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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Feb 25. 2023

정직하게 순수하게

예쁜 것은 예쁘다고, 미운 것은 밉다고.

"선생님, 저도 이 여우 퍼펫 만들고 싶어요."

"우리 2분 후에 나가야 하는데. 이따가 오후에 와서 같이 만들까?"

"싫어요!! 지금 만들래요!!"

"곧 등교시간이라서 다 못 만들 텐데. 애들아, 이거 만드는데 2분이면 만들 수 있을까?"

"풀로 화장지에 색종이를 붙이는데 오래 걸려요. 꼬리랑 얼굴도 만들어서 붙여야 하는데..

10분 정도 걸릴걸요."(다른 학생들)

"들었지? 오후에 같이 만들자."

"싫어요. 선생님 미워요!!!! 앙.... 나빠요! 정말 만들고 싶단 말이에요. 앙..."

"아.. 너무 시끄러워요. N은 나빠요. 소리 지르고 떼쓰는 아이예요." (다른 학생들)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말하면 안 돼요. 정말 만들고 싶으면 지금 시작만 해 놓을까요?"

"네.. 좋아요."

"조용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휴가를 가신 돌봄이 교실 선생님 대신 아침에 아이들을 봐주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미술 선생님인지라 아이들은 나만 보면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자고 하는 편이다. 아침 돌봄이 교실에서는 등교 전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면서 쉬도록 보살피는 것만 하고 있다. 등교시간인 8:45분에 맞추어 교실로 들여보내는 것도 나의 임무다. 오늘은 한 시간 정도 아이들과 퍼펫 만들기를 하였다. N은 돌봄이 교실에 오는 1학년 단골 학생이다. 또래보다 목소리가 크고 거친 성격과 행동에 눈에 띄는 학생이기도 하다. 어린 학생들은 종종 느끼는대로 이야기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일이 있다. 못하게 하면 나는 영락없이 미운 사람이라고 불린다. 나는 밉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투여하지도 않았지만, 아이가 정직하게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들과 다르게 아이들의 미운감정은 금방 다른 감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대학교를 들어간 후부터 미술 과외를 하기 시작하였다. 용돈 벌이로 하였던 터라 초등학생 미술 과외가 대부분이었다. 주 1회 만나는 날인데, 늘 긴 머리에 원피스를 입고 다녔던 나를 학생들이 유난히 좋아했다. 아이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궁금한 것이 참 많았다. 오늘 내 기분이 어떤지, 내가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좋은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등 나에 대한 관찰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또한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 등 개인적인 질문도 많이 하였다. 그때는 아이들이 외모나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짧게 하고 파마를 한 날은 아이들이 더 신나 하고 긴 생머리에 머리띠를 하고 가면 공주 같다며 좋아했다. 나에게 칭찬만 하니 아이들이 늘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 했다. 


지난 20여 년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들이 조금씩 다르게 들리게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나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미술을 가르치는 나에게 순수하게 말하고 있던 것이다.    


"전 선생님이 정말 좋아요."

("미술시간이 정말 좋아요.")


"와, 오늘 선생님 옷이 정말 예뻐요."

("오늘도 예쁜 앞치마를 입고 오셨네요.")


"선생님을 기다렸어요. 이 물감 오늘 쓸 건가요?"

("물감으로 그림 그리는 날인가요? 신나요!!")


매주 이 중 한 가지는 듣는데, 요점은 '미술수업을 기다렸어요! 혹은 물감으로 하는 수업이 제일 좋아요.'이다. 나는 가르칠 때 더 이상 원피스나 예쁜 옷을 입지 않는다. 매번 검은색 바지에 온몸을 가릴 수 있는 작업복을 위에 걸치는데 학생들은 나의 지저분하고 알록달록한 작업복을 꽤나 좋아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초등 학생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도 미술시간이였던 것 같다. 인기 과목의 교사라 아이들은 종종 내게 예쁜 말을 하는 것일까. 아이들이 늘 환영하는 미술 선생님인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금요일 오후 첫 수업에는 만 5세에서 6세 사이인 1학년 아이들을 만난다. 저학년 아이들의 특징은 내가 교실로 발을 딛지도 않았는데, 교실밖으로 나와 나를 반긴다. 귀한 분이나 기다리는 사람이 오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한다' 듯 아이들에게서 그런 반가움이 느껴진다. 학교에서 제일 어린 1학년 아이들은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스럽게 내뱉는다. 학기 초 서먹서먹한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친절하게 솔직하게 말한다.


아기 취급을 받던 1학년을 벗어나 2학년이 되면 신비롭게도 일 년 전에 비해 엄청난 성장을 한다. 아이들의 키는 물론 목소리도 한층 높아진다.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친절한 속삭임을 하였던 아이들이 반 친구에게는 물론 선생님에게도 실례가 되는 말을 거리낌 없이 정직하게 한다.   


"선생님, 오늘 보니 하얀 머리카락이 많네요. 늙으셨네요.. 어머 주름도 있어요. 몇 살이세요?

괜찮아요. 아직은 우리를 가르치실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 저랑 키 재기해봐요. 와우!! 선생님은 우리 엄마보다 엄청 작아요 하하하."  

"선생님 왜 앞니가 커요? 토끼 같아요. 깡충깡충."


저학년을 오래 가르치다 보면 알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집안 사정까지 알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한층 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다.


"선생님 저 이 케이크 아껴서 집에 가서 먹고 싶어요. 근데 집에 가져갈 수가 없어요. 우리 엄마가 보면 안 되거든요. 엄마가 다이어트해야 돼요. 엄마는 배도 나왔고 엉덩이도 엄청 커요."


대부분의 저학년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순수하게 정직하게 말한다.

예쁜 것은 예쁘다고, 미운 것은 밉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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