.


단순함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문제다.


 단순함은 우리에게 전투사가 될 것을 종용한다. 복잡함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선택하고 기꺼이 투쟁하라. 굳건한 태도와 확고한 신념은 단순함의 원칙이자 견실한 삶을 영위해가기 위한 필수 요소다.


 전설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나는 한번 결정을 하면 다시 그 결정을 재고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겼으며,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저명한 교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또한 “100% 하는 것이 98%만 하는 것보다 쉽다.”라고 주장했다. 저자가 찬양해 마지않는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단순함에 대한 ‘집착’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들이 이토록 고집부리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애매한 것은 이미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은 너무도 복잡해서 그 위치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이해한다. 중간이 없다는 말은 어쩐지 위험하게도 들리며, 옹고집이나 정치인들의 싸움처럼 꽉 막힌 불통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확고한 신념이란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며, 이는 단순하게(확실하게)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가, 융통성이라는 애매함을 확고한 신념으로 트레이드오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거래이지 않겠나.


 스티브 잡스가 그의 삶을 통해 증명해냈듯, 단순함은 그저 단순하지 않다. 단순함은 거대하고 복합적인 관념이며, 가장 강력한 힘이다. 단순함은 복잡함을 초월하는 데서 생겨난다.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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