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흩어진 사람들

질풍노도의 시대

by Peregrine

1963년


수호를 포함한 세 명의 목수는 이병목 오야지가

주도하는 대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 오야지는 설계도를 보면서 건물의 틀을

세우도록 지시를 하였다.


“여기 기둥 네 개 세워가, 거따 시멘트 부을

와꾸 좀 짜라!”


“예, 그라믄 기둥 폭은 얼매나 잡으면 돼 갔소?”


“한자 반은 되야제?”


설계도는 오야지만이 읽을 수 있어서 수호는

오야지가 일러주는 대로만 일을 하였다.

오야지는 목수 일은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면서도

설계도를 보면서 설명하는 법이 없었다.

설계도를 읽는 방법 역시 알려주지 않았다.


‘설계도를 눈으로 보믄서 일을 하면,

일도 잽싸구 어드러케 하는지두 알갔는데.’

수호는 답답하기만 하였다.


공사가 끝나면 버려지는 설계도가 아까워서

수호가 오야지에게 물었다.


“저, 오야지, 설계도 버리실 거면 저 주세요.”


“와, 니가 보면 모 아나? 그래 한번 가져가 보래!”


수호는 파란 청사진으로 된 두툼한 설계도를

소중하게 말아서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숙소에 와서 수호는 밤이 늦도록 설계도를

펼쳐놓고 자신이 실제로 틀을 잡았던 기억을

더듬어 기호와 맞춰가며 설계도를 읽는 연습을

하였다.


현장에서 오야지의 지시가 있으면, 작업을 하면서

‘이건 설계도면에서 이렇게 표시되어 있겠나?’

상상하였다.


그날 밤 숙소에서는 예전 설계도를 찾아내어

자신이 짐작했던 것과 현장에서 작업한 것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였다. 오야지가 하라는 대로

작업을 하던 것과는 달리 설계도에 따라

실제로 건물이 지어지는 일이 신기하였다.

그렇게 모아둔 설계도가 쌓이면서 수호도

자신이 하는 일과 설계를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다.


수호가 제법 설계도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오야지가 넌지시 물었다.


“수호 니 내 따라다닌 지 을매나 됐노?”


“한 3년 되갔지요.”


“설계도 보면 뭐 좀 알겠드나?”


“뭐 실제로 한 거랑 대조해 보면 대충 알 것도

같은데요.”


“니 그람 담번에 박목수 딸려 보내 주모,

니가 고마 삼양동건은 한 번 해볼라나?”


“제가요? 그럼 설계도에서 몇 가지 물어봐도

되갔습니까?”


“하모, 내일부터는 마, 설계도 봐가며 알려주모

안되것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갔습니다.”


수호는 이제야 전체 공사를 제대로 파악하며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사장에서 걸어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는

일꾼들에게 밥을 지어주는 함바집이 있었다.

공사 작업이 기초공사에서 다음 작업으로 진행이

되어 일꾼은 바뀌어도 함바집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일꾼들의 식사를 도맡아서 해결해

주었다.


함바집 사장부부의 조카인 기선이 수호가 다른

일꾼들과 반찬이 놓인 상에 자리를 잡고 앉자

밥과 국을 담은 쟁반을 가져와 차례로 일꾼들

앞에 놓아주었다.


반찬은 김치와 감자조림이 정갈하게 놓여있고,

한 사람 당 계란 프라이가 두 개씩 돌아가도록

놓여 있었다. 밥은 고봉밥에 시래기 된장국이었다.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밥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에 이끌려 코를 들이밀었다.


“아, 배고픈 줄도 몰랐는데 밥냄새가 허기를

부르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들 밥과 국에 코를

묻고 식사를 하느라 분주한 정적이 흘렀다.

숭늉을 담은 대접을 가져오며 기선이 말했다.


“반찬가지 좀 더 드려라?”


“국물 조금만 더 주시겠습니까?”


식사를 마치고 수호는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창문 너머로 부엌에서 무언가를

저어대는 기선의 모습을 포착하였다.

그 많은 일꾼들의 식사를 단 세 사람이 거뜬히

해내었다. 기선이 음식을 만드는 것을 도우며

제빠르게 상을 차리고 물리기를

억척스럽게 해내는 모습이 신기하였다.


‘나이가 몇 살이나 될까? 한 스무 살? 어린 아가씨가

이렇게 큰 일을 잘 해낸다고?’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기선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상을 물리려고 빈 쟁반을 들고 나오던 기선과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란 수호는 담배를 버리고

발로 비벼 끄고는 얼결에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였다.


기선도 목례를 하고는 상을 치우러 갔다.


1965년


한나는 백두산 아래 압록강 상류에 위치한

혜산에 정착하였다. 혜산축산작업반에서 돼지를

사육하고 3급 비료공장에서 인민부장의 지시에

따라 교대로 일을 하였다. 일은 힘들지는 않았지만,

축산작업은 연말에 배분을 하는데 현물이나

현금으로 받아서 평상시에는 그나마 비료공장에서

한 달에 65원씩 나오는 현금이 전부였다.


한나 혼자 벌어서는 완석이를 교육시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완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마니, 사회적 작업으로 학교에 체력단련장

만든다는데 말입네다. 현물만 좀 내면 작업은 빼준다

하갔습네다….”


“현물이 뭐가 필요한데?”


“삼십 원만 돈으로 내면 말입네다, 로동은 안 시키구

수업만 한다 하갔습네다.”


“지난번 운동장에 돌을 골라내는 작업하느라

수업도 많이 빠졌는데, 이번엔 어떻게든 작업에서

빼줘야지.” 하면서도 한숨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나의 표정을 보아하니 형편이 아닌 것을 간파한

완석이 오히려 호기롭게 이야기하였다.


