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정통론, 제1장 위성국가 vs 독립국가

대한민국 정통사관

by 현진석


제1장 위성정부 vs 독립정부


신화와는 인연이 많지 않은 한반도이지만, 한국현대사에는 민족의 태양이며 조국통일의 구성(求星)이라고 불리는 김일성신화와 일반인의 범주를 뛰어넘는 민족중흥의 초인(超人)으로 불리는 박정희신화가 존재한다.

구성은 구원하는 별이라는 뜻이므로 구원자, 메시아의 의미여서 그야말로 종교적 경지의 표현이다.(북한헌법 서문, 2009년)

박정희신화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강력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그 초인이 쓰러지고 갑자기 새로운 신화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바로 한국현대사의 정통성이 항일빨치산투쟁을 이끈 김일성이 세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고,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미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세워진 반민족국가에 불과하다는 신화 말이다.

이 신화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태백산맥> 같은 좌파문건들과 각종 영화, 드라마, TV프로그램을 통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전파되어 많은 한국인들에게 올바르고 진실된 역사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하여 본 저작의 목적은 과연 이 신화가 정당한 것인지, 사실에 입각한 것인 지 살펴 보려는 것이다.


냉전의 충격


트루먼독트린.jpg

사실 1945년 전반기의 소련과 스탈린은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지배에 대한 생각은 크지 않았고, 제정러시아 이래의 전통적인 전략으로서 만주지역에 대한 이권과 항구들에 대한 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45년 6월 29일에 제2극동국장 주코프와 부국장 자브로딘이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러한 소련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일본의 대륙침략 통로로 이용되어 왔으며, 그런 이유에서 한반도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 한국이 소련에 대한 미래의 공격 근거지로 전환되지 않게 하기위해 미래의 한국정부는 소련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특히 일본이 한국을 통해 팽창하려 한 데 대해 러시아가 투쟁한 것은 역사적으로 정당한 행위였음에도 러시아가 일본을 막지 못한 이유는 외교적 고립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또 다시 고립되지 않기 위해 한반도에서 후견제(신탁통치)가 실시되면 소련이 이에 참여해야 한다.’

소련의 통치 아래에 있던 북한이 일본에 매우 적대적인 정책을 펼친 이유를 알 수 있고,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망은 높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미국은 세계전략의 기조로서 국제주의, 즉 사회주의국가들과도 호혜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정책이었지만, 소련과의 냉전이 전개되면서 1947년 3월 12일의 트루먼독트린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사회주의국가들을 고립시키는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을 소련에 대항하기위한 전초기지로 사용하기위해 유화적인 조치들이 한반도와 일본에 시행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45년 9월20일 스탈린은 극동전선 총사령부와 제25군 군사평의회 앞으로 이전의 정책과는 매우 다른 극비 지령를 발송한다.

1). 북조선의 영역에서 소비에트나 그 밖의 소비에트 권력기관을 만들지 말고, 소비에트적 질서를 도입하지 말 것.

2). 북조선의 모든 반일적 민주정당과 단체의 광범한 블록을 기초로 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원조할 것.

3). 이와 관련하여 적군(赤軍)이 점령한 조선의 제 지역에서 반일적 민주적인 단체와 정당을 결성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고 그들의 활동을 원조할 것.[1]

이 지령은 신탁통치라는 기본 노선을 파기하고, 사회주의 프로레타리아혁명 앞의 단계인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을 북조선에 미국과는 상관없이 진행하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공산주의를 두려워하는 대중들을 기만하기위해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렇다면 스탈린은 왜 이렇게 갑자기 돌변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45년 9월 12일부터 10월 2일 사이에 있었던 연합국 전승국들 간의 런던 외상회의가 그 원인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미국, 소련, 영국, 중국, 프랑스의 외상들이 패전국들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그들의 식민지에 대한 처리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소련은 동유럽의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을 독점적으로 공산화하고 있으면서, 지중해진출을 위해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리비아를 요구하였으며 미국이 단독으로 점령하고 있던 일본에 연합국 관리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하여 영국과 미국은 지중해에 소련함대가 진출하는 것을 불허했고, 태평양전쟁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미국도 일본에 대한 권리를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원자탄개발에 뒤쳐져 불안해하던 스탈린은 서방국가들의 소련을 무시하는 태도에 분노를 일으켰다. 10월 25일 스탈린은 미국대사 해리먼과의 대담에서 경직된 태도를 취하며 “소련은 간섭하지 않겠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고립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해왔는데, 나는 고립주의를 선호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소련도 이제는 고립주의를 택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그 정책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2]

한반도에 엄청난 먹구름이 몰려오는 시점이었다. 스스로의 번듯한 독립전쟁을 치루지못한 한민족은 또다시 열강들의 권력다툼의 희생자로, 전쟁터로 한걸음씩 내몰리게 된다.


[1] <김일성 신화의 진실>, 김용삼, 327쪽

[2] ‘냉전의 전개과정과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스탈린의 한반도 정책 1945’, 이정식,

<해방전후사의 재인식>2권,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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