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다니!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
아기의 성장기록을 사진으로 남겨보려고 만든 계정인데 활발하게 운영하는 건 아니고 생각날 때마다 사진 한두 개씩 올리면서 다른 비슷한 월령의 아기들 사진도 보고, 아기엄마들과 대화도 주고받는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다가 오랜만에 영상을 하나 올렸다.
아기가 이제 뒤집기와 되집기는 익숙해지고 배밀이를 시작할 때쯤 찍은 영상인데, 항상 제자리에서 배밀이를 할 듯 말 듯 하길래 앞으로 전진해 보라고 동기부여를 주고자 마침 맘마시간이 되어 젖병에 분유를 타서 40cm쯤 앞에 놓아주었었다.
아기는 늘 그렇듯 젖병을 보고 흥분하여 발을 동동 구르다가 앞으로 전진을 시도했다.
생각처럼 잘 안 되는지 낑낑대며 약간 울 듯 말 듯하다가 옆으로 살짝 누울 듯하길래 포기하는 줄 알았더니 양팔에 힘을 주고 배로 밀어 결국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와우!
우리 아기의 첫 배밀이 성공의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금방 다다라서 젖병을 쓰러뜨리길래 흥분한 나는 젖병을 일으켜 조금 더 뒤에 놓아보았다. 전진하는 우리 아기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대견해서 더 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영차 영차
한번 해 보니 쉽게 되었는지 아기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금방 또다시 도달하여 젖병을 쓰러뜨렸다.
기특하고도 배가 고플 우리 아기를 얼른 안아서 맘마를 주고는 감격스럽고 역사적인 이 순간을 영상으로 남긴 나 자신을 칭찬하며 야근하고 있던 남편에게 보내주었더니 "오! 드디어 배밀이를! 못할 줄 알았는데 앞으로 가네!" 하면서 아기의 성장에 기뻐했다.
<우리 아기의 첫 배밀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린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뜨기 시작했는지 갑자기 외국인들의 '좋아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사랑스럽다!"
"귀엽다!"
"박수 짝짝"
"젖병을 향해 전진! 대단해요!"
사진이나 영상도 몇 없는 거의 폐허와 같은 나의 인스타그램에 좋아요와 댓글이 쌓이고 있었다.
어느 나라 사라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그들의 인스타그램을 한 번씩 들어가 보니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이란 등 아주 다양했다. 전 세계에서 우리 아기의 배밀이를 함께 기뻐해주고, 귀여워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좋아요'와 함께 쌓인 다른 것들도 있었다. 바로 각국의 언어로 쓰인 몇몇의 비난의 댓글들.
"엄마가 맞아? 너무해! 불쌍한 아기."
"모든 것은 때가 있는데, 나라면 절대 저렇게 안 해."
"아기 생각은 안 하고 '좋아요'만 원하는 사람."
"왜 아기를 괴롭히니?"
'세계적으로' 이렇게 관심과 비난을 받아본 것이 처음이라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세계적은커녕 국내에서도 딱히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까지 관점이 다를 수가 있다니. 진짜로 내가 아기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나?
"우리 아기가 처음 기었던 날이에요. 놀랍고 기특해서 찍은 영상이랍니다. 이후에 바로 분유를 주었어요. 걱정 마세요. 전 꽤 좋은 엄마예요.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이게 뭐라고,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한 채 답글을 달았다. 혹여나 상대방이 "오해였네, 미안~"이라는 대댓글을 달아주며 오해가 풀렸다고 알려오지 않을까 해서. 보통 아기엄마들끼리는 댓글로 대화도 나누고 정보도 주고받기 때문에.
하지만 나의 댓글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덩그러니 남겨졌고, 대댓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그런 글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어떤 관점으로 보면 내가 아기를 괴롭히는 나쁜 엄마로 보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는데,
1. 일단 영상 속에는 아기가 젖병에 다다르는 것만 있지, 그 후 꿀꺽꿀꺽 맘마를 먹는 모습은 없다. 아마 내가 젖병을 주지도 않을 거면서 먹는 것 갖고 장난만 치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기보고 불쌍하다고 말한 것일지도.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2. 서양인이 보기에 동양인은 대개 학구열도 뛰어나고 부모가 스파르타로 공부를 시킨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어린 아기에게도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무리해서 기어보도록 압박한 엄마로 보였나 싶기도 하고. (난 사실 방치형 엄마에 가까운 편인데...)
3. 영상 속에서 아기가 울듯 말 듯 소리를 내며 기어 올 때 나는 흥분해서 '오! 조금만 더!'라고 응원을 했는데, 아기의 울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선 아기가 우는데도 영상 찍는 데에 급급한 '좋아요 중독' 엄마로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사적인 순간이라 생각했고, 아기를 키워보니 아기는 대부분 우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해서 난 아기의 울음에 좀 익숙해졌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기 울음에 마음이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상이나 다른 상황을 모르는 입장에서 단편영상 하나만 보면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현재 이 영상의 조회수는 3만 회 가까이 되었고, 좋아요는 1천 개가 넘었고, 현재도 계속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 답글 없는 비난의 댓글은 개의치 않기로 했지만 어떻게 보냐에 따라 이렇게까지 다른 관점을 가질 수가 있구나 싶어 놀라웠던 아주 신기한 경험이다.
문득 BTS처럼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슈퍼스타도 쉬운 일은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새가슴에 쿠크다스 멘탈이라 슈퍼스타는 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