“공부 뭐 대수롭갔습네까. 하루에 과목 몇 개

빠진다 해서 달라질 게 있갔습네까. 몸으로 떼울

테니 염려 마시라우.”


한나는 빈 말로라도 완석을 만류할 수 없었다.


“네 아버지랑 오삼촌이 단짝 친구였는데,

둘이 다른 동무들과 몰려다니며 동네 일은 다

품앗이하고 돌아다녔는데…, 우리 완석이도

아버지랑 오삼촌 만나면 이런 일은 손도

안되었을 텐데!”


완석은 또다시 시작되는 아버지와 오삼촌

타령은 듣기 싫었다. 그렇다고 고된 하루의

노동을 넋두리로 달래는 한나의 저녁찬송을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 박순천의 저녁예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버지인 오수호를 만날 터인데 그때까지는

나를 잘 키우고 그리고 연백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와의 재회가

가능하다. 그리고 언젠가 외할머니와 오삼촌

박한동과 만날 것이다. 강원도 맹현봉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모두 무사하였을 것이다.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고 곧바로 이름을 호명하였다.


“지금부터 이름 부르는 학생들은 앞으로 나오기요.

윤호준!”

“네!”

“오완석!”

“네!”

“자, 동무들은 사회적 과제에 참가할기니,

교무과로 가기요.”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은 부모 둘이 벌어서

고등학교부터 혹은 적어도 대학교는 평양시내에

있는 학교로 보내려고 악착같이 일을 하였다.

사회적 과제라는 미명하에 동원되는 노동은

피해 갈 수 있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교실에서 수업이나

받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완석은 기억에 없는 아버지가 거짓말처럼

깜짝 찾아와서

“완석아, 그동안 고생 많았지?

이제는 이 아버지가 너와 니 오마니를 지켜줄게.

아무 염려 말라.” 하고 완석을 꼭 안아주기를

꿈꾸었다.


‘그런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네다.

오마니는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고되게

일하면서두, 아버지한테 원망 한마디 없습네다.

오히려 언젠가는 남조선에 있는 아버지를

꼭 만나야 한다 하십네다.
불순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건 벌써 다 틀렸고,

그라믄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입네까.
무릎이 아픈 오마니가 그래도 고생을 덜 하게

하자면, 내가 군대에 가서 당성을 보이구

살림을 일으켜야 합네다. 만 열네 살이 되면

지원해서 군대에 들어갈 수 있다 하갔습네다.
해마다 군대에 가겠다고 말만 꺼내면 오마니는

막무가내로 반대부터 하십네다.

그래두 십 년만 복무하고 나오면,

당성은 분명히 증명될 거라 생각합네다.’


한나는 여맹 동무들과 4월에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을 환송하기 위한 초모제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눈물을 훔치랴 흘러내리는

코를 훌쩍이느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지경이었다.


“오마니, 군대 다녀오면 나두 어른이 될 테니,

우리 살림살이도 지금보단 나아질기니

슬퍼 마시라우."


1967년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부서지고 폐허가 되어

다시 재건을 하면서 합법적 비난의 대상이

남침을 자행한 북한이었고, 자연스럽게

반공사상이 정착되었다.

전쟁으로 잠시 헤어진 가족이 있는데,

이렇듯 철천지 원수지간이 되어 남북대화는

단절이 되었고, 이산은 고착되었다.


수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1년만, 5년만, 10년만!

뿌리내리지 않을 부초로 마음에 담지 않았다.

어차피 떠날 것인데. 닿지 않은 바닥에 서서

늘 허망하였다. 그래도 돌아갈 집이 있고

만나야 할 가족들이 있었다.


매형은 이미 재혼을 하여

정하에게 두 명의 이복동생이 생겼다.


수호는 기선과 재혼을 하였다. 첫째 아들은

태어나서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돌연사하였다.

둘째 아들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였다.


기선은 용하다는 강원도 할머니를 찾아갔다.

강원도 할머니는 기선을 보자마자 툭

한마디 던졌다.


“속 끊지 말어라. 그건 니 잘못이 아니여.

바깥양반, 내 앞으로 얼른 데려와!”


수호는 내키지 않았지만 두 아들을 잃고 자신도

답답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였다.


강원도 할머니는 수호를 찬찬히 보고는

“어디서 부정이 들었어. 그렇다구 아를 잃을

팔자는 아니여…”


“부정을 탔다구요? 사실은 둘째 아가 죽기 전에,

좀 이상한 꿈을 꾸긴 했는데.”


“무슨 꿈?”


“수탉 한 마리가 콕 한 번, 두 번, 세 번 바닥을

찧고는 날아가 버렸어요. 깨어나서도 너무

선명해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도통 꿈을 꾸고

기억에 없던 와중에 너무나 또렷해서….”


“임자 팔자에 아들 복이 셋이나 들었는디 말이여,

남아 있는 아들은 안 보이는구먼.

그래두 딸 줄은 살아 있으니까, 먼저 간 아들들

천도재부터 지내주게!”


“천도재는 어느 날짜가 좋을랑가요?”

기선이 물었다.


“삼재가 나가는 달 중에 하루 잡아서 알려줄게.”


“네에, 잘 부탁드려라.” 기선은 한껏 예를 차려서

인사를 하고 수호의 팔꿈치를 잡아서

인사하라는 눈치를 주었다.


“아들이 안 보이면 북에 있는 완석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다는 건가?” 께름직하여 차마

강원도 할머니에게는 물어보지 못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오마, 참말로 완석이까정 셋이랑 가?

하, 나가 천도재 날짜 잡을 때 물어볼라요.”


1971년

수호는 예전 무당의 예언으로 이북의 완석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에게는 자식복이

없을 거라 여겼는데 아들이 태어났다.

석자 돌림자를 넣어 원석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3대 독자, 오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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