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엘리 Dec 24. 2023

여행전야

자고 나면 뿅 다른 시간 다른 장소

적도의 섬(응??섬에 사는데 휴가를 섬으로 간다고???)으로 열흘 정도 휴가를 간다. 모텔을 하고 난 뒤에는 남편과 내가 동시에 사흘 이상 모텔을 비우는 것은 처음이다. 일의 특성상 모텔을 비우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뉴질랜드에 살고 보니, 뉴질랜드는 모든 곳에서 다 멀다. 섣불리 어디를 가기에 쉽지 않은 외딴 섬나라였다. 살아보기 전에는 잘 몰랐다.  


그간, 호주는 토막토막 몇 번 다녀왔더랬다. 호주 동부의 도시들은 비행기 타고 국경을 넘어가지만 어쩐지, 또 다른 뉴질랜드의 번화한 어느 도시로 가는 느낌이 있다. 이번에는 다르다. 비교적 짧은 다섯 시간의 비행으로, 남태평양 적도의 작은 섬들이며, 영어가 주요 언어가 아닌 새로운 세상으로 간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인 타히티, 모레아, 보라보라가 목적지다. 흔히,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곳이다. 세계에서 하루를 가장 먼저 (작은 섬나라 제외하고) 시작하는 뉴질랜드에서, 세계에서 하루가 가장 늦게 저무는 프렌치 폴리네시아는 23시간의 시차가 있다. 덕분에, 오늘 출발하는데 어제 도착한다. 하루를 다시 살게 되는 영화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숙소와 항공권은 벌써 몇 달 전에 예약을 해두었다.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와, 이제는 여행 기분을 내고 있는 중이다. 물에서도 신을만한 샌들과 휴양지 느낌 물씬 나는 등이 훅 파인 원피스를 백만 년 만에 샀다. 발톱에 매니큐어는 이백만 년 만에 발랐다. 현금 환전 대신 사용하려고, 일종의 트레블 월렛인 원스마트 카드를 에어 뉴질랜드에 신청해서 받았다. 신청하고 받고, 등록하는데 3주가 꼬박 걸렸다. 외국 여행하면서는 현지식을 먹어야 한다며 음식물 챙겨 다니는 것을 매우 꺼려하는 남편이 선뜻, 물놀이를 해야 하니 컵라면과 햇반을 챙기라고 한다. 열대 지역 수준에 맞춘 벌레 퇴치제(insect repellent tropical strength)도 준비했다. 긴 공항 대기 시간에 읽을 책도 한 권 골라놓았다.


관광이 아닌 휴양이 목적이라, 딱히 뭘 해야겠다는 계획 같은 것은 없다. 하늘빛 바다에서, 알록달록 열대어가 헤엄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투명 바닥이 있는 수상 방갈로에 머물면서, 적도의 바람을 맞으며 말랑말랑하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려 한다. 몰디브에서는 모히또를 마시라고 병헌이 오빠가 그랬는데, 보라보라에서는 무슨 칵테일을 마셔야 할까 골라보겠다. 바닐라가 지역 특산품이라니 바닐라 향 음료를 골라야 하나? 제2외국어로 배웠던 프랑스어는 이제 ‘봉주흐’와 ‘메흐씨 보꾸’, ‘쥬뗌므’ 만 기억나는데, 굿모닝 대신 봉주흐라고 인사해야 할까? 뉴질랜드의 마오리어 인사말 ’키아오라(Kia Ora)‘와 비슷한 ’요라나(Ia Orana)‘라는 폴리네시아 말을 해야 하나? 세계의 흑진주는 거의 모두 프렌치 폴리네시아에서 나온다는데 흑진주 귀걸이는 기념품으로 사야겠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