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天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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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이

“제 어미 잡아먹은 년이 목구멍으로 밥이 쳐 넘어가냐? 네가 죽었어야지, 네년 때문에 내 딸 팔자가 꼬였어, 다 네년 때문이야.”

할머니는 은숙 얼굴만 마주하면, 은숙을 낳다 죽은 딸의 죽음이 은숙 때문이라며 모진 말을 늘어놓았다. 어린 은숙은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할머니 말에,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할머니 화를 받아 냈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할머니 입어서 나오는 말은, 은숙을 조준하고 쉴 새 없이 쏴 대는 사나운 불화살 같았다. 그 화살이 은숙 가슴에 박혀, 자신도 모르게 응어리로 맺혀 있던 분노를 솟구치게 했다.

“아 씨발, 누가 낳아 달라고 그랬어. 할마시 딸년 살아 있으면 내가 물어보고 싶네, 왜 나 같은 것을 나았냐고….”

“저런 죽일 년을 봤나. 나가서 너도 어디서 뒈져버려.”


은숙은 그렇게 할머니와 잦은 다툼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와 거리에서 만난 비슷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술과 담배를 배우고 빈집을 찾아다니며 한 대 잠에 익숙해져, 생계를 위해 남자를 상대하게 되었다. 가끔 거리 생활이 허기지고 지쳐 집을 찾아드는 날이면, 텅 빈 대폿집 홀에 혼자 앉아 술이 거해진 할머니는 은숙에게 노래를 불러 보라고 했었다.

“네년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죽은 네 어미가 살아난 것 같어. 아이고 이년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던데, 살아 있지 왜 죽어.”


전쟁통에 남편과 생이별하고 홀로 애지중지 키운 딸이 모아 숨겨 둔 돈을 훔쳐 가수가 되겠다고 서울로 도망갔었다. 돈이 떨어지면 돌아오겠거니, 몸만 상하지 말고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었다. 뱃속에 생명을 잉태하고 돌아온 딸은 은반을 내주겠다던 놈이 임신 사실을 알고 떠나 버렸다고 했다. 술독에 빠져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구석에 틀어박혀 줄곧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런 딸에게 마음에도 없는 악담을 했었다.

“그래 죽어. 곧 어미가 될 년이 늙은 어미 앞에서 허구한 날 죽겠다는 소리나 하고, 그래 뱃속 애하고 같이 죽어. 아니다, 다 같이 죽자. 이렇게 살아 뭐 하냐”


그런 딸이 손녀를 낳다, 정말 명줄을 놔버렸었다.

손녀는 딸의 분신처럼 모든 것이 똑같았다. 보고 있으면 딸에 대한 그리움의 무게가 짙게 드리우는 슬픔을 견디지 못해, 죄 없는 손녀에게 독한 말을 퍼부었었다.

“은숙아, 살 놈은 다 살더라. 내가 오래전에 헤어진 네 할아버지 생사(生死)나 좀 알고 싶어, 한참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산속 외진 곳에서 어떤 임산부가 목을 맨 채 매달려 있길래, 내가 절에 알려 살린 적이 있었지. 임산부도 뱃속 애도 살았다고 하던데, 네 어미는 아마 죽을 팔자였던 게야. 애 밴 년이 끼니는 입에도 대지 않고, 매일 같이 담배에 절어 독한 술만 퍼마시더니, 살 생각이 없었던 게야. 그런 어미 뱃속에서 살아남아 네가 무사히 세상 구경한 것도 기적이었다. 죽을 년은 죽고, 살 년은 살더라. 너는 명줄이 길어 오래 살 게야. 그래 네 어미 몫까지 오래오래 살아라.”


술에 취해 뱉어내는 할머니 추념(追念)은 은숙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그럴 때면 은숙은 할머니를 가겟방에 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생각했었다. 그날도 손님 없는 홀에 혼자 앉아 늦은 시간까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잠긴 가게 유리 미닫이문을 열려는 덜컥임으로 오래된 문이 흔들리는 것 같더니, 문이 잠긴 것을 알아차리고, 소심하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가게 문 닫았어요.”

“불이 켜진 술집에 노랫소리가 좋아서….”

문을 열었을 때 돈 많아 보이는 점잖은 중년 신사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술 대신 노랫값을 줄 테니, 노래를 계속 불러 달라고 했다. 은숙은 여러 곡의 노래를 불렀고, 남자는 은숙에게 돈을 줄 터이니 한 번씩 따로 만날 수 있겠냐 물었다. 은숙은 빈곤한 처지에 돈줄을 잡을 요량으로 가끔 남자를 만나 노래를 불러주고, 잠자리 상대를 해 주었었다. 남자는 별났다. 곧 다가오는 겨울 방학을 보내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될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학교는 빼먹지 말고 다니라는 어른 노릇을 하지 않나, 학생다운 옷차림을 강요하기도 했었다. 은숙 몸을 취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이면서도, 은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은숙이 아닌 다른 여인을 떠올리는 것 같았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 말을 중얼거리며, 은숙 노래에 맞춰 은숙 몸을 부드럽고 거칠게 다루었었다. 관계하는 내내 노래를 불러 달라 요구하는 남자의 취향이 짜증스러워 그만 만나야겠다, 생각도 했지만, 돈이 떨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그를 찾아가곤 했었다.

어느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은숙은 남자에게 가서 수술비를 요구했지만, 남자는 자기 몸은 수술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이 되어 불같이 화를 냈다. 이후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배가 불러올수록 가끔이라도 들어갔던 할머니에게는 갈 수 없었고, 막달이 가까워지면서 학교는 더욱 나 수 없었다. 장맛비가 유난히도 구슬프게 내리는 밤, 무너져 내리는 빈집에서 아이를 출산했고, 은숙은 아이를 버려두고 가 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찾은 집은 터만 남아 허물어져 있었고, 아기는 그 속에 깔려 죽었을 것이라 여겼다. 출산 이후 학교에 돌아갔지만, 출산 때 같이 있었던 친구가 은숙의 출산을 소문냈고, 학교 선생님까지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학교에 찾아가 그럴 리가 없다고, 친구들 간의 다툼으로 만들어 낸 거짓말이라고 변명했지만, 은숙은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남겨 두고 퇴학당하고 말았다. 은숙은 그 길로 다시는 할머니 대폿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었다.




피멍 든 얼굴로 난장판이 되어 있는 방안을 응시하며, 은숙은 옛 기억에 잠겨 그때 버린 아기 때문에 자기 인생에 저주가 내려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은숙은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로 인해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어, 태어난 자신이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비난하는 할머니 입술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세상을 떠돌며 살아온 인생은 죽지 못해 사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자기가 낳아 버린 생명도 자신 같은 인생을 사느니, 차라리 그때 그렇게 죽은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여겼다.

은숙은 이곳저곳을 떠돌다 남편을 만나 딸 정아를 낳고 살고 있었다. 술과 노름에 빠져 은숙과 정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칠 때마다, 남편에게 잡혀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고 붙잡혀 오기를 여러 번이었다. 어린 딸 정아는 아빠 목소리만 들려도 어디든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직 살아 있을까?’ 은숙은 얼마 전부터 할머니가 꿈에 보여, 어쩌면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옷장 속에 숨어 잠이든 정아를 둘러업고, 은숙은 할머니 대폿집으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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