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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으로 깎은 연필 Mar 04. 2023

신당2동 옥탑방 새벽 두 시에 깨다

옥탑방과 편의점 그리고 서울

난곡 사거리 고시원에서 6개월간 살며 나는 보증금을 모아 신당2동 옥탑방으로 이사했다. 서울 한복판 중구에서 다시 시작되는 낯선 생활. 초가을 첫날밤 약수역 인근 빌라 옥탑방에서, 밤을 무서워하는 나는 새벽 두 시, 잠에서 깼다.

     

이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들어가고 싶은 집은 비싸고 돈은 부족하다. 역세권의 가깝고 빠른 교통수단은 집의 시세를 결정하고 사람들은 선호한다. 나는 직장 출퇴근 거리와 살집을 저울질하며 부족한 돈을 헤아리며 집을 구하러 다녔다. 


1시간 전 부동산 중개업소와 통화하고 찾아왔는데 계약되어 없단다. 참. 알고도 속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그 허탈함은 배신의 분노가 마그마만큼 뜨거워지는데, 날 무시한 중개업소 소장은 비싼 매물을 소개하며 걸려들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곧장 나와버렸다. 

그 중개업소는 진실하지 않았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거래하고 싶지 않다, 급하게 거래되었다면 설명이라도 해야 하지만, 그는 말도, 해명도 없어 신뢰가 가지 않았다.


터덜터덜 골목을 내려오면서 약수역으로 가다 앞에 보이는 작은 부동산에 들러 혼자 살 수 있는 작은 월세방을 물어보았다. 

부동산 중개업소 젊은 소장은 여러 매물을 살피고는, 옥탑방이 있는데 한번 보지 않겠냐고 한다. 나는 흥미가 생겼다. 소장은 설명한다. 씻고 조리할 수가 있는 주방도 작지만 있다고 했다. 옥탑 전체를 혼자 사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나는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장점을 먼저 말하고 단점을 뒤에 말하는 것이 순서인지 모르지만 소장은 옥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좁고 가파른 철계단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좋다. 나 혼자 사는 집에 계단이 좁으면 어떻고 가파르면 어쩌랴. 오래오래 살집도 아니고, 진짜 내 집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오늘 잘하면 이 집을 계약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한국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가장 큰 단점이 맨 뒤에 나왔다. 소장은 말한다.


 “그런데 화장실이 없어요”

“네! 화장실이 없다고요?”

“네에. 에헤, 남자니까 그냥 소변은 물 틀고 하면 돼요”

“어허….”

갑자기 멍해졌다. 집에 화장실이 없다니. 잘 나가다 철벽을 만난 것 같았다. 그러나 고민은 몇 초 되지 않아 끝났다. 나는 아쉽지만 보자고 했다. 중개업소 소장도 얼굴이 밝아지며 바로 가자고 했고 소장은 바로 뒷집이라며 부동산 문을 잠그고 앞장섰다.

부동산 앞에는 편의점이 있어 나는 이용에 편리해 보였다. 


오래전 지어진 작은 3층 빌라. 내부 계단으로 들어가 2층에 오르자 외부로 나온다. 유리 지붕을 덮어 2층은 비를 맞지 않게 되어있다.

코너를 돌자, 사다리 같은 계단이 나타났다. 

“와” 옥탑으로 쭉뻗은 철계단. 난간을 꽉 잡고 올랐다. 철계단 사이 빈틈으로 아찔하게 바닥이 보이고 너머 골목길 아래 편의점도 훤히 보였다.

집 자체가 작은 집이라서 옥탑의 공간은 넓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가장자리에 벽돌로 지은 방 한 칸이 있고 그 테두리를 칸막이를 대어 유리문을 달아놓았다. 한쪽은 부엌, 옆으로는 수도와 세면실이 있다.     

방문을 열자 작지만 깨끗한 방이 나타났다. 혼자 살기에 딱 좋았다. 약수역까지 거리는 뛰면 30초 걸으면 1분대 큰일이 생겨 화장실이 급하다면 나는 약수역으로 간다. 충분한 시간이고 이 정도 거리면 여유 있다. 초역세권의 장점이 출퇴근뿐 아니라 지하철 화장실도 공으로 쓰게 생겼다. 더구나 나는 장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지만 화장실도 이틀꼴로 가기에 화장실은 문제 되지 않았다.


