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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ochoo Oct 30. 2023

Double Standard(이중잣대)

“Human being is a contradiction."

나에게는 미국인 친구가 있다.

사실, 미국 국적은 아니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에서 오래 거주하다가 군복무를 위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친구이다.

친구는 군대를 전역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취업을 하고, 언젠가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운동하면서 친해졌다.

친구는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편하게 구사했다.


나는 영어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딜 가도 영어로 말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

언어라는 것은 자고로 입 밖으로 끊임없이 내뱉어야 그 실력이 느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영어로 말하려고 하면 유난스럽다고 한다.


수의학과에 재학 중인 나는 졸업 후 미국 수의사 면허를 따고 미국으로 건너갈 것이라고 동기, 선후배들에게 일부러 떠들고 다녔다.

영어를 말하거나 쓰는 모습이 유난스러워 보이더라도 ‘아, 저 사람은 미국 간다고 했으니까.’라고 납득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만큼 나는 영어 실력보다도 미래와 자신감을 신뢰하는 편이었다.


친구가 군에서 휴가를 나올 때는 영어를 써도 이상하지 않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친구와 나는 한국어로 대화해도 전혀 소통에 문제가 없었지만, 우리는 항상 영어로 대화했다.


친구는 역사, 철학, 인문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나는 의학, 수의학, 생물학 분야에 관심이 깊은 편이다.

서로 상반된 관심사로부터 나온 다양한 주제들을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영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언젠가 나는 친구에게 안락사에 대한 견해를 묻게 되었다.

친한 형이 키우던 개를 췌장염 때문에 안락사로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이었다.

나는 당시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임상 수의사는 환축에 대한 안락사를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수의사는 왜 안락사를 할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일까?

안락사의 정의에는 반드시 ‘humane'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

동물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 ‘인도적인 방법’으로 약물을 주입하거나 가스를 흡입시킨다.

’ 인도적‘이라는 것은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지 않을까?

시름시름 앓는 동물이지만 더 살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속된 말로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이 동물은 계속 숨이 붙어있고 싶을 수 있지 않을까?

몹시 아프지만 주인과 얼굴을 맞댄 채 자연스럽게 숨이 멎기를 기다리고 싶을 수 있지 않을까?

‘인도적인 방법으로 수의사의 도리를 행한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 아닌가.

과연 우리는 안락사를 시행할 권한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또한, 반면에, 인간의 안락사는 왜 아직까지도 controversial 한 주제인 것일까?

식물인간이라도 그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반드시 그를 살려두어야 한다.

DNR(Do Not Resuscitate) 동의를 받아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는 있지만,

환자가 원할 수도 있는 ‘인도적’인 안락사는 그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I think there's a double standard.


나의 생각들을 영어로 바꾸어 친구에게 이야기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친구의 대답을 기다렸다.

친구는 짧은 정적이 흐른 뒤 입을 열었다.


“Here's the thing. You're right about double standard, and human being is a contradiction."


“That's it? You're saying we just gotta admit it?"


그는 대답했다.


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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