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조심성 없는 무식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고는 순간의 착각과 실수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절망의 쓴 눈물과 쓸쓸한 피를 본 후에 늦었다는 것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두고 설움을 뱉어낼 때는, 이미 당신의 사랑은 떠나버린 뒤가 된다는 걸 모른 채, 나는 어리고 생각이 없었다.
팔레트(pallet)라는 화물 운반 틀이 있다. 이것은 보통 목재로 만들어져 지게차로 들어 옮기거나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기 좋게 짜 만든 틀이다.
지붕 마감재로 쓸 금속기와는 며칠 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지붕 한가운데 간격을 두고 올려놓았다.
아파트 전면 1층부터 최상층 옥탑까지 올라가는 고정된 철골 타워에 수직 톱니가 있다. 직사각의 철망으로 만든 리프트에 전동 모터에 장착된 굵은 톱니바퀴가 수직 톱니에 물려 작업자를 상층부로 들어 올려 이동시킨다. 작업자인 나는 이를 이용해 상층부로 오르내린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리프트는 처음 타는 사람은 꽤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경사가 진 콘크리트 지붕에 앵커볼트를 박아 고정하고 지붕 마감재를 붙이기 위해 목재로 상판 작업을 한다. 난 그런 일을 하는 현장 목수이자 일꾼이었다.
보통 어지간히 바쁘지 않은 이상 일요일 근무는 하지 않지만, 지붕 마감 공정이 늦은 우리 팀은 오늘 일요일 근무를 했다. 직사각 상판 위에 금속기와를 얹어 한 장 한 장 못을 박아 나가자 하나씩 팔레트(pallet)는 비워지고, 뜨거운 햇볕에 짐을 비운 팔레트(pallet)는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도 말라 있다.
하루 일을 마칠 무렵 나는 타워 리프트를 타고 내려갈 때 빈 팔레트(pallet)를 폐기장에 갔다 버려야 했지만, 번거롭게 들고 가기 싫어 아무도 없는 1층 바닥으로 던져 버리기로 했다.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팔레트(pallet)를 던질 장소와 위치를 난 보고 있었다.
안전교육에서 절대 금기되는 위험한 행동이다. 만약 그러다 현장 감독에게 걸리면 바로 퇴출당할 수 있고 사고가 나면 민 형사상 책임을 다 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냥 빨리 해치우고 내려가려 했던 마음이 더 컸다.
지붕 끝자락 난간에서 다시 한번 밑을 보고 확인했다. 15층 꼭대기에서 보는 아찔한 1층 바닥은 아무도 없다. 나무 팔레트(pallet)를 들었다. 가로세로 1m가량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나무판. 한 번 더 아래를 보고 확인했다.
없다.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내 조금의 편리를 위해 과감히 공터 쪽으로 힘껏 던졌다. 그리고 나는 떨어지는 팔레트(pallet)를 지켜보았다
던지자마자 번쩍! 난 놀랐다. ‘으윽’ 내 얼굴은 공포로 바뀌었다. 어떤 작업자가 1층 입구에서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다. 왜 하필 이때 나오는 거야라고 섬광처럼 스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무 도움 안 되는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야속한 시간은 날 외면하고 있다.
온 신경이 팔레트(pallet)가 떨어지는 위치를 보며 뛰어가는 사람과 팔레트(pallet)를 간절하게,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고 제발 비켜가라고 속으로 외쳤다.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지만, 팔레트(pallet)는 이미 잡아 당길수 없는 상태다.
떨어지는 팔레트(pallet)는 가볍고 넓어서 바람을 타고 밀려서 떨어지고 있다. 달려가는 사람 방향으로 내려칠 듯 향하고 있다.
울 수도 없는 상황.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나는 살인자가 된 것처럼, 앞일을 각오했다. 어떠한 비난까지도. 내 인생은 끝났다고. 수십 개의 벌 받는 생각들이 쏟아져 나를 두들겼다.
‘안돼! 제발’
달려가는 사람을 향해 떨어지는 팔레트(pallet)를 보고 맞더라도 비켜 맞으라고, 살아야 한다고 죽으면 안 된다고 나는 빌었다.
‘어어 어’ “쾅” 빠사삭. 나무 팔레트(pallet)는 산산조각이 났다.
“후 하” 한숨이 크게 나왔다.
"살았다"
엉청난 걱정과 후회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못생긴 티라노 사우르스 입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할까? 이보다 긴 시간이 있었을까? 하는 짧은 시간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목숨건, 응원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내 인생의 모든 식겁들이 한꺼번에 다 나와 뒷통수를 후려친 것 같았다.
팔레트(pallet는 달려가는 작업자 바로 2미터도 안 되는 지점에 떨어졌고 박살이 난 나무토막 하나는 작업자 종아리쯤을 맞춘 듯했는데, 그 사람은 무엇이 급한지 ‘이게 뭐야’ 하고 주위를 한번 보더니 다시 뛰어가버렸다.
스물두 살 운전면허 주행시험 출발 때도 다리가 떨렸는데 그건 새 발의 피다. 지금 이 순간은 무시무시한 공포의 현장에서 도망 나온 것처럼 내 다리는, 덜덜 들썩이고 있다.
담배를 꺼내 폐 속 깊숙이 채워 내뱉어도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을 쉬고서 일어설 수 있었다. 감사했다. 하늘에 감사하고 오늘 운에 감사했다. 그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 고마웠다.
팔레트(pallet). 조심해야겠다. 특히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