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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엘리 Mar 09. 2023

뉴질랜드 약국의 단골손님

그들이 약국에 매일 오는 이유


한 손님이 진열된 약이나 물건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모든 것을 알고있는 듯, 곧장 조제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가, 인사를 하고 무엇을 도와드릴지 말을 건넸다. 손님은 나의 아는 척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제실 안쪽의 약사를 향해 눈인사를 했다. 약사는 그 손님에게 짧게 아는 척을 하더니 이내 컴퓨터에서 그의 기록을 열어 처방전을 빠르게 확인한 뒤 조제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가 복용하는 약을 한 병 가지고 나왔다. 병에는 액체로 된 약이 들어있었다. 약사는 제법 큰 그 약병에 주사기를 꼽고 그에게 처방된 정확한 복용량을 주사기의 눈금에 맞춰 신중하게 빨아올렸다. 주사기에 기포가 없는지 확인을 하고, 주사기 속의 약을 손님이 마시기 편하도록 작은 병에 옮겨 닮았다. 한 모금 정도 마실 수 있는 적은 양의 물도 컵에 담아 함께 준비했다. 약사는 약과 물을 조제실 밖의 카운터에 올려놓고 그가 약을 마시는 것을 지켜봤다. 손님은 약을 삼키고, 물을 삼킨 뒤 입을 벌려 약사에게 보여주었다. 약사는 전용 쓰레기통을 내밀어 그가 마시고 남은 약병과 물컵을 동시에 버리도록 했다. 그리고 손님은 약국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그때까지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일련의 과정을 나는 숨죽여 지켜보았다. 물론 나중에는 익숙한 과정이 되어, 내가 직접 그의 약을 준비해 주었지만 말이다. (테크니션은 준비와 기록 과정까지 하고 최종 복약 지도 및 각종 확인은 약사의 일이다.) 그 손님이 먹었던 물약은  ‘메타돈(methadone)’이라는 이름의 약으로 의료적으로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의 성분이다. 환자에 따라 알약의 형태로 복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제 발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그 손님이 강력한 진통제를 먹을 만큼 통증이 심한 환자는 아닐 테고, 그는 왜 메타돈을 복용하는 것일까?  답은, 그가 마약 중독자이기 때문이다. 진통제인 메타돈은 약물 중독자들의 치료용 마약으로도 쓰인다.


뉴질랜드의 많은 약국에는 그 손님처럼 거의 매일 또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자신의 상태에 따라 정해진 날, 늘 비슷한 시간에 오는 약물 중독 치료 단골손님들이 있다. 이렇게 푸른 하늘에 사방이 초록으로 빛나는, 아름답고 여유로운 환경에 걱정거리는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나라에 생각보다 많은 약물 중독자들이 살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삶의 필수 요소는 아닌가 보다.


뉴질랜드는 약물 중독자들이 불법적으로 어둠의 세계에서 약물 중독으로 신음하고 자신도 모르게 범죄에 연루된다거나 또 다른 질병에 노출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정책을 택했다. 국가 차원에서 약물 중독 치료를 결심했다는 것은 그만큼 약물 중독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일 거라 짐작한다. 약물 중독자를 관리하는 기관이 있고, 각각의 환자에 따라 다른 처방을 한다. 처방에 따라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약국에서 그들에게 합법적인 치료 목적의 마약을 제공하면서 그들이 언젠가는 약을 끊고 갱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담당 기관과 지역 사회의 약국이 그 일을 실행하고 있는 주체인 것이다. 뉴질랜드의 약국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이다.


약국 밖에서는 전혀 몰랐던 약국의 숨겨진 단골손님의 존재를 알고부터는 그들의 약 앞에서는 항상 더 신중했다. 관리 기관에서 보내주는 특별한 형태의 그들의 처방전은 따로 큰 폴더의 환자 개개인 섹션에 보관한다. 복약할 때마다 처방전을 한 번 더 확인해서 복약 사실을 기록한다. 물론, 컴퓨터상의 프로그램에서도 확인과 기록을 한다. 환자의 약은 조제실의 제일 안쪽, 안전 금고에 넣어두고 손님이 직접 약국에 도착해서 얼굴을 보여줘야 비로소 꺼내어 준비를 한다. 그리고 손님은 약사가 보는 앞에서 제대로 약을 복용해야 하고, 약을 먹고 나서 입안에 남겨놓거나 숨긴 것 없이 다 삼켰는지 확인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약국에서 관리하는 별도의 기록장에 어떤 손님이 얼만큼의 약을 복용했는지 한 번 더 기록하고 남아있는 약의 양과 비교 확인하며 꼭 크로스 체크를 한다. 또한, 손님의 변동 사항이나 특이 사항은 관리 기관에 보고를 한다. 그들이 치료를 잘 받고 있는지, 복약량이나 약의 적합성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약사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약국에 오는 메타돈 손님들은 메타돈을 복용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요?”


30대 중반의 젊은 약사에게서 돌아온 답은 이렇다.


“제가 예전에 같은 약국에서 근무했던 동료 약사분 중에 경력이 40년 정도 된 할아버지 약사분이 계셨는데요. 그분 말씀이, 약사 생활 하시는 중에 약을 완전히 끊은 사람은 딱 한 명 보셨데요. “


충격적인 답변이었다.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서 약물 중독자 해롱이가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를 하자마자 다시 약을 찾아가는 결말을 보았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드라마보다 더 가혹한 것은 역시 현실이다.


요즘 연일 우리나라의 인터넷 뉴스에서 유명한 젊은 배우의 마약 투약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뉴스에서 크게 다룬 내용 중, 그의 투약량과 투약 횟수, 약의 종류가 있었다. 그는 점점 많은 양을, 점점 자주, 점점 강력한 종류를 복용한 것으로 보였다. 연기를 잘하고, 독특한 말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배우였는데 안타까운 소식이다. 그 배우가 약물 중독 치료를 받는다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연기를 다시 보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앞으로 평생 연기 대신, 약물 중독 치료를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배우의 뉴스를 보고 있으니, 뉴질랜드 약국의 단골손님들 생각이 났다. 어마어마한 애국자는 아닌데도 우리나라의 지역 사회의 약국에서 마약 치료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된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부디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나라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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