생각할 필요 없이 나는 임대차 계약을 했다. 그리고 친하게 지낸 고시원 총무가 승용차로 옷가지와 가방, 작은 짐들을 실어다 주었다. 나는 시장에서 당장 덮고 잘 이불을 사고 끓여 먹을 냄비와 팬을 샀다. 세숫대야도 사고 비도 샀다. 사다 놓고 보면,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자꾸 생겨났다. 통통한 고등어 같은 지갑이 저녁엔 오징어처럼 얇아졌다.     

중고 냉장고를 사고 나니 한살림 되었다. 일요일 오후 열심히 오가며 개미처럼 물어다 들여놓은 작은방은 생활 도구들로 채워지며 내 누울 공간만 딱 남았다.


나는 행복했다. 나만의 작은 공간.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할 사람도 없다. 나는 진정한 자유를 찾은 것 같았다. 회사도 가까워졌다. 을지로 입구까지는 전철로 15분 거리라서 나는 빵빵하게 만족했다. 집도 초역세권 회사도 역 바로 앞이라서  출퇴근 시간도 최대로 줄여놨다.

분주했던 하루. 피곤이 몰려와 나는 낯선 신당동 옥탑방에서 첫날밤을 잤다. 창문을 반쯤 열고 잤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가을밤의 공기는 상쾌했다. 


    

10시에 잤는데 2시쯤 깼다. 창문 너머 아래 맞은편 편의점. 어떤 젊은이들이 술을 먹고 고성을 지르며 말다툼을 하는 것 같았다. 잘 자던 난 잠이 확 깼다.

창문을 열고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 않다. 그럴 용기도 생기지 않지만, 갑자기 이방이 싼 이유가 하나 더 있음을, 잠이 깬 나는 이불속에서 뒤늦은 감점 요인을 받아들였다.

     

각도 높은 철계단은 여성 입주자가 꺼릴 것이고,

화장실이 없어 임차인 반 이상 고개를 저을 것이고,

편의점의 밤새 오가는 손님으로 귀가 민감한 이들도 외면할 것이다.     

집의 조건 중. 단일 항목에서는 장단점이 뚜렷했지만, 종합 점수에서 근소하게 우수하여 계약했던 집인데, 편의점 소음이 반영되어 아무리 잘 쳐줘도 평가점수 보통 이하가 되었다. 예상치 못한 단점이라서 더 시끄럽게 들렸다.


그런데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단점들은 내  적응의 능력으로. 옥탑방 생활이 익숙해지며 단점들이 장점으로 상향되었다. 철계단도 무섭지 않았고 화장실은 걱정거리도 아니고, 밤늦게 편의점에서 들리는 소음도 불편하지 않았다.

편의점을 오가는 사람들. 그들이 나 잠 못 자게 일부러 크게 소리를 내는 건 아니다. 단지 내가 듣기 싫을 뿐이다. 듣기 싫으면 조용한 곳 찾아 살아야 하는 게 맞다. 난 싸게 들어왔으니까 난 손해 본 게 없다.


그러나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다. 불 꺼진 깜깜한 방. 나 혼자 자는 밤. 깊은 밤 캄캄한 골목길,  깜깜한 지하방에서 홀로 자는 것처럼, 나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무당들 말들 속에, 떠도는 혼이 있다는 등. 그런 미신까지도 나는 무서워했다. 


시간이 지나 이마저도 무섭지 않아 졌다. 창문 너머 아래,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내 외롭고 쓸쓸한 밤의 무서움을 지켜주는 이들로 생각됐다.     

서울 중심부 신당2동 옥탑방 아래 편의점에서 들리는 소리는, 날 위한 아군이 되어 옥탑방을 지키는 신호 같았다. 보초병이 암호를 대듯이. 옥탑방은 점점 행복한 내 공간이 되었다. 새벽 두 시에 눈을 떠도 나는 스르르 눈을 감는다. 

한밤중 편의점은, 간혹  인기척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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